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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타초콜릿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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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ony_91887
    작성자 : 베타초콜릿
    추천 : 3
    조회수 : 508
    IP : 175.223.***.83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6/11/03 23:13:41
    http://todayhumor.com/?pony_91887 모바일
    [팬픽] 생각 훔치기
    옵션
    • 창작글
    에버프리 보너스 영상을 보고 생각나서 써본건데... 수위가 높으면 삭제할게요



    ------------------
    생각 훔치기




    에버프리 캠프에 갔다온지 3주가 지났다. 그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곳에서 각자 특별한 능력이 발현되었고 그 능력은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적응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능력'마저 우리의 일부가 되어 당연하단듯 생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만지는것 만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내 능력은 겉보기엔 유용하고 편리해 보이지만 사실상 쓸모없고 불편한 능력이었다. 다른 친구들이야 자기가 원하지 않은다면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고 때에 맞게 적절히 적용할 수 있다지만 나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 그 사람을 만지면 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아야 했고 들추기 싫은 과거의 기억또한 억지로 알아야 했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비밀을 나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능력을 어떻게 내맘대로 조정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꽤나 성가시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손 한번 못잡아보면 그게 무슨 마법인가, 저주이지. 차라리 트와일라잇처럼 부유마법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편리했을텐데. 그래서 아직까진 조심하고 있다. 최대한 다른 사람과 오랜 접촉을 피하는 편이고 그 사람만이 아는 비밀을 무심코 내뱉는 실수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래도 나만 아는 비밀을 감추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 해야하니 말도 행동도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엔 한 녀석의 머릿속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비밀에 요 며칠 사이에 몇년은 늙어가는 것 같았다.

    "선셋 쉬머, 안녕!"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 녀석이다.

    핑키 파이는 언제 왔는지 갑자기 내 옆으로 튀어 나와 내게 인사했다. 나는 제일 먼저 황급히 팔짱을 껴서 내 손을 가렸다. 한 여름에 자기 팔을 겨드랑이에 꽉 끼우는 건 부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혹시라도 내 손이 핑키에게 닿는것 보다야 나았다.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머뭇거렸다.

    "그래, 안녕. 핑키."

    나는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핑키는 평소처럼 풍선 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옷을 입은채 학교에 왔다. 그녀는 통통 튀는 걸음으로 내 보폭에 맞춰 내 옆에서 걸었다.

    "1교시는 뭐야? 난 수학이야. 같이 수업 들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레인보우 대쉬는 나랑 같은 수업인데 대쉬는 수학 시간만 되면 항상 내 뒤에서 자. 내 머리가 커서 잘 가려진대. 대쉬는 공부를 잘해서 수업을 들을 필요 없나봐! 물론 지난 시험 성적은 C였지만."

    핑키는 여느때 처럼 속사포같은 수다를 쏟아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핑키였다. 무언가 작은 것 하나에도 호들갑을 떨고 웃음과 말이 끊이지 않는 누구보다 밝은 내 친구. 겉보기에는 그렇지만...... 그 속은 나 말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녀석의 머릿속 때문에 난 며칠동안이나 마음 고생을 하고있다.

    1교시를 확인하려면 시간표를 봐야하지만 팔짱을 풀고 싶지가 않다. 팔짱을 푼 틈 핑키가 기습적으로 내 손이라도 잡는다면 또 그 장면을 봐야할지도 몰랐다.

    "난 물리일걸."

    "그렇구나. 그럼 이따가 레인붐 연습시간에 볼 수 있겠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었다. 수학 수업은 2층에서, 물리 수업은 3층에서 하니 핑키를 보낼 수 있었다. 빨리 팔짱을 풀고 싶었다. 너무 꽉 낀 나머지 팔에서 쥐가 날 정도였다.

    2층 복도로 들어선 핑키는 교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3층 계단으로 들어서며 핑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이따 봐."

    "잠깐, 선셋."

    핑키가 부르자 나는 뒤를 돌아봤다. 핑키는 어느새 내 앞까지 와 있었다.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나는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왜 그러는데?"

    멍청하게 목소리는 왜 떨리고 가슴은 또 왜 두근대는거야.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핑키는 오른팔로 악수하듯 내 앞에 내밀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분홍색 맨살이 내 배꼽 높이에 있었다.

    "혹시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맞출 수 있어?"

    핑키가 웃으며 말했다. 

    심장이 덜컥 하고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 충격을 기점으로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팔짱을 낀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응? 그건 왜?"

    내가 물었다.

    "그냥!"

    그냥이라. 그래. 그냥 할 수도 있지. 그거 좀 본다고 큰일나는것도 아닌데. 내겐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원치않는 비밀을 보고싶진 않지만 자기가 보여주길 원한다면 거리낄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핑계라도 떠오른다면 당장에라도 거절하고 싶었다. 물론 거절한다고 해도 핑키가 강제로 만지게 하겠지만.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핑키를 손으로 만지고 핑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주기만 하면 끝난다.

    문제는 핑키의 머릿속에 있을뿐.

    처음 핑키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은 에버프리 캠프에서 능력이 생길 때 였다. 핑키는 내 능력을 듣고 금세 호기심이 생겨서 자기에게 시험해보라고 했다. 솔직히 그 때 핑키의 머릿속에서 본 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정말 약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경험할 수 없었던 강렬한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핑키가 정상이 아닌줄은 알고 있었지만 머릿속이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은 그녀가 유일할것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도 이후 핑키의 머릿속에서 보았던 그 이미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핑키는 그 이후로도 시도때도 없이 자기 생각을 읽어보라며 내게 팔을 가져댔다. 그리고 세번째 그녀의 마음을 읽었을때부터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소리마저 질러버렸다. 내가 잘못본건가 싶기도 하고 핑키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은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혹시나 핑키가 내게 장난을 치려고 그러는게 아닐까도 싶었다. 나는 차마 내가 보았던 것들을 핑키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핑키의 머릿속에는 항상 똑같은 장면만 보였고 핑키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자기 생각을 읽어달라고 보챈다. 결국 나는 점점 핑키를 만지는것을 꺼려하게 되고 그녀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가급적이면 그녀를 만지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꺼름칙했지만 핑키는 자꾸 재촉하는지 자기 얼굴을 내 앞에 들이밀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 알았어."

    내가 마지못해 말하자 핑키는 만세를 불렀다. 자기 생각을 읽게하는게 뭐가 그리 신난건지 모르겠다.

    나는 팔짱을 풀어 피가 통하지 않는 손을 몇번 쥐었다 폈다 했다.

    한숨인지 쉼호흡인지 모를 숨을 내뱉고 핑키의 팔에 손을 가까이 댔다. 점점 다가가는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가슴속에선 조그마한 희망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혹시 몰라. 이번엔 다른게 보일지도.

    핑키를 만지자 내 시야는 광채가 보이며 흐릿한 이미지들이 떠다녔다. 배경은 오로라같고 물결처럼 떠다니는 이미지들은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단 두사람만이 보인다. 그 외에것은 보이지 않고 두 사람은 항상 똑같았다. 두 명다 내 눈에 익숙했다. 어찌나 익숙한지 둘 중 한명은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볼 정도다. 두명 다 여자이고 이 여자들은 속옷 차림으로 격렬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채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가슴을 맞대고 숨을 헐떡거리며 혀를 주고받는다.  한명은 전체적으로 웨이브로 어깨 맡까지 길게 내려온 붉은색에 부분적으로 노란색 머리결을 가진 여자였다. 또 다른 한명은 부풀어 오른 커다란 분홍색 머리를 가진 여자였다.

    역시나 오늘도 같은 이미지였다. 항상 똑같다. 저 두 여자애가 나와 격렬한 키스를 한다. 내가 본 장면은 여기까지다. 계속 보다보면 그 뒤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지만 도저히 그 뒤 장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핑키 머릿속에서 보이는 저 주황 머리가 부디 내가 아니길 빌길 바랄뿐.

    "어때? 뭐가 보여?"

    핑키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진심으로 몰라서 묻고 있는걸까. 그야 당영히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게 보이지. 핑키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도저히 짐작되지 않았다.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보는데도 더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은 핑키가 유일하다.

    어째서 핑키 머릿속엔 그런 장면들만 보이는걸까. 내게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핑키는 하루종일 그 생각만 하고 사는걸까.

    "글쎄. 평소와 똑같아."

    내가 말했다. 정답을 알려줬다고도 회피 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핑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평소와 똑같다는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그럼 난 가볼게, 핑키."

    핑키의 인사도 듣지 못하고 나는 황급히 계단을 올라갔다. 자꾸만 방금 전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라 더 이상 핑키를 맞대고 얘기할 수 가 없었다. 나는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두 소녀의 행동이 떠나가질 않았다. 마치 핑키의 생각이 내 머리속에 전염된듯.

    당연히 수업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능력은 생각보다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치 내 눈 앞에 있는 것 처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숨소리, 서로의 살이 비비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온다. 책을 봐도 칠판을 봐도 속옷 차림의 나와 핑키가 내 눈에 어른거리는듯 했다. 나 혼자서는 수없이 고민해봤다. 이런 문제를 누구에게 말하기도 뭐하고 믿어주지도 않을테니까.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고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이제는 핑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핑키에게 솔직하게 말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친구를 언제까지 이렇게 피해만 다닐 수 없었다. 어쩌면 핑키는 웃으면서 장난이었다고 말할지도 몰랐다. 내 능력을 이용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게 핑키의 목적일것이다. 열이야 받겠지만 차라리 그러길 빌었다. 짓궃은 핑키의 장난에 걸려들은 것 뿐이니. 하지만 만약에 장난이 아니라면 어쩌지. 정말 날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라면 난 대체 뭘 해야하지.

    무심결에 노트에 적은 무의미한 낙서마냥 내 생각이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런 능력을 갖게 된걸까.





    수업을 듣고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밴드 연습을 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플래시가 또 집적거리길래 쫓아내기도 했다. 모든게 평범한 학교 생활이었다. 단, 핑키가 내 옆에 있을 때는 제외하고. 점심 시간에 핑키가 내 오른편에 앉을 때는 시선을 오른쪽 방향으로는 아예 돌리지도 않았다. 밴드 연습이 끝나고 핑키가 내게 물을 건내려 할때는 일부러 레인보우 대쉬의 물병을 뺏어서 마셨다. 핑키가 말을 걸려할때면 의도적으로 대화를 자르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핑키는 그 때 마다 버림받은 강아지같은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보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이제는 죄책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책과 노트를 캐비넷에 집어넣었다. 핑키 생각 때문에 하루동안 내가 뭘 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까. 이퀘스트리아에 있는 트와일라잇에게 도움을 좀 구해볼까. 그 애라면 그래도 내 마법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지도 몰랐다. 집에 가서 서랍장에 처박혀있는 일기부터 찾아봐야겠다.

    "선셋 쉬머!"

    고개를 돌려보니 복도에서 핑키가 다급하게 날 부르고 있었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때에 또 나타나다니. 집이라도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못들은척 하기에는 핑키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너무 커서 주변의 학생들이 전부 날 쳐다볼 정도였다.

    핑키는 한달음에 내 앞으로 달려왔다. 핑키는 어딘가 다급해보였다. 

    "나랑 어디 가야 할 곳이 있어, 선셋. 급한 일이야!"

    핑키는 평소와는 다르게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

    "빨리, 빨리 가야해."

    핑키는 설명할 틈도 없이 덥썩 내 손을 움켜쥐더니 날 끌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핑키."

    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핑키의 손을 잡으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핑키의 생각을 읽게됐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던간에 핑키는 지금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봐왔던 것과 똑같았다. 대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디로 뛰어가고 있는거야.

    "쫌 놔봐, 핑키!"

    나는 도저히 눈 앞의 광경을 볼 수 없어 핑키의 손을 뿌리쳤다. 핑키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봤다. 너무 세게 뿌리쳤나. 핑키가 조금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듯했다.

    "저기, 내가 갈테니까 먼저 앞장서."

    나는 무안해서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핑키는 다시 앞장서기 시작했다. 대체 핑키가 말하는 급한 일이라는건 뭘까. 혹시라도 학교에 또 다른 위협이 온걸까. 어떻게된게 이 학교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것 같다. 정말 누구때문인지. 아, 나 때문이지.

    급한 일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갔다. 다급하게 핑키가 들어간 곳은 가사 실습실이었다. 내가 뒤따라 들어가자 핑키는 문을 닫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사 실습실이었다. 요리를 할 수 있게 싱크대와 불판과 오븐이 한 세트로 방안에 여러 곳 놓여있었다. 수업은 모두 끝났고 방과후 활동에서도 사용하지 않는지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적어도 친구들도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아무리 살펴봐도 핑키가 말하는 급한 일로 보이는 점은 아무곳도 없었다.

    "저기, 핑키. 여기에 뭐가 있다고 그러는거야?"

    핑키는 급하게 달려와서 그런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소리가 넓은 방안에서 울렸다. 어쩐지 방금 전 보았던 핑키의 머릿속 장면이 생각났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뿌리치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드디어 우리 단 둘이만 있게됐어."

    "어?"

    핑키는 날 보며 실실 웃었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급하다며 뛰어온 핑키가 나와 단둘이 있게된 사실이 뭐가 중요한거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심장이 쿵쿵 울렸다. 내 시선은 갈 곳을 잃었다. 가사 실습실과 핑키와 뒤에 있는 문을 번갈아봤다. 떠올리려 하지 않으려 해도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피, 핑키?"

    "있지, 선셋. 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핑키는 흥분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은 한계까지 내 가슴을 몰아붙었다.  얼굴이 굳어버려 도저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얼굴은 불덩이처럼 타오르는데 몸은 떨리는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쩐지 이상했다. 이 긴장은 불안인가 기대인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아나고 싶지만 핑키가 무얼 할 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나는 핑키가 할 말을 기다렸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핑키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핑키가 두 손으로 내 두 볼을 감쌌다. 보드라운 핑키의 손바닥이 내 볼을 입술쪽으로 모았다. 나는 덜덜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드디어 단 둘이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됐어!"

    핑키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설마 방금 말한게 핑키가 맞나 확인하려고.

    "케이크?"

    내가 바보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핑키는 내 볼에서 손을 떼더니 싱크대 쪽으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나는 문 앞에서 멍한채로 핑키를 쳐다봤다.

    "케이크?"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핑키는 서랍을 열어 케이크를 만들 재료를 꺼내고 있었다. 그릇, 밀가루, 버터, 설탕, 계란, 물. 영락없는 케이크 재료들이었다. 황당함에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케이크를 만들려고 날 불렀다고!?"

    "맞아, 선셋. 어서 같이 만들자."

    핑키는 소리내어 웃더니 밀가루 봉지를 뜯어 볼에 쏟아넣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세게 쳤다. 대체 내가 뭘 기대한건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기대했다는 사실 자체도 부끄러웠다.

    "네가 분명 급한 일이 있다고 했잖아!"

    당혹감이 지나가자 이번엔 분노가 찾아왔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핑키는 화들짝 놀라더니 의기소침해졌다.

    "괜히 심각한 일인척 사람 긴장시켜 놓고선 그게 끝인거야?"

    핑키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땅바닥만 쳐다봤다.

    "미안해."

    사과를 들으니 내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만 나면 참지못하는 나쁜 옛날 버릇이 또 나와버렸다.

    "사실은 요즘 선셋이 나를 자꾸 피하는거 같아서 말이야. 같이 케이크 만든지도 오래됐고. 그래서 데려온건데."

    핑키의 목소리가 점점 꺼져갔다. 얼굴에는 웃음이 완전히 사라져갔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는건데. 분노가 쉽사리 꺼지진 않았지만 무턱대고 핑키에게 화를 낼 순 없었다. 처음부터 멍청한 오해를 한 건 나였으니까. 

    "선셋은 나랑 케이크 만드는거 싫어?"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핑키를 피해다니고 있다는건 핑키도 알고 있었다. 그 원인까지는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평소처럼 밝게 웃어서 티는 나지 않았지만 그녀도 신경이 많이 쓰였나보다. 여기서 거절하고 돌아간다면 핑키는 상처를 받겠지. 이상한 마법때문에 내 친구까지 잃을 순 없었다.

    "그래. 케이크 만들자."

    "고마워, 선셋!"

    "소리질러서 미안."

    "괜찮아."

    핑키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귀여운 애한테 무슨 딴 생각이 있을리 없었다.

    핑키의 제빵 솜씨는 언제봐도 수준급이었다. 내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해치웠다. 핑키는 케이크를 만들면서 한순간도 입을 놀리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핑키의 정신없는 수다에 대화를 따라잡는것도 벅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재료를 가져다주는 일 뿐이었다. 그래도 핑키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안심이 되었다.

    케이크는 어느새 뚝딱 만들어졌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새빨간 딸기가 올려져있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였다. 핑키는 팔소매로 이마를 닦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이제 마지막만 하면 끝이야."

    핑키가 말했다. 그녀는 자기 머리속에 손을 집어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스프링클이 담긴 작은 병이었다. 핑키는 손바닥에 스프링클을 왕창 뿌리기 시작하더니 케이크 위로 흩뿌렸다. 핑키는 자기가 만든 과자나 빵에는 무조건 스프링클을 뿌렸다. 스프링클을 정말 광적으로 좋아하는 아이였다.

    잠깐, 스프링클이라고?

    "안돼, 핑키. 멈춰!"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케이크 위에 뿌려진 스프링클은 분홍빛의 섬광을 내기 시작하더니 폭발해버렸다. 산산히 뜯겨나간 케이크는 사방으로 무자비하게 튀어나갔다. 싱크대는 물론이고 핑키와 내 몸에까지 덕지덕지 묻어버렸다. 연기가 사라지자 케이크가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파편들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멍하니 케이크였던 잔재들을 쳐다봤다.

    "아, 맞다. 스프링클을 만지면 폭발했지. 하하하!"

    핑키는 뭐가 그리도 웃긴지 크림을 뒤집어 쓴 채 깔깔 웃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는데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신기했다.

    핑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입 주위에 튄 케익 파편들을 혀로 날름 집어먹고는 음하고 맛을 음미했다.

    "역시 내가 만든 케이크야! 너무 맛있어."

    "그보다 좀 여길 좀 닦아야겠다. 완전 난장판이야."

    내가 행주를 찾으며 말했다. 내가 싱크대를, 핑키는 바닥을 닦았다. 케이크가 엄청 아까웠다.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한입도 못먹고 이렇게 폭발해버리다니... 아무래도 핑키도 자기 능력을 조종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얼추 주변 정리는 끝낸거 같네."

    설마 옆 싱크대까지 넘어갔을줄이야. 케이크 만드는것 보다 청소하는데에 힘을 더 쓴거 같았다.

    "아직 안끝났어. 너도 케이크가 묻어있잖아."

    나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옷은 물론이고 몸에도 빵조각과 크림이 이곳저곳에 튀어있었다. 어떻게 내가 닦아보겠다고 해보긴 했는데 아직도 많이 지저분하다. 누가보면 얼굴이 아니라 몸으로 케이크를 먹은 줄 알겠다.

    "이건 뭐, 어쩔 수 없어.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샤워를 해야지."

    "아냐, 내가 대신 닦아줄게. 옷 벗어봐."

    "어?"

    핑키가 말을 끝낸 동시에 내가 물었다. 나는 뒷걸음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목소리의 떨림이 당혹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딱히 문제될 것 없는 말이었지만 내 뇌는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누구든 핑키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면 그러는게 당연했다. 핑키는 내 반응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케이크가 몸에 다 튀었잖아. 내가 다 닦아줄게."

    "그럴 필욘 없어. 혹시 누가 여기 오면 어떡하려고?"

    핑키는 내 말을 듣더니 출입문 쪽으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이럴땐 행동이 정말 잽싸다. 나는 할말이 없어 우물쭈물했다.

    "자, 이제 됐지?"

    "하지만 집에 가서 씻으면 되는걸."

    "그 상태로 집에 가려면 어어엄청 찝찝할걸."

    핑키 말이 맞다. 옷속에 케이크를 닦아내고 싶긴 했다. 더 이상의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옷 벗는게 부끄럽다고 하기도 뭐하다. 내가 온 곳은 옷 입고 다니는게 더 이상한 곳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으니까. 단지 상대가 핑키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선셋 왜 그래? 너 이상해."

    핑키가 날 보더니 웃었다. 이상한건 내가 아니라 네 머리속이라고! 진심으로 소리치고 싶었다.

    "알았어. 그럼 빨리 부탁해."

    내가 대답을 했다. 차라리 이렇게 버티는 것 보단 빨리 끝내버리는게 낫다. 더 버티고 있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거같고. 검은 자켓과 얇은 하늘색 원피스를 벗어 선반위에 올려놨다. 부츠와 스타킹을 신고 팬티와 브래지어만 찬 요상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았다. 핑키는 티슈를 손에 쥐며 내게 다가왔다.

    혹여나 핑키가 내 손을 만질까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무릎위로 올려놓았다. 지금같은 상황에 핑키의 머릿속을 읽는다면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것 같았다. 어쩐지 점점 긴장이 됐다. 자꾸만 마른 침을 삼키게 되고 심장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내가 닦아줄게."

    핑키가 내 귀에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했다. 핑키는 내 몸에 바싹 대더니 귀 뒤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핑키의 얼굴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다. 그녀 특유의 달달한 설탕냄새가 희미하게났다. 나는 도저히 핑키를 바라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선셋, 너 지금 귀 엄청 빨개. 혹시 더워?"

    얼굴이 타버릴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했는데 그게 착각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핑키는 귀 뒤쪽에서 얼굴쪽으로 옮기며 크림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반대편 손이 내 어깨를 잡을때는 흠칫 놀라기도 했다.

    핑키는 단지 묻은 크림을 닦아주는것 뿐인데 어쩐지 내가 힘이 쭉쭉 빠졌다. 핑키의 따듯한 손길이 몸에 닿을때 마다 움찔 떨곤 했다. 희미하게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부디 핑키가 듣지 못했으면 했다.

    핑키는 허리를 굽히더니 쇄골과 가슴쪽에 묻은 크림들을 닦기 시작했다. 겨드랑이쪽을 훑고 지나가는 동안엔 입술을 질끈 물어 숨을 참았다. 핑키는 한참동안이나 가슴쪽에서 머물렀다. 어쩐지 일부러 천천히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핑키는 마사지를 하듯 내 몸을 자꾸만 어루만졌다. 간지러움과 함께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점점 힘이 빠지고 머릿속이 달아올랐다. 머릿속엔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목적이 크림을 닦는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나 사실은 일부러 알고도 설탕 장식을 뿌렸을거라는 생각같은. 하지만 핑키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속옷만 걸친채 친구가 크림을 닦아주는 것을 즐기는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버렸다.

    "어, 다리에도 조금 묻었어."

    "그, 그래?"

    대답하고도 이게 내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힘이 빠져있었다. 목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도 같이 빠져나왔다. 차라리 말을 안하는편이 나을것 같았다.

    "잠깐만. 닦아줄게."

    핑키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다리쪽으로 바짝 기댔다. 그녀는 이번엔 내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안쪽 허벅지 사이를 어루만졌다. 나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다간 이상한 숨소리가 새어나올것만 같았다. 핑키는 점점 더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속옷 끝자락까지 손바닥을 쓸고 지나가자 온몸에서 전기가 오듯 부르르 소름이 돋았다. 핑키는 다시 반대쪽 허벅지로 옮기더니 점점 아래쪽 다리로 내려왔다.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케이크가 튀었다고 해도 거기까지 묻어있는건 말도 안됐다. 하지만 나는 말릴 수 없었다.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무기력하게 핑키의 손길만을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됐어. 다 닦았어!"

    핑키가 티슈를 휴지통에 버리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왠지모를 아쉬움과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온몸에 힘이 전부 빠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일어서라하면 다리에서 힘이 풀려 그대로 풀썩 주저 앉아버릴것 같았다. 

    핑키는 대체 무슨 생각인걸가. 아니, 생각이라면 내가 다 알 수 있는데. 지금 핑키의 마음을 읽는다고해도 보이는게 달라질까. 모르겠다. 이젠 생각하기도 귀찮다.

    핑키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헉하고 놀랐다.

    "세상에. 벌써 알바 갈 시간 다 됐네. 선셋, 나 먼저 갈게. 옷입고 나와!"

    "가, 간다고?"

    핑키는 언제나처럼 자기 할 말을 끝내고 사라지려했다. 막아야 하나. 아니 막는다고 내가 뭘 한다고. 뭔가 핑키에게 바라는게 있는것도 아닌데. 그녀는 순식간에 자리를 정리하고 가사실습실 문을 열었다. 뭔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일어나있지도 못한 상태였다.

    핑키는 문을 열고 나가려다 빼꼼 고개만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날 보더니 씨익 웃었다.

    "다음엔 우리 단둘이 더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보자."

    핑키는 윙크를 하고 머리를 쏙 뺐다. 어느덧 가사 실습실에는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되었다.

    이번일로 확실히 알게되었다. 내가 핑키의 생각을 훤히 알고있었다는것은 내 착각이었다. 오히려 상대의 생각을 훤히 꿰뚫어보는건 내가 아니라 핑키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핑키가 하는대로 그저 끌려다닐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날 조금씩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얼 할지는 나조차도 모르겠다. 그건 핑키의 머릿속만 알고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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