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 <p> "마지막으로.. 함께 가고 싶은 곳은?" 서류를 보며 질문한 남자는 상대방을 바라봤다.</p> <p><br></p> <p>이곳은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어느 기업의 강당.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거대한 창을 통해 </p> <p><br></p> <p>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비추고 있다. 답을 기다리며 볼펜을 돌리는 남자.</p> <p><br></p> <p>흰 가운을 걸쳤고 왼쪽 가슴에 명찰이 달렸다. "놀이공원이요.." 고민 끝에 입을 연 상대. </p> <p><br></p> <p>얼굴엔 여드름이 있고 안경을 썼다. 한 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학생이다.</p> <p><br></p> <p>"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가령 어떤 놀이기구를 탈 것이며 종일 기구만 타겠다든지.. </p> <p><br></p> <p>아니면 기구를 타지 않고 구경하며 대화 위주로만 하겠다든지.." "다 해보고 싶은데요" </p> <p><br></p> <p>지체없이 대답하는 학생. 남자는 뜸을 들이다 서류에 무언가를 적는다. </p> <p><br></p> <p>벽에 걸린 시계는 두 시를 가르키고 있다.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 </p> <p><br></p> <p>그러다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는 듯 말을 꺼냈다. "혹시 추가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은.." </p> <p><br></p> <p>말을 할까 망설이는 학생. 그런 학생의 모습을 본 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아 부드럽게 말한다. </p> <p><br></p> <p>"괜찮으니까 얘기해도 돼~" "진짜.. 엄마를 만날 수 있나요..?" 물어보는 학생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p> <p><br></p> <p>남자는 옅은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말했다.</p> <p><br></p> <p>"제출한 여러 장의 사진과 생전에 목소리가 담긴 영상 등을 토대로 세세하게 구현될 거라</p> <p><br></p> <p>학생이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는 큰 차이는 없을 거야" "그럼.. 얼마나 걸리나요?"</p> <p> </p> <p>"음.. 학생이 원하는 세부 사항을 전부 묘사하자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p> <p><br></p> <p>기기가 아직 테스트 중이라서 아무리 빨라도 9~10개월은 걸릴 것으로 봐" </p> <p><br></p> <p>한숨을 쉬며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학생. "후우... 오래 걸리네요.." </p> <p> </p> <p>"테스트는 며칠 뒤면 끝이니까, 그건 둘째 치더라도..진짜 문제는 따로 있지.." </p> <p><br></p> <p>학생이 궁금해 하는 눈길을 보내자, 남자는 손목 시계를 보곤 말했다. </p> <p><br></p> <p>"좋아, 뭐 아직 시간도 충분하니 설명 해줄게. 자 그러니까,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과거의 누군가와의 추억을 </p> <p><br></p> <p>재현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치자. 그럼 추억의 장소와 보고싶은 인물 이 둘을 기기로 재구성하는 게 </p> <p><br></p> <p>핵심인데. 그렇다면 장소와 관련해서는 먼저 추억의 그날이 언제인지 알아야 되겠지. </p> <p><br></p> <p>즉 정확한 연도와 날짜,시간 등을 확인하고 당시의 그곳과 관련된 사진 자료 등을 입수해서 </p> <p><br></p> <p>그걸 토대로 고객이 기억하는 장소를 재구성한단 말이야. </p> <p><br></p> <p>그리고 둘째로 인물과 관련해서는 아까 말한 학생이 건네준 사진을 참고하여 먼저 얼굴과 신체 등을 구체화한 후. </p> <p><br></p> <p>이 기본 뼈대 위에 감정이 실린 다양한 표정,말투,습관 등을 얹고 생전에 목소리까지 입혀주면 </p> <p><br></p> <p>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인물이 탄생되는 거야. </p> <p><br></p> <p>근데 여기서 문제는 만약 어떤 고객이 그날 자신과 상호작용한 사람도 표현해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 </p> <p><br></p> <p>무슨 말이냐면 가령, 솜사탕과 얽힌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어떤 고객이 있다고 하자. </p> <p><br></p> <p>행복했던 그날, 마침 그곳에 있던 장사치에게 솜사탕을 산 고객은 누군가와 먹으며 즐겁게 놀았단 말이야. </p> <p><br></p> <p>그러면 이 고객 입장에선 행복한 기억의 출발점인 장사치도 표현되기를 바라는 거지. </p> <p><br></p> <p>더 나아가 상호작용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닌 셀 수 없이 많고 이걸 전부 재구성해달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p> <p><br></p> <p>열변을 토하는 남자에게 반응을 꼭 해야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 학생. "글쎄요... 모르겠어요" </p> <p><br></p> <p>"그냥 우리 입장이 참 난감해지는거지 허허" 남자는 씁쓸하게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p> <p><br></p> <p>"뭐 방법은 없는 건 아니고 그런 경우엔 좀 더 유연한 조정 안을 우리 측이 제안하기도 해. </p> <p><br></p> <p>어쨌든 재구성 한다고 모든 상황을 담아낼 순 없으니 고객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지." </p> <p><br></p> <p>듣고 있던 학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의 설명은 계속됐다.</p> <p><br></p> <p>"자 이제 학생도 느꼈을 거야 이 과정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p> <p><br></p> <p>근데 말로만 들었을 땐 단순히 시간만 주어지면 기술자들이 고객의 주문대로</p> <p><br></p> <p>뚝딱 만들어 낼 거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고, 과거의 상황을 재구성한다는 건 </p> <p><br></p> <p>말처럼 쉬운 게 아닌 아주 고된 작업이라는 걸 알아야 돼." </p> <p><br></p> <p>그럼 재구성하는 작업이 힘든 이유가 뭘까. 간단해. 첨단 기기라도 아직은 전부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야. </p> <p><br></p> <p>즉 프로그래머가 일일히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거든. 영화처럼 신체와 연결만 하면 바로 가상 세계로 접속하는 게 아니라서." </p> <p><br></p> <p>"매트릭스..." 학생의 말에 씽긋 웃는 남자. "후후 빙고! 상용화된 양자 컴퓨터와 강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모를까 </p> <p><br></p> <p>지금 기술로는 매트릭스의 '매' 자도 어림도 없어. </p> <p><br></p> <p>어찌됐든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은 몸을 갉아 먹는 지독한 일이라 테스트 기간 중에도 퇴사한 사람이 수두룩 했어. </p> <p><br></p> <p>그래도 누군가는 견디고 있지만.. 어후~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네." </p> <p><br></p> <p>이 대목에서 몸을 부르르 떤 남자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학생. </p> <p><br></p> <p>"그래 눈치챘겠지만 슬프게도 난 이 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래머 중에 하나야. </p> <p><br></p> <p>물론 지금처럼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일도 하고 있지."</p> <p><br></p> <p>그때 강당 문이 열렸고 키가 크고 말쑥한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곧 발표 시간입니다" </p> <p><br></p> <p>남자는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볼 곳이 있어 학생" 의아한 표정으로 학생이 물었다. "어딜 간다는 거죠?" </p> <p><br></p> <p>"곧 알게 될 거야" 남자를 따라 나선 학생. 강당을 벗어나자 긴 복도가 나왔다. 저 멀리 복도 끝을 향해 걷는 세 사람. </p> <p><br></p> <p>한참을 걷자 마침내 복도 끝에 이른 세 사람 앞엔 아주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학생은 넋을 놓고 이 광경을 바라봤다.</p> <p><br></p> <p>아득히 높게 솟은 둥근 천장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실로 거대한 규모의 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p> <p><br></p> <p>건물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p> <p><br></p> <p>갑자기 홀에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한 곳을 주시했고 누군가가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홀 중앙 쪽으로 걸어왔다. </p> <p><br></p> <p>"회장님이야" 남자가 귀엣말로 알려줬다. 박수소리가 잦아들며 한 손에 마이크를 든 회장이 입을 열었다.</p> <p> </p> <p>"안녕하십니까 이곳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p> <p> </p> <p>오늘 여러분 앞에 이 획기적인 기기를 소개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p> <p> </p> <p>아직은 테스트 중입니다만 조만간 이 기기가 본격적으로 구동된다면 그동안 현실만의 전유물이던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이 </p> <p><br></p> <p>가상 현실 시뮬레이터 안에서도 구현되어 실제 현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p> <p><br></p> <p>시뮬레이터는 향후에도 세대를 거듭하여 성능이 더욱 향상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p> <p><br></p> <p>완전 몰입 가상 현실이라는 기술적 특이점이 미래 어느 시점에 도래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p> <p><br></p> <p>이렇듯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시뮬레이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공을 세운 인재들이 있습니다.</p> <p><br></p> <p>언제나 변화의 물결을 갈망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여러 유능한 과학자 및 기술자.</p> <p><br></p> <p>바로 그들 손에 의해 시뮬레이터가 개발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갖고 기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p> <p><br></p> <p>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일제히 박수를 치는 사람들. 연설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지만 회장은 </p> <p><br></p> <p>목이 불편한 듯 거듭 목소릴 가다듬는다. "커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뮬레이터 탄생 과정의 배경에는 </p> <p><br></p> <p>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현대 기술 문명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p> <p><br></p> <p>우리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 혁혁한 공을 세우고 기기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와 성원을 보내주신 귀빈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p> <p><br></p> <p>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열렬한 박수 갈채가 쏟아지며 발표회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p> <p><br></p> <p>이 틈에 수행원이 다가와 회장에게 물을 건넸다. 목을 축이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회장은 박수가 끝날 때쯤 말을 이어갔다.</p> <p><br></p> <p>"이 시뮬레이터의 명칭은 '만남의 광장' 입니다. 만남의 광장이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친숙한 말이죠?</p> <p><br></p> <p>이렇게 명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난 수 년간 인류 문명의 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습니다.</p> <p> </p> <p>그로 인한 급변하는 사회는 인류에게 갖가지 부작용을 양산하며 풀어야할 과제를 떠안겼습니다. </p> <p><br></p> <p>그럼 대표적인 문제를 거론해 보겠습니다. 바로 이제는 사라져 가는 공동체의 개념입니다. </p> <p><br></p> <p>이웃과 가족 및 친인척 간에 교류 단절이 이에 해당합니다. </p> <p><br></p> <p>반면 1인 가구를 비롯한 독거노인 등이 해마다 급증하며 기존의 개념을 대체하였습니다.</p> <p><br></p> <p>고립된 환경에 처한 이들에겐 오로지 텅빈 공허함과 외로움만이 주변을 맴돌 뿐입니다. </p> <p><br></p> <p>인류에게 번영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 기술 문명의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p> <p><br></p> <p> </p> <p> - 2부에서 -</p> <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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