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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01: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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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벚나무가 가득 심어진게 좋았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없지만 멀리 벚꽃 축제 장소에 가지 않아도 매 봄마다 이 경치를 볼 수 있다는건 소소한 행복이었다. 오늘도 벚꽃을 보며 즐겁게 걷고 있는데 한 벚나무 앞에 서있는 같은반 나리가 보였다. 무엇을 하는가 살짝 지켜보니 벚꽃을 따서 진지한 표정으로 씹고 있었다. 나리는 반에서 조용한 편이라 한번도 제대로 대화해본적은 없었지만 무엇을 하는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너 뭐하냐? 그걸 왜 먹어?”
나리는 수호의 말에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마냥 화들짝 놀랐다. 바로 들고 있던 벚꽃을 버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응? 하며 시치미를 떼려 했지만 수호는 이미 다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씹다만 꽃잎이 입술에 남아있다가 늦게서야 떨어졌다. 나리는 얼굴이 빨개지는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 그.. 웃지 않겠다고 약속해줄래?”
수호는 벚꽃을 먹었다는 사실보다 방금의 허둥대는 행동 때문에 웃고 싶었지만 나리가 빈정 상할까봐 참았다.
“약속할게.”
나리는 다시 수호쪽을 바라봤지만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 말했다.
“벚꽃이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맛을 보고 있었어. 요즘 벚꽃맛이라는게 유행이잖아.”
확실히. 작년에는 허니버터맛이 유행이었다면 올해 봄은 벚꽃맛이라는게 유행이었다. 수호도 벚꽃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벚꽃맛 과자를 먹으며 왠지 벚꽃맛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벚꽃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 먹어본 적도 없는 것의 맛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정말 그렇네! 사람들은 어떻게 벚꽃맛을 만든거지? 그래서 먹어보니 어때? 맛있어?”
나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평범한 꽃잎 맛이었어. 그래서 이게 어떻게 벚꽃맛이 되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어.”
“그럼 벚꽃맛을 다시 먹어보면 알겠지.”
수호는 근처에 있는 자판기로 가서 벚꽃맛 스파클링 캔음료를 뽑았다. 자판기에서 이런 음료를 팔 정도라니 확실히 유행이긴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음료를 나리에게 건냈다.
“자. 확실히 비교해봐.”
나리는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맛을 분석하는데 양 손으로 음료수 캔을 꼭 잡고 고민하는 모습에 수호는 너무 귀여워서 웃을 뻔했다.
‘나리가 이렇게 깜찍한 애 였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이야기 해볼껄. 근데 어라?’
어디선가 벌 한마리가 날아와 나리 주변을 맴돌았다.
“나리야 지금 네 옆에 벌 있으니까 잠깐만 움직이지 마.”
뭐? 하며 퍼뜩 정신을 차린 나리는 벌이란 말에 입을 다물고 꾹 굳어버렸다. 벌은 두 사람이 자기를 신경쓰는지 마는지 태연하게 나리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리가 들고 있던 캔 위에 앉았다.
“아하하. 여기서 벚꽃 냄새가 났나보다.”
수호는 벌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나리는 그렇지 않았다. 손 안의 작은 원통에 벌이 앉아있는걸 본 나리는 그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을 소리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흐를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본 수호는 캔을 뺐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잠깐! 나리야! 그냥 나 줘. 대신 벚꽃 아이스크림 사줄게. 저 앞에 보이지? 최근에 생겼더라.”
“아이스크림?”
울것 같았던 표정이 겨우 밝게 펴져서 수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함께 이동하며 신난 나리의 옆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촉촉해진 눈과 살짝 상기된 뺨. 나리를 어떻게 보는가? 수호는 생각했다.
‘조용하지만 귀여운 여자아이.’
나리가 한모금 마시고 벌이 잠깐 앉았던 음료를 봤다. 입구쪽에 분홍색 틴트가 묻어 있었다. 거기에 입을 대고 한모금 마셨다. 벚꽃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