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에비스상</b></div> <div><br></div> <div>친할아버지는 올해로 90살 가까이 되셨는데, 아직도 어부 일을 하신다.</div> <div>일 년에 한 번, 추석 쯤 큐슈의 할아버지 댁에 놀러갈 때는</div> <div>할아버지와 같이 연안에 나가서 낚시하는 건 우리 집의 관습 같은 일이다.</div> <div><br></div> <div>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여름방학에</div> <div>처음으로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div> <div>할아버지 배를 타고 낚시하러 가자고 하셔서</div> <div>둘이서만 새벽 5시 쯤 바다로 나가서 할아버지의 비밀 낚시터로 갔다.</div> <div>수십 분 정도 지나, 낚시터에 도착해서 배의 닻을 내리고</div> <div>어망을 설치하고 낚시대를 바다에 늘어뜨렸다.</div> <div>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인지 꾸벅꾸벅 졸던 나는</div> <div>할아버지께 "재밌는 이야기 들려줘"라고 부탁 드렸다.</div> <div>할아버지는 "으흠..."하고 잠시 생각하시더니 뭔가 떠오르신 것 같았다.</div> <div>검게 탄 얼굴에 주름이 지더니 와하하 하고 웃으며 말해주셨다.</div> <div>"이런 이야기가 하나 있지"</div> <div><br></div> <div>할아버지가 20살 정도 되었을 때, 아버지와 같이 어업을 할 때 일이다.</div> <div>그때는 아마 다이쇼 말이나 쇼와 초기여서,</div> <div>어업을 할 때 작은 엔진이 달린 배로 바다에서 고기를 낚곤 했다.</div> <div>어느 날, 증조부가 눈병이 심하게 나는 바람에 병원에 가야해서,</div> <div>할아버지 혼자 고기를 낚으러 가게 되었다.</div> <div><br></div> <div>어장에 도착한 후, 평소처럼 닻을 내리고 준비를 했는데</div> <div>선두에서 10미터 정도 앞에서 뭔가가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div> <div>잘 쳐다보니 익사체였다.</div> <div>요즘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div> <div>그 당시에는 그렇게 죽는 사람이 꽤 많은 시절이라</div> <div>그렇게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div> <div>게다가 이 지역 어부들 사이에는 익사체를 "오에비스상"이라고 부르며</div> <div>고기가 풍성히 잡히도록 해주는 신적 존재로 기리는 신앙이 있어서</div> <div>신원을 알 수 없는 익사체를 건진 어부는 마을 길가에 묻고</div> <div>그 위에 무덤을 만들어 장례를 지냈다.</div> <div>그런 이유로 할아버지는 익사체를 정해진 대로 배 좌현에서 끌어올렸다.</div> <div>도무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태였는데</div> <div>흙빛으로 퉁퉁 불은 몸, 옷도 너덜너덜했다.</div> <div>당연히 신원을 알 수 없었다.</div> <div>다만, 입은 옷과 체격으로 보아 남자였다.</div> <div>아무래도 이대로 익사체를 배에 태운 채로 고기를 낚을 순 없어서 되돌아가기로 했다.</div> <div><br></div> <div>이영차하며 닻을 올리려고 했다.</div> <div>그런데 닻이 너무 무거워 들어올리기 힘들었다.</div> <div>이 주변의 해저는 모두 모래기 때문에 바위에 걸릴 리가 없다.</div> <div>이상히 여긴 할아버지는 옷을 벗고 속옷 한 장만 입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div> <div>닻을 보니 뭔가가 얽혀 있었다.</div> <div>가까이 가보니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div> <div>여자 머리카락이 닻에 걸려 있었다.</div> <div>당연히 여자 익사체였다.</div> <div>기모노도 너덜너덜해서 긴 머리카락이 익사체가 여자임을 알려주었다.</div> <div>아무래도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두고 가는 것도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div> <div>이 바닷 속에 있는 여자도 끌어올려 배에 태우고 항구로 돌아갔다.</div> <div><br></div> <div>항구에 돌아가니 동료 어부로부터 "대어를 낚았군"라며 놀림 받으며</div> <div>혹시 아는 사람은 없는지 물어보고 다녔다.</div> <div>결국 이 익사체 둘의 신원은 알 수 없었다.</div> <div><br></div> <div>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이 둘을 "오에비스상"으로서</div> <div>길가에 매장하기로 했다.</div> <div>옷을 벗기고, 갈아입힐 때</div> <div>남자 옷에서 철제의 얇고 작은 상자가 있었고,</div> <div>그 안에는 종이 한 장이 아주 깨끗한 상태로 들어 있었다.</div> <div>아무래도 이 남자는 동반자살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것 같았다.</div> <div>종이 안에는 동반자살하려는 여자에 대한 마음이 적혀 있었는데</div> <div>"사랑한다"거나 "다시 태어나도 함께 있자"뭐 그런</div> <div>읽으면서 괜히 읽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의 내용이었다.</div> <div>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게 있었다.</div> <div>남자와 여자 목덜미 언저리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div> <div>둘 다 같은 문신이었는데, 장미 모양이었다.</div> <div>"이거 어쩌면..."</div> <div>아버지는 가족과 상담하여 둘을 함께 매장하여 기리기로 했다.</div> <div><br></div> <div>그 후, 고기가 풍성하게 잡히는 날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div> <div>할아버지의 아내,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가 임신을 해서 집안의 경사였다.</div> <div>이게 다 '오에비스상' 덕분이라며 한동안 그 무덤에 공양을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div> <div><br></div> <div>무서운 게 나오지는 않고 이상한 이야기라고 당시에 나는 생각했다.</div> <div>할아버지는 "어떠냐, 무섭지?"하고 주름진 얼굴에 더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div> <div><br></div> <div>어둑어둑해져서 항구에 돌아왔다.</div> <div>집에 돌아와보니 불단와 신단에</div> <div>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할아버지와 같이 기도를 올렸다.</div> <div>그때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div> <div>증조부모의 위패 외에도 뒤에 왠 여자 아이 사진이 있었다.</div> <div>"누구야?"하고 할아버지께 여쭤보니</div> <div>"내 딸이란다"라고 하셨다.</div> <div>이때까지 아빠에게 여형제가 있단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div> <div>내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자, 할아버지가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div> <div>"이 아이는 내 딸인데, 너희 아버지랑 쌍둥이 여동생이란다.</div> <div> 목 뒤에 둘 다 큰 점이 있지"</div> <div>라고 말하며 할아버지는 하하하 웃으셨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아빠한테 확인해보니</div> <div>분명 카나라는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div> <div>병 때문에 10살이 채 안 되어서 죽었다고 한다.</div> <div>아버지께 주저하며 목의 점에 대해 여쭤보니</div> <div>"그러고보니 있었지. 쌍둥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하셨다.</div> <div>그건 그렇지.. 쌍둥이면 같은 곳에 점도 있을 수 있겠지.</div> <div>그저 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