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src=http://bgm.heartbrea.kr/?3222205 wmode="transparent"><BR><BR><BR>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뛰고 또 뛰어도, 지연이를 잡을 수 없을 듯 했다.<BR>하늘을 유영하듯 지연이의 몸은 유유히 떠내려갔다.<BR><BR>그 몸은 점차 도로와 거리를 벌리는 방향으로 뻗어있는지,<BR><BR>지연이는 곧장 산 너머로 몸을 띄웠고, 도로는 지연이의<BR>진로와 평행하지 않고 점차적으로 거리가 벌어지는 사선을 그렸다.<BR><BR>‘이렇게 멍청하게 바른 길로만 달려갈 수는 없다.’<BR><BR>오른켠의 풀숲으로 냅다 발을 찼다.<BR><BR>고만고만하게 자란 풀의 키가 눈을 현혹시켰을까.<BR>생각한 것보다 몸이 깊이 꺼져 내려가, 착지하는 발목이 휘청였다.<BR><BR>가슴에서 어깨까지 솟아있는 풀 속을 헤엄치듯 지연이를 향해 달렸다.<BR><BR>이게 모두 편집장의 탓이었다.<BR>그깟 3류 찌라시 정보로 사람을 이런 흉흉한 동네에 보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BR><BR>‘소스도 명확하지 않은 정보였잖아. 오지 말았어야해. 다른 일도 할 것이 산더미 같았다고.’<BR><BR>“김성규 전 비서실장 자살사건 기억해?”<BR><BR>편집장의 물음에 그게 뭐 어쨌냐고 물어볼 것을.<BR>왜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하고 대답했을까.<BR><BR>“그 당시에 김성규씨, 자살 현장에선 아무도 취재사진 따오지 않은 것도 알고 있냐?”<BR>“사인이 뭐였죠?”<BR>“자기 고향에서 목을 맸는데, 그게 동네 한복판에 있는 향나무래.”<BR>“그런 자살이었어요?”<BR>“가볼래?”<BR>“예?”<BR>“김성규씨가 목을 맨 장소에서 조약돌이 얹어있는 유서가 나왔기 때문에 명백한 자살이라고, 수사 종결 됐던 건 알아?”<BR>“그런 건 신문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BR>“그래. 근데, 그 유서가 아주 골 때려.”<BR><BR>유서 따위가 뭐가 어쨌냐. 그런 취재는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BR>바보처럼 편집장 비위나 살살 맞추며, 신기하네요. 재미있는 취재네요.<BR><BR>편집장이 나를 보냈다는 말도 내 핑계인가.<BR><BR>이번 여름에 대비해서 살짝 흥 돋는 납량특집 취재로 할까봐요.<BR>분위기 잡아가며, 생각해보면 이 미친 산골동네에 가겠다고 자처한 꼴이잖은가.<BR><BR>죄 없는 지연이까지.<BR><BR>“저, 선배랑 단 둘이서만 가는 거에요?”<BR><BR>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이다.<BR>모두 내 탓이다.<BR><BR>“유서 문을 좀 읽어 봤는데 말이야. 이게 정말 기사감이야.<BR>김성규씨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밖에는 말 못하지 이런 상황이면. 들어봐 여기부터 읽어줄게.”<BR><BR>「청송마을 천령수 향나무에는 사람이 열린다는 소문이 있다. 천년동안 숱한 전쟁의 역사 속<BR>사람들 주검의 산이 그 향나무 앞에 쌓여왔다. 가슴앓이 하던 아낙, 과부들 자살도<BR>줄줄이 이 나무에서 이루어졌다. 하루에 서너 구의 시체를 매달고 있었던 날도 있더라는 구전.<BR>이전 까지는 믿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 실을 내 몸소 체험한다.<BR><BR>이 나무는 사람이 이끈다. 나는 자살을 선택하려 고향땅에 찾아 든 것이 아니다만,<BR>이 나무는 나의 목을 자신의 팔에 매달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BR><BR>그 증거로, 나는 이 향나무 주변만을 맴돌고 있지 않은가.<BR><BR>나는 이 나무에 결박당했다.<BR><BR>이 나무는 자신의 표적을 놓이지 않을 샘인 듯,<BR>나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엮어 가축처럼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BR><BR>나는 이곳에서 죽으나, 그것을 자살이되 자살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BR>나는 이 나무에게 살해당한다. 이 나무가 내 목숨을 원하기에 나는 이곳에 목을 건다.<BR><BR>어차피 나는 나무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BR><BR>“재미있네요. 편집장님. 가볼게요. 한 번.”<BR>“갈 때, 지연이도 좀 같이 가.”<BR>“혼자서도 괜찮은데요?”<BR>“가서 일도 좀 가르쳐 주고 그래라. 예쁜 여후배 좀 챙겨준다 생각하고.”<BR>“그래요. 그럼. 좋죠. 뭐!”<BR><BR>좋죠. 뭐? 등신새끼. 좋죠 뭐가 아니잖아.<BR><BR>눈을 지연이에게만 고정한 채 정신없이 앞길을 헤쳤다.<BR>푹푹 꺼지는 풀길의 물웅덩이로 종아리까지 젖어버렸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또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BR>녹음기는 도로위에 버려둔 채 왔기 때문에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어떻게 들리는 거냐고!”<BR><BR>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를 쫓아 등을 돌아봤을 때, 김성규씨 유서 글이 떠올랐다.<BR><BR>‘나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엮어 가축처럼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BR><BR>그 헛소리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BR><BR>사방천지의 풀이며 능선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돌멩이가 차곡차곡 쌓인 돌담과<BR>덩치가 커다란 향나무가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BR><BR>향나무에는 지연이의 몸이 목을 매단 사람처럼 걸려있었다.<BR>달빛에 비추어 보이는 지연이의 목에는 밧줄 따위는 없었으나, 그 모습이 대롱거리는 게<BR>나뭇가지에 목을 걸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허공에 떠있을 뿐인 그 모습에<BR>넋을 잃어야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나무로 달려가, 지연이의 발을 잡아당기자, 지연이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BR>퍽이나 무거운 지연이의 몸을 받아내다가 나까지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주변이<BR>좀 더 보여오기 시작했다.<BR><BR>돌담길을 따라 둥그렇게 패인자국. 달그림자 운영이 옴폭 패인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BR>주변을 돌아보니 돌담을 따라서 수백도 넘어 보이는 자국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BR><BR>‘발자국?’<BR><BR>나는 계속해서 이 담 안에만 있었던 것인가.<BR>지연이를 살포시 땅에 내려놓고, 돌담길 발자국에 발을 올려보니,<BR>내 발이 정확히 들어맞았다.<BR><BR><BR><BR>- 7부 끝 8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