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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1109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80
    IP : 175.213.***.18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12/26 22:49:55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109 모바일
    [BGM]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조태일, 단풍




    단풍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

    제 몸처럼 뜨거운 노을을 가리키고 있네


    도대체 무슨 사연이냐고 묻는 나에게

    단풍들은 대답하네

    이런 것이 삶이라고

    그냥 이렇게 화르르 사는 일이 삶이라고

     

     

     

     

     

     

    2.jpg

     

    오상순, 나의 고통




    웃는 사람 따라서

    웃지 못함은

    고통(苦痛)이다

    그러나

    우는 사람 위하여

    울지 못함은

    더 큰 고통(苦痛)이다

     

     

     

     

     

     

    3.jpg

     

    신영배, 나의 아름다운 방




    오후 두 시 방향으로

    나는 상자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얇게 접어둔 다리


    의자는 새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앉아 있던 잠이 툭 떨어져 내린다

    의자가 쓰러지고

    새가 아름답게 나는 방


    오후 네 시 방향으로

    나는 물병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흠뻑 젖은 주둥이로 다리를 조금 흘린다

    관 뚜껑을 적시는 문장


    화분은 고양이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깨진 고양이가 내 손등을 할퀸다

    씨앗이 퍼진다

    갈라진 손등에 고양이를 묻고

    해질녘 손의 음송


    오후 여섯 시 방향으로

    나는 기다란 악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붉은 손가락으로 관 속의 다리를 연주한다


    커튼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젖히자 출렁이는 강물 속

    내 다리가 아름답게 흐르는 방

     

     

     

     

     

     

    4.jpg

     

    이장욱,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

    서로 다른 아프리카를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드디어 외로운 노후를 맞고

    드디어 이유 없이 가난해지고

    드디어 사소한 운명을 수긍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그가 결연히 뒤돌아서자

    그녀는 우연히 같은 리듬으로 춤을

    그리고 당신은 생각나지 않는 음악을 찾아 바다로


    우리는 마침내 서로 다른 황혼이 되어

    서로 다른 계절에 돌아왔다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면 물이 돼버려

    그는 영하(零下)의 자세로 정지하고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시작하고

    당신은 그저 뒤를 돌아보겠지만


    성탄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끝날 거야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사랑을 했다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사랑을

     

     

     

     

     

     

    5.jpg

     

    김명리, 세월이 가면서 내게 하는 귓속말




    나를 울려놓고 너는

    내가 안 보인다고 한다

    이 깊은 울음바다 속을 헤매다니는

    날더러 바람 소리라고 한다

    해가 가고 달이 가는 소리라고 한다

    나를 울려놓고 울려놓고

    가을나무가 한꺼번에

    제 몸을 흔드는 소리라고 한다

    수수 백년 내 울음소리 위에 턱 괴고 누워선

    아무도 없는데

    누가 우느냐고 한다

    설핏한 해 그림자

    마침내 떠나갈 어느 기슭에

    꾀꼬리 소리 같은 초분(草墳) 하나 지어놓고선

    어서어서 군불이나 더 지피라고 한다

    새하얗게 이불 홑청이나 빨아놓으라고 한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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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27 02:16:47  183.103.***.68  갓작남  259040
    [2] 2020/12/27 09:35:51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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