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어떤 면에서 기준잡기다.
옳고 그름의 기준,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려는 것이다.
중세의 기독교나 근대의 과학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을 기준으로, 혹은 과학을 기준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철학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우리는 이러한 노력들을 거쳐, 우리에게 있어 절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옳고 그름, 선과 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기준이 다양하고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을 뿐이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따지는 이성 자체는 그 기능을 멈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다양성과 상대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간단한 예로... 난 보수주의자다.
굳이 현재의 사회체제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억지로 바꾸려들면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어떻게 바꾸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현재의 체제만 잘 지켜도...
민주주의 하자고 했으면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르고, 법치주의 하자고 했으면 법치주의의 원리에 따라도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는 많은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특히 진보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 사회가 변해야만 하는 이유를 들이댈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지금 현재는 분명 불만족스럽고 변화시켜야 할 모습일 것이다.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수많은 주장과 논리들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 궁극의 정답은 없다.
둘 다 일장일단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그냥 보수주의자로 남을 생각이다. 그게 내 취향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당연한 기준이 타인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은 기준, 틀린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현실 안에서 보수는 보수가 아닌 진보로 분류된다.
나는 여전히 보수지만, 수구꼴통의 기준으로 보자면 진보가 되고 만다.
이성과 논리, 객관성이나 합리성은 곧잘 종북 프레임에 갇혀 버리고 만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얼굴마담이나, 원세훈이나 김용판 같은 똘마니들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그 이념적 성향이 어떠하든 '보수'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그 이유나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설득하거나 변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칭 보수라 칭하는 수구꼴통의 진영에 속하지 않으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 동조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는 진보라는 낙인이 찍힌다.
대한민국에서 진보란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수구꼴통과 다른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오죽하면 낸시 랭같은 청담동 빠순이마저 종북으로 몰리겠는가?
나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고 수구꼴통을 가른다.
하지만 수구꼴통은 자신의 기준으로 종박과 종북을 가르고, 진보는 진보의 기준으로 통진당과 정의당을 가른다.
서로가 각자의 기준으로 각자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보수나 진보는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양보하기도 한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구꼴통의 경우, 자신의 주장만이 정답이라고 우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은 누가 뭐라해도 틀린 답이라 여긴다.
그럼 누가 맞고 틀릴까?
막상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들면 서로의 기준과 정의가 다르다 보니... (수구꼴통을 제외하고는) 그 옳고 그름을 가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각자의 기준과 주장이 다르다보니...
같은 애국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고, 서로 다른 독제와 민주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애국가를 부르며 시위를 하고 태극기를 내걸고 시위를 진압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박정희의 독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한국식 민주주의로 둔갑하기도 했다.
보수가 진보가 되고 수구꼴통이 애국지사가 되는 상황은 마치 모든 기준이 허물어지고 사라진 것 처럼 보이게 만든다.
뭐가 뭔지 헷갈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상대적인 것이다.
돌아보면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기준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을 뿐,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수많은 기준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보수나 진보는 이를 수긍하고 인정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구꼴통은 언제나 오직 자신만이 진리다.
예를 들어 기독교와 이슬람... 이들은 서로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고, 상대방이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는다.
내가 옳고 너가 틀렸다고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려든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는 오직 자신만이 옳다고 믿으며 상대방의 주장은 단순한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기독교의 여호와와 이슬람의 알라는 동일한 신이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자손이라면 팔레스타인은 이삭의 배다른 형 이스마엘의 자손이다.
이들은 사실 같은 신을 모시는 한 형제였던 것이다.
(니네 정말 뭐하고 있니--;;)
다양성과 상대성은 권위적인 전통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다양성과 상대성이 무조건 좋은 것, 옳은 것은 아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고 우리 모두가 옳다는 식은 아니란 말이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할지라도 '기준'이란 것은 존재한다.
지금 현재 우리는 포스트모던을 거치며 모든 것에 대한 반대,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을 외치고 있다.
데리다 식으로 하자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며, 기준이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 자체가 없어요'는 답이 아니다.
물론 나도 정답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돌아보면 '기준은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가 답이란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기준 자체는 다양하고 상대적이지만, 기준이 다양하고 상대적이라고 해서, 즉 기준이 여러개가 되었다고 해서 기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을 생각해보자.
지구에 있을 때, 이들은 모두 같은 상하좌우앞뒤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 '태양이 위에 있다'고 말하면 상대방도 고개를 들어 태양을 보면서 '태양이 위에 있군'이라고 말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나의 위가 너의 밑이고, 나의 앞이 너의 뒤가 된다.
지구라는 공통의 환경이 사라지면, 공통의 기준도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상하좌우앞뒤라는 위치개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상하좌우앞뒤를 따지면,
서로의 상태에 대해 즉 누구의 발 밑에 누구의 머리가 있는지 누구의 왼팔에 누구의 오른팔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공통의 기준은 없어도 기준을 따지는 형식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는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그런 기준이 이미 있어 왔다. 모두가 다양성과 상대성만 외치다보니 깜빡하고 있었던 것... 이성과 논리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성과 논리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관점에 따른 한계가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과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자신이 밝힌 관점과 입장에 따라 일관성을 지니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성과 논리...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이놈의 대한민국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세력과 세력의 진영논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세국가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기준이란 이상과 이념, 논리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무리에서 나온다.
이들은 기분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그 기준을 날마다 바꾼다. 변덕이 죽끓듯 한다.
이들에게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뿐이다.
이 세상에 오직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자신이 마치 마지막 우주인이 된 것처럼 여기기에,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상하좌우앞뒤를 구별할 줄은 알아도 타인도 자신과 똑같이 상하좌우앞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단지 자신과 다른 위치에서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질 못한다.
나를 기준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면, 오직 유익이 되는 것만, 진리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들에겐 작용과 반작용, '지각의 다발'같은 경험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들에게 기준이 사라진 사회는 즐거운 놀이터다.
너에게 진리가 있느냐? 너의 생각이, 태도가,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느냐? 없지? 그럴 수 없지?
그럼 편하게 살어! 이것도 저것도 기준이 될 수 없고 진리가 될 수 없다면
널 빰때릴 수 있고 어를 수 있는 내 말에 따르라고, 마치 기계처럼 따르라고 쉼없이 명령한다.
중세의 교수형처럼 시범케이스를 만들어 위협한다.
노무현이 그렇고, 한명숙이 그렇고, 장진수가 그렇고, 채동욱이 그렇고, 권은숙이 그렇고... 이런 젠장 다 셀 수가 없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힘도 없으면 제발 좀 닥치고 복종하라는 그 압박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해져만 간다.
이들이 헤게모니를 잡은 세상에선 오직 힘만 있으면, 돈 있고 권력만 있으면 된다.
왜 돈을 가지고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우선 돈과 권력을 쥐고 남들의 머리 위에 서기만 하면 된다.
이들에게 타인은 단순한 도구, 자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이러한 사회일지라도 '상하좌우앞뒤'는 존재한다.
지구에 있을 때처럼 모두가 동일한 상하좌우앞뒤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상하좌우앞뒤의 공통개념, 그 형식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는 있다.
모두 똑같이 머리 위에 태양이 있다고는 말 할 수는 없게 되어도, 자신을 기준으로 상하좌우앞뒤는 따질 수 있다.
이성과 논리를 지니고 합의된 기준과 정의를 도출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때 상하좌우앞뒤를 자기 맘대로 뒤바꿔버리면,
즉 애국을 매국으로 친일을 독립운동으로 바꿔버리면 논리와 이성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면, 영화 그래비티처럼 우주를 해맬 수도 있다.
그 스스로가 기준을 잃고 자신의 좌표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좌표를 스스로 버리는 자들은, 논리와 이성을 그렇게 차버리는 자들은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주에 버려진 것 같은 상황... 기준이 사라진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기준'을 정하고 유지하는 것뿐이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객관성과 합리성을 유지하는 것 뿐이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렇게 서로의 기준을 만들어가려는 노력만이
한 인간, 한 집단, 한 국가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철학은 이를 위한 가장 전통적이고 위대한 무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철학을 가지지 못한 것은, 우리의 못남도 아니요. 우리 철학자들의 우매함도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철학 자체를...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집단, 미국과 일본의 종복이 되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파렴치한들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자신의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존재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들이 철학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당장 철학과들의 현실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철학에 대한 시민들의 열광을 보라.
그리고 철학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다수의 대중을 보라.
물론 그들만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들은 우리가 그들을 이겨낼 만큼 고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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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열이 뻣쳐... 생각이 정리 되질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