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p> <p> "얼른 서둘러라, 늦지 말고." </p> <p> <br></p> <p>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선 민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p> <p> <br></p> <p>오늘 하루도 어제랑 다르지 않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밀려왔다.</p> <p> <br></p> <p>다른 게 있다면 며칠 동안 내렸던 비로 우중충한 잿빛을 띠던 하늘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p> <p> <br></p> <p>파란색을 보여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p> <p> <br></p> <p>이웃집 문들이 따닥 따닥 붙어있는 아파트의 복도를 지나던 민수의 얼굴 위로 상쾌한 햇살이 비추었다. </p> <p> <br></p> <p>학교 가는 일이 즐겁지 않던 민수에겐 그나마 좋은 날씨가 위안이 되고 있었다.</p> <p> <br></p> <p>민수는 이웃집 호수들을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p> <p> <br></p> <p>"팔백 오호.. 팔백 육호.. 팔백 칠호..." </p> <p> <br></p> <p>복도 끝엔 808호도 있었지만 전부터 왠지 모를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이후 호수 외기를 주저하는 민수였다. </p> <p> <br></p> <p>잠시 후 엘리베이터 앞에 멈춘 민수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 머물러 있었다. </p> <p> <br></p> <p>기다리는 동안 늦은 밤까지 한 컴퓨터 게임을 떠올렸다.</p> <p> <br></p> <p>짜릿한 승리를 거둘 때엔 입꼬리가 씰룩거렸고 가족을 향한 욕설이 난무한 누군가의 채팅을 떠올릴 땐 </p> <p> <br></p> <p>분노가 치밀며 씩씩거렸다.</p> <p> <br></p> <p>아직 13층에서 꿈쩍도 안 하는 엘리베이터.</p> <p> <br></p> <p>아마도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를 위해 이웃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게 뻔했다.</p> <p> <br></p> <p>짜증이 난 민수는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이용했다. </p> <p> <br></p> <p>8층이라 내려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p> <p> <br></p> <p>민수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완공된 지 수십 년 된 낡은 건물로 그 일대에서도 가장 오래된 단지들 중에 하나였고, </p> <p> <br></p> <p>근래 들어 입주민들 간에 재건축 논의가 활발히 오고가고 있었다.</p> <p> <br></p> <p>단지 곳곳엔 재건축을 염원하는 글들이 적힌 현수막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는데 </p> <p> <br></p> <p>무심코 어떤 현수막에 시선을 두며 걸어가던 민수는 자기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 마리가 </p> <p> <br></p> <p>어깨 위에 앉아 있는 걸 느꼈다. 순간 소름이 끼쳐 몸을 움찔했던 민수. </p> <p> <br></p> <p>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런 나비를 곁눈질로 보던 민수는 날아가지 않고 얌전히 있는 </p> <p> <br></p> <p>나비가 신기한 듯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려 지켜보았다. </p> <p> <br></p> <p>잠깐 구름에 가려져 있던 햇빛이 민수 어깨 위에 나비를 비추었고</p> <p> <br></p> <p>순간 아름다운 빛깔에 휩싸인 나비가 민수 동공에 맺혔다. </p> <p> <br></p> <p>그때 갑자기 빠앙 울리는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란 민수는 그제야 자신이</p> <p> </p> <p>차도 쪽으로 내려와 있는 걸 깨닫곤 머쓱해하며 운전자에게 고개를 숙였다.</p> <p> <br></p> <p>그 소동에 나비는 어디론가 날아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쳇 망할 차 때문에.." </p> <p> </p> <p>중얼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민수.</p> <p> <br></p> <p>그런데 몇 발자국 떼기도 전 불현듯 예전에도 이 장면을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낀 민수였고, </p> <p> <br></p> <p>살면서 종종 겪어본 이 데자뷰 현상에 대해 갑자기 강한 호기심과 더불어 의문을 품었다.</p> <p> <br></p> <p> (실제로 전부터 벌어졌던 일이고 계속해서 반복되어 온 일이 아닐까..)</p> <p> <br></p> <p>공상에 사로잡힌 민수는 어느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시내 한복판 인도를 걷고 있었다.</p> <p> <br></p> <p>아침에 등교하려는 학생들로 길거리는 붐비고 있었고 급우들과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p> <p> <br></p> <p>그럼에도 민수는 아까부터 든 생각에만 꽂혀 주변 소리엔 안중에도 없었다. </p> <p> <br></p> <p>드디어 학교 앞을 목전에 둔 민수는 건널목에 멈춰 신호를 기다렸다. </p> <p> <br></p> <p>그러나 여전히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p> <p> <br></p> <p> (시뮬레이션이 아닐 확률이 10억분의 1이라고 했는데... 일론 머스크가..)</p> <p> <br></p> <p> "야!"</p> <p> <br></p> <p> (다중 우주가 시뮬레이션을 여러 개 돌리는 거라면..뭐 때문이지..)</p> <p> <br></p> <p> "야야!"</p> <p> <br></p> <p> (어쩌면.. 나 말곤 전부 허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p> <p> <br></p> <p> "김민수!!"</p> <p> <br></p> <p>고개가 아래로 향한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민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p> <p> </p> <p> </p> <p> - 다음 편에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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