<P><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height=300 width=400 src=http://bgm.heartbrea.kr/?3222205 wmode="transparent"><BR><BR><BR>“어디야.”<BR><BR>전화 너머의 차분한 척 연기하는 목소리.<BR>말끝 울렁임과 가녀린 한숨, 둘 모두 파르르 하는 떨림에 내게로 긴장감이 전해져왔다.<BR><BR>이런 전화는 옛 부터 수도 없이 상대해보았으나, 이제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BR><BR>“정안아, 대담 좀 해봐. 어디에 있어?”<BR><BR>여자 목소리….<BR><BR>목을 매단 여자의 이름은 정안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신가요.<BR>그녀가 유서를 남기고 떠나온 가족이신가요? 그녀의 언니? 동생?<BR>아니면 절친한 친구? 누구라도 좋으니, 그녀의 안부를 묻지 말아주세요.<BR><BR>“정안아, 대답 좀…….”<BR>“전화, 받았습니다.”<BR><BR>내가 대답하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툭하고 끊겼다.<BR>항상 이런 식이다. 다음에 물어올 말도 알고 있다. 누구세요.<BR><BR>“누구세요?”<BR>“저는 정안 씨가 묵고 있는 여관의 주인 되는 사람입니다.”<BR><BR>어디 여관이요.<BR><BR>“어디 여관인가요? 어딘가요? 지금 서울시에는 있는 건가요?”<BR><BR>왜 당신이 받나요. 정안이는요.<BR><BR>“정안이는 어디 갔기에 여관 주인께서 전화를 받죠?”<BR><BR>정안이 좀 바꿔주세요.<BR><BR>“정안이 옆에 없나요? 바꿔 주세요.”<BR><BR>나는 항상 이 부분에서 할 말을 잃는다.<BR>“정안 씨가 돌아가셨으니, 유족 분께서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혀에서만 빙빙 도는 말은<BR>매번 굳게 다물어지는 입술에 저항당하여 목소리가 되지 못한다.<BR><BR>그리고 찾겠지. 여보세요. 하고.<BR><BR>“여보세요?! 여보세요!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부탁드릴게요.”<BR><BR>제가 가겠습니다.<BR><BR>“우리 정안이 잘 있는 거 에요? 거기 어딘가요, 아저씨. 제가 지금 갈게요. 지금 갈게요!”<BR>“저, 지금…… 정안 씨가, 그……….”<BR><BR>뜸을 드리는 내가 한심하다는 듯, 성민이는 “형 요즘 왜 이래?” 하며, 전화기를 빼앗아 들었다.<BR><BR>성민이는 업무상 전화라도 받듯 정안씨는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러야 할 듯싶으니,<BR>유족들과 찾아오셨으면 합니다. 여기는…… 하며, 기세 좋게 말을 이어갔다.<BR><BR>“아니요, 이 저희도 뱃사람들에게 부탁을 드려봤는데, 시체를 배에 태우고 싶지가 않답니다. 그리고 전화 받으시는 분 어떻게 되는 분인지 모르지만, 고인을 인계하시려면 직접 섬으로 찾아오셔야 맞는 거죠. 고인이 무슨 택배 화물입니까?”<BR><BR>고인이 무슨 택배 화물입니까. 내가 젊은 날 자주 써먹던 수법이다.<BR>아직 애 허리까지도 키가 오지 않던 성민이가 보던 앞에서 읊고 또 읊었으니,<BR>성민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배워버렸을 것이다.<BR><BR>시체 팔이 장사의 수법을.<BR><BR>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성민은 “쯧” 하고 혀를 한 번 찼다.<BR>그리고 언제 성화를 냈냐는 듯 본연의 목소리로 돌아가 내게 물었다.<BR><BR>“형, 장 선생님 모셔와야지?”<BR>“전화 드려.”<BR>“내가?”<BR>“그래. 네가 드려.”<BR>“왕눈이 형한테는?”<BR>“그것도 네가 해.”<BR><BR>장 선생. 우리 섬사람 들 중 아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다.<BR>장의사 선생님. 장의사. 장 선생. 부를 호칭이 마땅찮아, 그렇게 불렀다고 들었다.<BR><BR>장 선생을 장 씨 선생님처럼, 장 선생 장 선생, 처음 부르기 시작한 것은<BR>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라는 것도 들어 익히 알고 있다.<BR><BR>장 선생이 도착하기 전, 몇 안 돼는 섬 경찰 왕눈이를 불렀다.<BR><BR>왕눈이. 놈이 어떤 경로로 경찰이 됐는지, 아니면 어떤 경로로 경찰이 넙치에게 붙어먹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BR>왕눈이는 넙치의 수하였다. 왕눈이는 섬에서 나오는 어떤 시체에게도 자살이라는 조서를<BR>꾸며주는 쉽게 말해 섬의 방패 같은 놈이었다.<BR><BR>왕눈이 놈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하루 많으면 다섯 건도 넘는 자살을<BR>어떻게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정리 할 수 있냐는 것이다.<BR><BR>장 선생이나 왕눈이가 도착하기에 앞서 방안에 대롱거리는 시체를 내려놓고 싶었다.<BR>내가 103호 실로 걷자, 성민이는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따라붙었다.<BR><BR>“몸 안 상하게, 잘 잡아라.”<BR>“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닌데, 무거우니까 빨리 풀어 형.”<BR><BR>냄새. 침 냄새가 난다. 아, 버러진 입으로 흘러내려온 침 냄새에 섞여, 그녀가 몸에서 쏟아버린……<BR>허벅지며 발에 흥건히 흘러버린, 오물이 툭툭하며 물방울 소리와 함께 갖은 냄새를 풍겼다.<BR><BR>성민이가 그녀의 몸을 얼싸안아 들자, 그녀의 힘없는 목은 머리를 지탱치 못하고 픽하며 꼬꾸라졌다.<BR>사람 턱이 가슴으로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나로 하여금 그녀의 사망을 실감케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BR><BR>아직 목에는 멍 자국이 남아있지도 안다.<BR><BR>이불을 찢어 짠 거친 면에게 쓸려 목의 살이 조금 튼 것을 제외하고, 그녀는 말짱했다.<BR>아직 체온도 남아있다. 목을 풀어 그녀를 바닥에 눕히자, 성민이가 쪼그려 앉으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BR><BR>손에 턱을 괘며 성민이가 혼잣말로 “예쁜데 왜 죽었을까.” 했다.<BR><BR>성민이의 시선을 따라 그녀를 내려다보았다.<BR><BR>젊다고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젊다 마냥 젊은 사람이다.<BR>그 생각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나 다른 목적으로 섬을 찾은 것은 아닐까,<BR>두 사람의 미소에서 일말 희망도 보였는데.<BR><BR>죽을 생각이면, 뭣하러들 그렇게 옷은 말끔하게 차려입고 오니. 인간들아.<BR><BR>사색에 잠겨있던 차, 여관의 현관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BR><BR>“철민이! 성민이! 나 왔다.”<BR><BR>장 선생 목소리. 성민이가 객실 문 밖으로 고개만 내밀어 장 선생에게 슬쩍 인사를 했다.<BR><BR>“형, 선생님 오셨어.”<BR><BR>나도 안다. 객실을 벗어나니 장 선생이 눈을 크게 뜨며 반겼다.<BR><BR>“야~! 철민이! 야, 너 내가 을마나 걱정 했는 줄 알어?”<BR>“무슨 걱정을요?”<BR>“너 장사 접었다고, 섬에 소문이 파다해 그냥.”<BR><BR>장 선생의 말에 성민이가 “장사를 왜 접어요!” 하고 대신 대답했다.<BR>장 선생은 성민이를 힐끔 보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며 “그렇지? 아니지?” 물었다.<BR><BR>“접고 싶다고, 막 접히고 그런 동네인가요, 어디.”<BR><BR>내 대답에 장 선생이 남자답지 못하게 칠랑팔랑 깔깔거리며 웃었다.<BR>뒤로 허릴 젖힌 장 선생의 입안으로 금니가 번쩍였다.<BR><BR>“아, 근데 철민이.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BR>“예, 말씀하세요.”<BR>“오랜만에 철민이가 해주는 밥 좀 얻어먹자, 나 지금 배고파. 점심부터 일해가지고,<BR>아무것도 못 먹었어. 철민이! 간만에! 응? 솜씨 좀 발휘하면, 그러면 안 되나?”<BR><BR>장 선생의 환한 얼굴을 돌아봤다.<BR><BR>오랜만에, 오랜만에 다들 오랜만에를 입에 붙이고 다니라고 넙치한테 명령이라도 받은 것일까.<BR>말마따나 확실히 오랜만은 오랜만이다. 저 망할 객실 안에서 시체 식어가는 기운을 느끼며 밥상을 펴는 게,<BR><BR>이게 도대체 얼마만일까.<BR><BR>“거절하는 거 아니지? 철민이.”<BR>“가시죠. 식사는 하셔야 일 하시니까요.”<BR><BR>왕눈이가 오면 청년의 수색을 부탁해야겠지.<BR><BR>단정할 수 없겠지만, 병원 영안실 아니면 기암절벽 밑에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됐다.<BR>내 반쪽이라 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그녀에게도 다시 전화를 걸어야겠다.<BR>청년의 유가족도 가능하다면 함께 와주길 부탁드리는 편이 좋을 테니. <BR><BR>주방으로 가며 103호 안이 슬쩍 눈에 돌아봤다.<BR><BR>그녀는 이제 세상 떠났다는 듯 무심히 고요만을 덮은 채 잠들어 있다.<BR>그녀의 유족들이 섬에 찾아왔을 땐, 찬물을 끼얹은 것만 같은 차가운 몸이 되어 있겠지.<BR><BR>반쪽이라는 그녀가 찾아오는 날은 긴, 아주 긴 하루가 될 것만 같다.<BR><BR><BR>- 4부 끝 5부에서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