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존재는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div> <div>철학은 그 아이러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이고,</div> <div>이해할 수 없으면 최소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라도 설명하려는 노력이다.</div> <div> </div> <div>존재의 아이러니...</div> <div>쉬운 예로 후설의 인식론을 보자.</div> <div>인식한다는 것은 나와 너, 바라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가 분리됨을 의미한다.</div> <div>'나'라는 주체가 '너'라는 객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div> <div> </div> <div>문제는 그런 '나'라는 주체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이다.</div> <div>시간이란 과거-현재-미래로 나아가든, 미래-현재-과거로 흘러가든... 어쨋든 흐른다.</div> <div>고정되지가 않는 것이다.</div> <div>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지금 이 순간에 붙박여 살아간다.</div> <div>현재를 벗어난 '나'를 생각해본적 있는가? 그런 나는 나에게 이미 내가 아닌 내가 된다.</div> <div>나는 언제나 지금 현재에 붙박여 과거나 미래를 돌아본다.</div> <div>물론 지금 현재를 돌아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돌아본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다.</div> <div>지금 당장 '내가 누구지?'라고 생각해보자.</div> <div>바로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누구지?'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div> <div>지금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고 있고...</div> <div>그런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는 나를 인식하는 순간, 인식된 나를 하나의 대상으로 즉, 객체로 인식하게 된다.</div> <div>나는 현재 속에서 나를 인식하며 살지만, 인식된 나는 과거의 나, 대상이자 객체로서의 나로 존재하게 된다.</div> <div> </div> <div>나는 이 세계 속에서 죽기까지 지속되지만, 매 순간순간 나 자신과 다른 나로 살아가게 된다.</div> <div>내가 나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div> <div>논리는 모순을 부정하지만, 현실은 모순 투성이다. </div> <div>베르그손은 '기억'을 통해 자신의 지속을 확신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div> <div>사이버펑크 문학이나 영화는 기억조차 존재의 지속성을 보장해주지 못함을 보여준다.</div> <div>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같은 애니를 보라. 기억만큼 믿지 못할 게 어디있는가?</div> <div>나는 내가 나임을, 나의 지속을 과연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div> <div> </div> <div>물론 이러한 모순을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로 볼지, </div> <div>아직 인간이 미약해 풀지 못할 뿐, 언젠가는 밝혀낼 비밀로 볼지는 개인의 몫이다.</div> <div>철학이 과학이라고? 진리를 밝히고 정답을 제시해 줄 거라고?</div> <div>한때는 그렇게 믿어진 적도 있었지만, 지금 현재 철학은 논리에 바탕을 둔 신념 혹은 믿음에 불과하다.</div> <div>나쁘다는게 아니다. 답을 모른다해서, 미래를 모른다해서 답을 포기할 수도 미래를 포기할 수도 없다.</div> <div>어쨋든 나는 살아있고,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나에겐 내일이 온다.</div> <div>그렇다면 무엇이든 답을 제시하고 미래를 꿈꾸어야 하지 않는가?</div> <div>그게 현실이다. 현실이 요지경이면 현실이 요지경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대철학은 단지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했을 뿐이다.</div> <div> </div> <div>간과할 수 없는 건... </div> <div>철학을 이념으로, 즉 이데올로기로 풀려는 것은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div> <div>그것이 종교든, 과학이든, 철학의 탈을 쓴 미신이든 이데올로기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div> <div>알 수 없다고... 알 수 없기에 답답하고 괴롭다고 어던 한 이념에 빠져 드는 것은 이미 철학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div> <div>세계는 열려있다.</div> <div>이것은 희망찬 장미빛 미래가 아니다. 철학이 마주하는 것은 열린 세계의 모순과 혼란과 공포다.</div> <div>철학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이 수수께끼를 이 비밀을 풀려는 노력</div> <div>그런 '나'의 태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div> <div>하지만 그런 태도가 철학을 만들어갈 것이다.</div> <div> </div> <div>언제가 지금 현재 중세의 미욱함을 비웃는 우리처럼, 우리의 미욱함을 비웃을 후대를 위하여...</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