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한가족 전원 일요일 저녁 덕혜옹주 보고 왔습니다.
11살 딸아이부터 장모님까지 전가족 출동했었어요.
역시 아직 아이에겐 와닿기 힘든 영화였긴 합니다. 끝까지 티내지 않고 관람해준게 고맙네요. 다음 주말엔 목천이라도 한번 다녀와야 할 듯.
짧게 정리해봅니다.
1. 손예진은 강수연의 계보를 이을 배우네요.
오히려 미모가 너무 뛰어나 연기력에 디버프가 걸리네요. 그래도 이번 영화에선 여배우로써 쉽지 않았을 시도를 많이 했고, 연기력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손본좌 인정합니다.
2. 영화 초반에 픽션임을, 실제 인물의 이야기와 다름을 두번이나 강조하고 시작합니다.
아나스타샤라던가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던 영화는 픽션임을 공지하고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소설임을 밝히고 시작합니다. 역사왜곡이란 얼척없는 주장이 대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극적으로 왜곡하기 가장 쉬웠을 인물인 소 다케유키의 답답함을 오히려 풀어주는 부분도 있을 정도니까, 왜곡이라는 말은 이 영화에 전혀 적절하지 않습니다.
3. 과할 수 밖에 없는 감정선을 담담한 시각으로 포착한 탁월한 연출력이 있습니다.
신파 구조로 몰고갔음에도 제3자가 밖에서 담담하게 보는 것 같은 카메라의 시선이 신선합니다. 더 울라고 부채질하는게 아니라 타인의 아픔이 담긴 기사를 전달하는 선에서 더 개입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느끼느냐가 극단적으로 갈릴 순 있지만, 관객에게 더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어요.
4. 일본에 대한 감정의 이용을 절묘하게 컨트롤 하는데 성공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일본의 만행에 분노를 느꼈다면 이 영화가 더 부채질 한게 아니라 그게 실제 있었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만행을 딱 있었던 만큼만을 배경으로 사용했을 뿐 더 사악하게 그리거나 뒤틀린 감정선으로 그린 장면이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에 돌리기 좋은 억울한 감정선을 윤재문이 연기한 한택수라는 인물에게 집중시킵니다.
다만 그 모든 비극의 시작이 모두 일본의 불법침탈과 불법강점에 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키지 않았어도 메시지가 자연스레 전달됩니다. 암살 같은 영화와 비교한다면 "사악한 일본제국의 만행"은 오히려 영화 안에서는 따로 연출되지 않았다 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아리랑 장면은 오글거리는 거 싫아하는 분들이라면 불호이겠습니다만, 그런 일이 한번쯤은 실제로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나라잃은 국민의 설움을 전달하기 좋은 장치도 없었겠지요.
전반적으로 80점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는 웰메이트 역사 기반 드라마였다고 봅니다.
어린 아이로써, 소녀로써, 아가씨로써, 유부녀로써, 초로의 늙은이로써 망국의 시대를 살아간 한 옹주의 스토리가 담담하기 때문에 더 슬프게 펼쳐졌습니다.
이미 망해버린 국가의 쇠락에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 잔영처럼 남은 마른 슬픔조차 느끼기 어렵지만, 근현대사가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준 날카로운 상처가 여전한건 이미 지나가 끝나버린 역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