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어릴 때부터 철학을 좋아했다.</div> <div>그냥 생각하는 게 즐거웠다.</div> <div>하지만 대학교를 가고 밥벌이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기 위해 철학과 상관없는 과에 들어갔다.</div> <div>그래도 천성은 어쩔 수 없는지 어영부영 대학 다니면서 조금씩 철학책을 읽었다.(감히 철학을 공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div> <div>대학원에 들어가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철학책을 읽었다.(그래도 감히 철학을 공부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div> <div>사람들 만나 인맥을 넓혀야 할 시간에도 철학책만 읽으며 지냈다.(여전히 감히 철학을 공부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div> <div>주변에서는 전공이 우선이지 뭐하는 짓이냐는 질타도 많았다.</div> <div>그래도 철학이 좋아서 홀로 철학책을 읽으며 지냈다.</div> <div>어느정도 배움도 있었기에 우쭐하기도 했다.</div> <div>그럭저럭 남들 안하는 거 한다는 명분으로 강의도 다니면서 버텨나갔다.</div> <div> </div> <div>이제 아는 거라곤 철학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div> <div>물론 설익은 감처럼, 선무당처럼 안다는 게 문제긴 하다.</div> <div>그래서인가? 문득 돌아보니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div> <div>실력은 변변찮고 말만 많은 놈이 되어 있었던 게다.</div> <div> </div> <div>내탓이다. 책만 보았지, 사람을 보지 않았고 세상을 보지 않았다.</div> <div>그저 낭중지추라는 말만 믿고 언젠가는 알아주는 사람이 되겠거니 했다.</div> <div>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되려면 남들이 나를 알아주게끔 만들어야 했다.</div> <div>그것이 세련되든 끈질기든 비루하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남들에게 나를 알려야 했다.</div> <div>남들에게 알릴만한 나를 만들어야 했다.</div> <div>그런데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철학책만 붙잡고 있었다.</div> <div>덕분인지 얼마 안되는 기회마저 다 놓쳐버렸다. 아니 다 차버렸다.</div> <div>잡을 생각도 능력도 키우질 않았던 게다.</div> <div>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막막하다.</div> <div> </div> <div>외롭다.</div> <div>외로워서 철학책을 집어든다.</div> <div>마치 어린왕자의 술꾼처럼 난 철학책을 집어든다.</div> <div>철학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온갖 고독과 회의와 슬픔 속에서...</div> <div>그 고독과 회의와 슬픔을 잊기 위해 철학책을 집어든다.</div> <div> </div> <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건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div> <div>변변한 친구 하나 없어도, 선배는 물론이고 후배조차 마치 쓰레기 쳐다보듯 쳐다봐도,</div> <div>내일 당장 구걸할지라도, 죽음을 생각할지라도, 필부보다 머저리처럼 행동하고 내 삶에 당당할 수조차 없다 할지라도,</div> <div>내 삶을 후회하지는 않게 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게 되었다.</div> <div>삶이 괴롭지만, 두렵지는 않게 되었다.</div> <div> </div> <div>이만하면 철학... 할만하지 않은가?</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