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퍼펙트 센스라는 영화가 있다.</div> <div>겉으로 보면 이완 맥그리거와 에바 그린을 내세운 러브러브한 영화다.</div> <div>하지만 가면을 벗기고 그 맨 얼굴을 바라보면 인간의 감각에 대한 보고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div> <div> </div> <div>영화가 내세운 주인공은 요리사인 마이클(이완 맥그리거)과 전염병 연구자인 수잔(에바 그린)이지만 그들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들이 아니다.</div> <div>그들은 서로 만나 사랑을 키워가지만...</div> <div>극의 주인공은 사실 정체모를 전염병이다. 전염병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병, 병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어떤 것이 극을 이끌어가는 것이다.</div> <div>주인공들은 그 어떤 것에 끌려다니며 과연 인간에게 감각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이다.</div> <div> </div> <div>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div> <div>인류가 원인도 모른 채 감각을 하나씩 잃어간다는 것이다.</div> <div> </div> <div>처음에는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슬퍼하다가 후각을 잃어버린다.</div> <div>눈물을 흘리며 마구 울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식이다.</div> <div>어리둥절함과 불안함 속에서 사람들은 냄새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잃어버리고 만다.</div> <div>물론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워서 후각을 대체할 감각을 찾아낸다.</div> <div>마이클과 수잔은 어찌어찌 만나 길을 걷다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거리 공연을 보게 되는데... 이 장면 꽤 인상적이다.</div> <div>거리의 바리올리니스트는 소리를 통해 풀내음이나 새벽공기 등을 표현하면서 후각을 잃은 우울한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던 거다.</div> <div> </div> <div>하지만 그것도 잠시</div> <div>다음에는 갑자기 게걸스럽게 먹어댄 후 미각을 잃어리게 된다.</div> <div>아무리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레스토랑 사장은 음식이 밀가루와 지방에 불과해졌다며 절망한다.</div> <div>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사인 마이클은 바삭거리는 느낌, 차갑고 따듯한 온도, 아름다운 색 등을 이용해 요리를 만든다.</div> <div>맛은 느낄 수 없어도 촉각과 청각과 시각으로 음식을 먹을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다.</div> <div>후각과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들...</div> <div>그래도 이들은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낸다.</div> <div>락콘서트를 찾아다니며 소리에 열광한다.</div> <div>사람들은 감각을 잃었지만, 덕분에 감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div> <div> </div> <div>하지만 이젠 갑자기 분노한 후 소리마저 사라지고 만다.</div> <div>시각과 촉각만 남은 사람들... 공포에 떠는 사람들... 이제 곧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div> <div>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잔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마이클은 요리를 만들어낸다.</div> <div>레스토랑의 손님들은 이제 수화를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div> <div>어쨋든 삶은 지속되지 않는가?</div> <div> </div> <div>그런 그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쳐온다.</div> <div>어느날 인간들은 온 세상이 반짝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div> <div>화려하게 빛나는 빛의 감각들 속에서 환희와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div> <div>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임을 직감한 마이클과 수잔은 서로를 찾아 헤멘다.</div> <div>늦기 전에 만나야 한다.</div> <div>후각을, 미각을, 청각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시각마저 잃어버린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나 이외의 존재, 사랑하는 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div> <div>시각을 잃기전에 만나지 못하면...이제 그들은 영원히 서로를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div> <div> </div> <div>영화는 결국 둘이 서로를 끌어 않은 후(그나마 다행인가?)... 온 세상이 검게 변해버리며 끝이 난다.</div> <div>그들에겐 오직 촉각만이 남았고... 그 촉각마저도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div> <div> </div> <div>감각의 소중함...</div> <div>그리고 떠오르는 건 칸트였다.</div> <div>감각기관의 감각형식, 그리고 물자체...</div> <div>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인간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의 감각형식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이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div> <div>눈이 볼 수 있는 만큼만</div> <div>귀가 들을 수 있는 만큼만</div> <div>코가 냄새 맡을 수 있는 만큼만</div> <div>살이 느낄 수 있는 만큼만</div> <div>혀가 맛 볼 수 있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이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div> <div> </div> <div>우주를 감싸는 빛 중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은 가시광선 뿐이다. 그밖의 세계는 경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div> <div>박쥐를 생각하면 더 쉬울 게다.</div> <div>인간과 박쥐는 같은 지구 위에 있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지구와 박쥐가 경험하는 지구는 서로 다른 지구다.</div> <div>우리의 감각은 처음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div> <div>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이라 여겨왔다.</div> <div>얼마나 독선적이고 야만적인가?</div> <div> </div> <div>물론 인간의 감각, 감각할 수 있는 현상,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div> <div>칸트는 물자체를 이야기하며 그 너머에 그 사물의 본질이 있다고 상정했지만, </div> <div>헤겔의 지적처럼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즉 본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상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div> <div>어쩌면 후설이 이야기하듯 우리의 경험, 그 현상이 전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div> <div>흄의 지적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경험뿐이다.</div> <div>(사실 이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div> <div> </div> <div>그런데 그런 경험들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div> <div>어쩌면 그 경험들이 나를 정의해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div> <div>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왔던 나의 경험들이 나의 전부는 아니었을까?</div> <div> </div> <div>모든 감각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과연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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