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뮬라시옹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시뮬라시옹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시뮬라크르를 설명해야 한다. 휴~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데... 어려우니 쉽게 가자.
여기 세계지도가 있다고 치자.
우린 세계지도를 보며 아시아나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대륙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님 반대로 대륙과 대륙을 가르는 대서양이나 태평양 등을 확인할 수도 있다.
아~ 아름다운 지구, 푸른지구, 외계인들이 군침흘리고 어벤져스가 지켜주는 지구... 우리 지구는 이렇게 생겼구나~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린 지구의 진짜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세계지도는 물론이고 지구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지도는 실제지형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도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심사, 정사, 평사도법이 있다.(따지자면 이거 말고도 많지만... 넘어가자.)
심사는 지구의 중심에서 지구를 보는 방법이고
정사는 지구의 한끝에서 지구를 보는 방법이며
평사는 지구의 표면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 보는 방법이다.
메르카토르나 몰바이데, 구드 등의 도법은 이를 기반으로 한 도법들이다.
(언어의 한계를 다시금 느낀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말보다 그림 하나가 더 잘 이해된다.)
지구는 하나인데, 지도는 보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개인 상황...
어떤 면에서 이는 '본다'는 것, 시각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본다는 것은 바라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의 관계를 형성한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한쪽이 양쪽을 모두 다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전체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눈은 저 하늘 너머 우주까지 바라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바라보지 못한다.
인간은 눈은 눈앞의 것만 볼 수 있고, 그마저도 눈 앞에 손바닥을 갖다대면 손바닥만 볼 수 있다.
지구를 본따 만든 지구본조차 완벽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구본이 지구를 가장 똑같이 재현했다쳐도 정작 지구본을 보는 사람은 지구본의 반대편을 볼 수 없다.
이는 지도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문제, 본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본다는 것은 볼 수 있을 만큼 볼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본다'의 주체인 우리도 이 세계의 본질을 본질 그대로 완벽하게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칸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약간 우겨넣기 식이긴 한데... 딴게 딱히 떠오르는게 없어서--;;)
칸트는 우리가 이 세계의 현상은 볼 수 있어도 그 본질, 즉 '(사)물자체'는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예로 든다. (궁금한 분은 순수이성비판, 1. 선험적 감성론을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만 이를 경험하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공간과 시간 같은 형식이다.
물론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앞과 뒤를 분별하며, 어제와 오늘을 구분한다. 우리에게 공간과 시간은 실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과 시간은 감각기관의 감각형식에 따른 공간과 시간이다.
감각기관의 감각형식... 쉽게 말해 우리 눈, 코, 귀, 혀, 살이 경함할 수 있는 만큼, 또한 경험할 수 있는 방식대로 경험되는 현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눈은 빛, 즉 가시광선을 기반으로 이 세계를 이해한다. 하지만 빛의 영역에서 가시광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다.
빨간색 너머의 적외선과 그 너머의 엑스선과 감마선, 보라색 너머의 자외선과 방송선 등은 그 영역이 가시광선과 비할바가 아니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이 이 세계의 전부라고 여기지만, 이 세계에는 내가 볼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박쥐가 경험하는 세계나 돌고래가 경험하는 세계를 떠 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분명 우리와 다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세계, 본질에 대한 나의 이해는 처음부터 부분적이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을 감각기관의 감각형식에 따라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
공간과 시간 속에 이 세계가 존재한다기보다 공간과 시간이란 틀, 그 형식에 근거해 이 세계가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형식, 그 관점에 따라 이 세계가 각기 다른 모습을 띨 수 있다는 의미로 나아간다.
지도는 보기에 따라 진짜이기도 하지만 가짜이기도 하다.
각각의 위치에서 볼 때는 모두 다 지구의 진실한 모습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지구의 전체모습, 본래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다양성이나 상대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전체모습, 본래모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각기 다른 관점과 해석을 맞네 틀리네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무렇게나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이 옳은 이유를 제시하고 그 논리와 체계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주장한다 해서 진실이 없어지고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성과 상대성이 당연해진 요즘
일각에서는 사회지도층 대부분이 친일파후손이니 친일사관을 정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세상에 옳고 그름이 사라졌으니 자랑스런 '하면된다' 정신을 계승해 무조건 옳게 만들면 그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양성과 상대성은 지좆대로 같다 박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에도 엄연한 목적이 있고 질서가 있다.
원래의 의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자신을 위해 오용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자 방탕이다.
아 ㅅㅂ... 아직도... 그냥... 콱...
음...
자중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자.
완벽한 지도 만들기...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원론적으로 완벽한 지도를 만드는 궁극의 방법은 지도를 실제지형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지구와 똑같은 지도를 만들고 싶다면 지구와 같은 크기로,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도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지구 옆에 지구와 똑같은 지도를 만들어 놔도 그 지도는 지구가 아닌 지구 옆에 존재하는 지도가 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재현을 위해서는 궁극적 의미에서 원본을 밀어내고 자신이 원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지도의 목적, 무언가를 재현한다는 자신의 목적은 사라지고 만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지구에 살지만 그래서 지구를 직접 밟고 서 있지만, 지구 전체를 보지는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세계지도를 이용해 지구를 이해하려 든다. 지도를 이용해 지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지도가 만들어낸 지구의 이미지이지 지구 본래의 이미지는 아니다.
본래의 지구가 아니라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만들어낸 일면의 지구인 것이다.
지구 사진도 마찬가지다. 지구 사진은 지구의 특성상 그 반대편을 보여주지 못한다. 보여주지 못하기에 상상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지도를 보거나 사진을 보거나 상상된 지구를 지구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지구를 바탕으로 실재의 지구를 이해하게 된다.
가상의 지도를 바탕으로 현실의 지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상과 현실의 전도...
하지만 문제는 가상과 현실이 전도되면서 진짜 현실이 가려진다는 점에 있다.
지도를 통해 지구를 이해하다보니, 가상의 지구를 이해하다보니 진짜 지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디즈니랜드나 워터게이트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디즈니랜드는 가상의 세계다. 미키마우스나 도날드덕이 사는 세계... 어린이들이 환장하는 세계다.
때문에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허구의 세계에 홀딱 반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들의 세계를 실재세계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미국은 실재하는가?
사실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국기나 국가 같은 상징... 그리고 정부가 존재할 뿐이다.
또 다른 예로 화폐경제체제는 실재할까? 사실 화폐의 가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된 것이다. 인위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국가나 화폐의 허구성을 다루자면 길어지니... 다음에 다루도록 하자.)
그들은 디즈니랜드를 보며 미국이라는 국가가 실재라고 여기게 된다. 마치 매트릭스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꿈을 현실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워터게이트도 마찬가지다.
워터게이트를 통해 닉슨이 하야했다고 해서 정치가 깨끗해졌는가? 정의가 실현되었는가?
닉슨은 하야했어도 정치판은 그대로였다. 닉슨의 하야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정치판이 극약처방을 내린 것에 불과하다.
닉슨이 하야했다고 민주주의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절망할 필요는 없지만, 희망이 없기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말이 안통하네뜨가 부정선거 인정하고 하야한다고 해서 청와대나 여의도가 깨끗해질거라 여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본질은 그대로인데... 얼굴마담만 바뀌게 될 뿐이다.
시뮬라크르가 본질을 가리고 허상을 만드는 것이라면
시뮬라시옹은 이러한 현상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허상이 현실처럼 기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려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동양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주장하고, 그 주장을 근거로 새로운 주장이 제시되고 또 다른 주장이 제시되고
그렇게 몇 십, 몇 백년 흐르자 현실의 동양은 여기있는데, 동양과 상관없는 생뚱맞은 정의로 동양을 설명하고 있는 상황...
마치 우리가 일본에 의해 '한'의 민족이네 뭐네로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현실과 가상...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모두가 현실이다.
문제는 그 현실을 단순한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허구적 현실로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단순한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허구가 될 것이고
허구적 현실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될 것이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얻어질 진실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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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불가지론자는 왜 이리 항상 허무를 느끼게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