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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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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소리가 다섯번 울리고 나서야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상구는 하품을 크게 하고 찌뿌둥한 몸을 꼼지락댔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싶었지만 좁은 옷장에서는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오늘은 빨리 나갔으면 좋겠는데.’
상구는 벌써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집주인이 나갈 때까지 이 좁은 공간에서 함부로 나갈 수는 없었다. 주인은 여기에 상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상구는 불법 주거 침입자였다.
바스락, 바스락, 팍, 팍, 바스락, 끼이익, 쏴아아아.. 집주인이 바닥에 널려있는 비닐과 쓰레기 사이를 지나가 화장실 문을 열고 샤워기를 틀었다. 꾹 잠그는 소리, 찰팍찰팍 씻는 소리, 콸콸콸 비눗물이 배수구로 빨려가는 소리, 다시 화장실 문이 열리고 나오는 소리, 뽀작뽀작 비닐을 벗겨내는 소리, 탁 플라스틱 문이 열리고 달그락 유리에 물건을 올려놓는 소리, 삑.삑.삑. 우우웅~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소리, 탁 탁 발걸음을 옮기고, 위이잉 드라이어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소리.
드라이어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자 상구는 캄캄한 옷장 구석을 뒤적여 과자를 찾았다. 비닐 과자를 팍 뜯는 소리는 더 큰 소음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상구는 느긋하게 뜨거운 팬악기의 시끄러운 연주를 즐기며 과자로 배를 채웠다. 얼마 뒤 드라이어의 연주가 멈추고 상구의 식사 시간도 끝났다.
전자렌지에서 음식을 꺼내는 소리, 텔레비전을 켜는 소리, 아침드라마 배우들의 소리. 그리고.. 만두 냄새. 오늘은 편의점 도시락 대신 만두를 먹는것 같았다. 집주인은 텔레비전을 보며 만두를 먹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서 여기에 집중하면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나와 티비를 끄는 소리가 들리고 찰카닥 드디어 집주인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상구는 그제서야 옷장 문을 열고 나와 힘껏 기지개를 폈다. 방금까지 먹던 과자 봉지는 들고 나와 냉장고로 향하며 마저 먹어치우고 근처에 가득 쌓인 쓰레기통에 대충 끼워놨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찾았지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반쯤 남은 오렌지 쥬스를 마셨다. 냉장고 문을 열어 냉동고에 가득한 검은 비닐 봉다리 사이에서 오래된 만두를 찾아냈고 몇개를 전자렌지에 돌려 빠르게 먹었다. 아침도 간단하게 먹었으니 슬슬 씻고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상구가 이렇게 남의 집에 몰래 살아온지는 6년쯤 되었다. 상구는 스스로를 진화한 노숙자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도 안하고 목적없이 사는데 굳이 춥고 배고프고 위험한 지하철 역에서 살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상구는 빈 집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집을 얻으려고 바둥바둥 사는것 같았지만 정작 집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집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늘 바쁘게 돌아다니고 관리도 대충 하고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찾아보면 그런 집이 의외로 많았다. 상구는 그런 집들을 찾아다녔고 숙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처럼 주인 몰래 빌붙어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피해는 거의 끼치지 않았다. 사실 불법 침입부터 범죄였지만 그 사소한 사실 외에는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안입을 옷을 골라 입었고, 어차피 안먹고 잊어버려 자리만 차지하던 음식들을 골라먹었다. 서랍에 있던 돈도 조금 가져가긴 했지만 결코 비싼 물건을 훔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안입을 옷이나 안먹을 음식은 자리만 차지하다가 버릴 것이고, 약간의 돈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을 것이다. 집 주인은 자기 외에 사람이 사는지조차 모르니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상구는 자신의 이런 생활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마음에 들었다.
낮에는 살만한 다른 집을 찾고 집주인의 생활 패턴을 조사하러 돌아다닌다. 금방 들키는 경우가 많아서 안정적인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거리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이 과정은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오기 전에 다시 돌아와 숨는다. 주인에게 들키면 재빨리 도망친다. 절대로 위협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훔친것도 없고 강도짓을 한것도 아니니 집 주인은 깜짝 놀라긴 하지만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렇게 6년을 살아왔다. 그러다 1년 전 쯤 지금 살고있는 완벽한 조건의 집을 찾았다.
50대 아줌마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집은 오래되어 낡았지만 크고 방이 많아 숨을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서 온 집안이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넘쳐났다. 부엌에는 음식물이 말라붙은 접시와 그릇이 가득했고 편의점 도시락 쓰레기와 비닐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방에는 구겨진 옷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고 여기저기 과자와 아이스크림 봉지가 가득한 비닐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그 중에는 한번도 뜯지 않은 박스와 과자들도 있었다. 거실에도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전구가 하나 나가 어두운 전등 아래 테이블엔 티비를 보며 먹고 대충 던져놓은 냉동식품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베란다쪽에는 화분이 대여섯개 있었는데 전부 갈색으로 말라 비틀어졌고 심지어 선인장조차도 죽어있었다. 음식물 쓰레기에는 초파리와 벌레가 돌아다녔고 집안 전체에 오래된 불쾌한 냄새가 스며있어 사실 제대로 사는 집은 따로 있고 여긴 쓰레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빌붙어 사는 상구도 이정도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서 대신 청소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앞에 나설수 없는 입장인게 억울했다. 하지만 너무 더러운것을 제외하면 상구가 지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집 관리를 전혀 하지 않으니 물건을 몰래 써도 티가 나지 않았다. 음식도 넉넉했고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어쨌든 춥지 않은 잠자리를 마련해주니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썩어가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건 냄새가 너무 고약해 가끔씩 티나지 않게 치웠다.
오늘은 한참 돌아다녔지만 괜찮은 집을 찾지 못했다. 몇 개 눈여겨놓은 집은 보안이 튼튼하거나 작아서 숨을 곳이 없거나 집 주인의 일과시간이 불안정했다. 이런 생활이 나쁘지는 않지만 쉬운 것도 아니었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시계를 보니 주인아줌마가 올 시간이라 집에 돌아와 적당히 음식을 주워먹고 다시 옷장에 숨었다.
조금 있으니 아줌마가 돌아왔다. 아줌마는 부스럭거리다가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상구도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지루함을 달랬다. 평소와 같다면 아줌마는 이대로 밤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상구는 1년동안 한번도 들리지 않았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현관을 여는 소리가 나고 어떤 남자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텔레비전에서 나는 시끄러운 웃음과 환호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누굴까? 둘의 말소리는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짧아지는걸로 보아 싸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아악!!”
아줌마의 외진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귀를 문에 대보았지만 티비 소리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비명소리가 난 이후 남자가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현관문이 쾅 닫혔다. 그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계속 소리에 집중했지만 한참동안 텔레비전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두개의 프로그램이 끝나도록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상구는 옷장 문을 살짝 열고 좁은 틈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텔레비전은 계속 켜져 있었는데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도 집을 나갔을까? 조용한 무언가를 하고 있나?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위험한 행동인줄은 알았지만 옷장 문을 완전히 열고 나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바닥에 쓰레기를 밟지 않게 조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현관쪽에서 오줌 냄새가 나서 보니 현관문 앞에 아줌마가 쓰러져 있었다. 급히 달려가서 살펴보니 아줌마는 목에 노끈이 감긴 채 흰자를 드러내고 입을 벌린 고통스런 표정으로 창백하게 누워있었다. 설마. 떨리는 손으로 뺨을 찔러봤다. 고개가 힘없이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죽은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참동안 그러고 멍하니 시체를 쳐다봤다. 다시 다가가서 심장쪽에 귀를 기울여봤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맥박. 목 아래에 손가락을 대봤다. 따뜻한 심장의 기운 대신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 흘러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그 때 다시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까 그 남자가 다시 찾아왔을까? 살금 일어나서 현관문에 다가가 초인종 구멍으로 누가 왔는지 살펴봤다.
“아주머니, 옆집 사람인데요. 방금 소리때문에 신경쓰여서 그런데 괜찮으세요?”
쓸데없이 착하고 친절한 이웃사람이었다.
“아주머니? 계세요?”
현관 문고리가 끼익 돌아가고 열렸다. 상구는 복잡한 상황에 머리가 마비되어 멍청하게 굳어있다가 문이 반쯤 열려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문으로 달려가 이웃 여자를 밀치고 도망쳤다. 여자는 넘어졌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망했다! 그 여자가 죽은 아줌마를 보면 경찰에 신고할거야! 내 얼굴을 봤을까? 봤겠지!’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까? 아줌마는 제가 안 죽였어요. 저는 불법 침입자이긴 한데, 강도는 아니구요, 제가 아줌마를 죽일 이유는 전혀.. 경찰이 믿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