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width="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rc="http://bgm.heartbrea.kr/?3222205" wmode="transparent"><br><br><br>‘입석간판이 나올 시간쯤은 지난 거 아닌가?’<br><br>뒤를 돌아보자, 남푸른 밤하늘과 시커먼 산의 경계,<br>어렴풋 달빛에 반짝이는 아스팔트,<br>좌우로 끝도 없이 이어진 논밭만이 펼쳐지고 있었다.<br><br>그 흔한 바람 한 점 조차 불지 않자, 마치 세상은 멈춰있는 듯 보였다.<br><br>어찌, 풀숲이 이렇게 펼쳐졌는데, 벌레새끼 한 마리 없는가.<br>봄기운 냄새 맞은 개구락지며, 뱀들은 밤잠을 청하고 있나?<br><br>‘어떻게 이렇게 조용하지.’<br><br>앞으로도 뒤로도 똑같기만 한 풍경은 내가 마을 초입에서 좌측을 돌아서<br>나왔었는지, 우측을 돌아서 나왔었는지 조차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놓았다.<br><br>이대로 앞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 입석간판의 반대방향이라 손 치더라도,<br>어딘가가 나올 것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떤 마을이건 번화가건<br>연결이 되 있을 법도 하다.<br><br>시대가 어느 때인가.<br><br>90년대만 같았어도, 미래 예상도 그리기 대회에서<br>하늘 나는 자동차를 그리기 바쁘던 2013년도다.<br><br>어딘가로는 이어졌을 것이다.<br><br>긍정적인 생각으로 차분함을 되찾고 싶었다.<br><br>어딘가로 이어진 것이 더 깊은 산 속이나, 강변이라는<br>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차분해 질 수도 있을 듯 했다.<br><br>왜,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자동차는 정말로<br>몇 시간 동안 단 한 대가 지나가질 않는 것일까.<br><br>매달려오지 않는 지연이 때문에 한참을 구부정하게 걸었다.<br>허리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아픈 것이, 혹여 이미 끊어졌는지도<br>모른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뭐?”<br>“선배, 저 내려줘요.”<br>“너 정신이 들어?”<br>“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br><br>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부터 주변의 들풀이며 산자락이 부산스레 나풀거렸다.<br>풀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에 대비하여 큰 바람이 날아들까, 몸이 움츠러들었지만,<br>먼 곳에서 분 바람 이었는지 차가운 밤바람에 얻어맞지는 않았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지연이의 정신이 돌아왔다고 하나, 멈춰서는 안 될 일이었다.<br>아직 지연이의 몸은 식을 대로 식어 있었고, 방향까지 잃어버린 상황이었다.<br><br>시간이 얼마나 더 지체될지 모르는 마당이었다.<br>휴식을 취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례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br><br>치명적, 지연이, 잃어버린 길, 시간. 잡스런 단어들이<br>머리를 맴 돌면서도 나는 흙바닥에 지연이 엉덩이를 살살 내려놓았다.<br><br>핑계를 찾은 듯, 마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지라도<br>“네가 내려달라고만 하지 않았으면.” 하고, 대꾸할 핑계를 손에 쥔 듯.<br><br>지연이를 땅으로 내려놓았다.<br><br>“너 언제부터 정신이 들었어?”<br><br>차가운 몸의 지연이와 매듭을 지어 놓은 이불을 풀었다.<br>마침 또 바람이 한 번 일어 난 듯 사방의 풀잎들이 나부껴 춤을 추었다.<br>지연이와 몸을 때자, 밤기운이 등으로 달라붙었다.<br><br>분명 쌀쌀할 것이라 예상하던 봄밤의 기온이었으나,<br>지연이의 몸이 떨어져 나가자, 난로불을 쬐는 듯 금방 따땃하게 등짝이 달궈져 갔다.<br><br>“지연아.”<br>“….”<br>“지연아?”<br>“선배, 저 내려줘요.”<br>“뭐?”<br><br>뒤를 돌아보자, 퍼런 이불이 형체를 잃은 채 널부러져 있었다.<br>이불을 감싸고 있어야 할 지연이를 찾아 고개를 바쁘게 돌렸지만,<br>지연이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질 않았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마치 귓가에 대고 직접 속삭이는 듯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br>그리고 또 한 차례 풀잎이 요동을 치더니, 밤 그림자에 숨어있던<br>들 고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온통 검을 털의 들 고양이는 어둠에 몸을 섞으며 유유히 내게로 다가왔다.<br>고양이의 눈빛이 아스팔트길을 초록빛으로 도배할 만치 선명하게 보였다.<br><br>그리고.<br><br>“선배, 저 내려줘요. 커억! 컥! 선배, 저 내려줘요. 컥!”<br><br>고양이는 목을 길게 빼며, 목이 막혀버린 듯 토악질을 시작했다.<br>고양이가 목을 뺄 때마다 헛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헛바람이<br>통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지연이는 “선배, 저 내려줘요.” 하고 나를 불렀다.<br><br>그 소리가 너무 명확해, 귀에 입을 대고 말하는 듯 마치<br>지연이의 입 바람까지 귓불에 와서 닿는 것처럼 생생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고양이는 고통스럽게 입을 벌리며 고개를 땅으로 하늘로 젖히고 박기를 반복했다.<br>이내 고양이 입에서는 차가운 은빛 깔의 네모반듯한 쇳덩이 같은 것이 반짝이며<br>흘러나오기 시작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언제 저것을 삼켰을까. 아니 어떻게 삼켰을까.<br><br>고양이는 자기 머리통보다도 곱절은 긴 녹음기를 힘겹게 땅으로 내려놓고 있었다.<br><br>“아, 진짜. 선배 잠깐만, 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br>“헛소리 할 생각하지마. 형도 인내심에 커트라인 있어.”<br><br>녹음기에선 낮 동안 향나무 앞에서 있었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br><br>고양이는 목젖을 괴롭히던 녹음기를 게워내 속이 시원해졌는지,<br>새침하게 돌아서선 풀숲 사이로 냉큼 뛰어들었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녹음기에선 지연이의 목소리가 계속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br>“지연아.”<br>“선배, 저 내려줘요.”<br>“지연아!”<br>“선배, 저 내려줘요.”<br><br>자리에서 벌썩 일어난 순간, 검은 색 거대한 운영이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쳤다.<br>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림자에 놀라 몸을 움츠러들었지만, 금방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br><br>“선배, 저 내려줘요.”<br><br>눈앞에 지연이가 보였다.<br><br>지연는 초승달에 매달린 듯 밤하늘 허공에 걸린 채 팔을 주욱 늘어트리고 있었다.<br><br>늘어진 팔이 마치 날개라도 되는 냥, 지연이의 몸이<br>상하로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힘없는 날개 짓을 했다.<br><br>또 한 번, “선배, 저 내려줘요.” 소리가 귓가에 울렸을 때는<br>시야에 지연이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았다.<br><br>도로를 따라 지연이가 부양하는 방향을 쫓아 박차를 가하는 동안<br>할머니의 불길한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br><br>“저 향나무에서는 열매가 맺어져요. 총각. 사람 열매.”<br><br><br>- 6부 끝 7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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