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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082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97
    IP : 175.213.***.189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20/11/03 10:57:14
    http://todayhumor.com/?lovestory_90823 모바일
    [BGM] 기적이란 신의 소유만은 아니었구나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광규, 난초꽃




    마루에서 동화책 읽고 있던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할아버지는

    무슨 보물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창문에 늘어진 속 커튼을 젖혔다

    창턱에는 난초 화분이 네 개

    그 가운데 하나가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하얀 줄기에 샛노란 꽃잎

    난초꽃 향기가 그윽하지 않으냐

    난초가 들으면 안 되는

    무슨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할아버지는 목소리를 낮추어 내게 말했다


    화분에 심은 풀잎처럼 보이는 난초에

    흥미 없는 손자 녀석은 시큰둥하게

    힐끗 쳐다보고

    별것 아니라는 듯

    횅하니 거실로 되돌아가 멈추었던

    컴퓨터 게임을 계속했다

    작은 손가락이 나는 듯 움직였다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옛날의 손자는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머쓱해졌다

    녀석이 나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2.jpg

     

    문정희, 우울증




    겨울 안개 길고 긴 터널

    모든 것이 무사해서 미친 중년의 오후

    전조등 하나 없는 회색 속을 걸어간다

    가방에는 몇 개의 열쇠가 들어 있지만

    진실로 갖고 싶은 열쇠는 없다

    기적이란 신의 소유만은 아니었구나

    지나온 하루하루가 모두 기적이었다

    돌아보니 텅 빈 무대 아래

    반수면 상태로 끝없이 삐걱이는 의자들

    저기가 진정 내가 지나온 봄의 정원이었던가

     

     

     

     

     

     

    3.jpg

     

    송종찬, 폭탄주




    한 생이 또 한 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섞이지 못하는 맥주와

    양주처럼 처연하여


    오늘 밤

    건너가고 싶네

    가슴속에 불을 질러


    한 생이 또 한 생에

    잠긴다는 것은

    상처 속에 다시

    상처를 내는 것 같아


    오늘 밤

    잊어버리고 싶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위벽이 타는 폐허의 잿더미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4.jpg

     

    문성해, 나비의 가을




    나비는 봄 여름을 살고 가을에 죽는다

    죽을 때는 몸이 날개를 인도한다


    나비는 평생 날개를 부담스러워하진 않았을까

    어느 날, 깨고 보니

    코끼리 같은 게 양 어깨에 펄럭거리고 있었으니...

    평생 몸은 얼마나 들판을 걷고 싶었을까

    꽃 위에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 나비 몸이

    세차게 버둥거리고 있진 않았을까

    독수리에 채여 가는 들쥐처럼

    죽어가는 나비에게서

    제일 먼저 떨어져나가는 것은 날개다

    아직 파닥거리는 그것들을

    개미들이 떠메고 어디론가 간다

    어딘가에 날개들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있으리라

    그곳에서 날개만으로 날아다니는 법을 배우리

    허공을 가르던 나비들이

    툭 툭, 멈춘 가을 한낮

    갑자기 몸이 날개가 된 나비들이

    허공에서 땅으로 하얗게 날아든다

    다시 개미들이 반대쪽에서 새까맣게 몰려온다

     

     

     

     

     

     

    5.jpg

     

    김소월,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고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는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간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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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03 11:01:22  183.103.***.68  갓작남  259040
    [2] 2020/11/03 20:41:34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3] 2020/11/07 23:45:40  123.215.***.137  볼빵빵고양이  5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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