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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1940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556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06/03 19:09:41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940 모바일
    [BGM]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함민복,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삭월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2.jpg

     

    손택수, 화살나무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동심원, 나이테를 품고 산다

    가장 먼 목표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으니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하는, 시윗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산길 위에서

     

     

     

     

     

     

    3.jpg

     

    최영철, 바람의 노래




    나는 비록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견딘 매화나무 기다림이

    욕되지 않게 해달라 빌었습니다


    나는 비록 새가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잃고 먼 하늘을 헤맨 소쩍새의 소망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 빌었습니다


    나는 비록 밥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찾아 온 눈발을 들쑤신

    살쾡이의 배고픔이 슬프지 않게 해달라 빌었습니다


    나는 천근 만근이어도 좋으니

    내 안의 무게에 저것들이

    떠메고 온 짐 다 얹어달라 빌었습니다


    내 안에 숨긴 고운 꽃다발 풀어

    저것들의 길 위에 뿌려달라 빌었습니다


    오래 더 오래 저것들의 등을

    어루만질 수 있게 남은 두 손

    잘게잘게 부수어달라 빌었습니다

     

     

     

     

     

     

    4.jpg

     

    홍윤숙, 오라, 이 강변으로




    오라, 이 강변으로

    우리는 하나, 만나야 할 한 핏줄

    마침내 손잡을 그 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오면, 끊어진 허리

    동강난 세월들 씻은 듯 나으리라

    너의 주름과 나의 백발도

    이 땅의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

    오늘도 여기 서서 너를 기다린다

     

     

     

     

     

     

    5.jpg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1/06/03 20:05:32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2] 2021/06/08 22:44:43  175.114.***.59  renovatiost  27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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