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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7 14: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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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는 숲 안쪽으로 계속 걸었다. 나비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람들이 절대 오지 않았다. 이 숲에는 알록달록하게 빛을 발하는 센티멘토스라는 이름의 나비가 살고 있는데 이 나비는 사람에게 달라붙어 사람의 감정을 빨아먹으며 자랐고, 그 감정의 에너지를 빛으로 만들어 아름답게 빛났다. 이 나비에게 감정을 먹히는 사람은 천천히 무기력해져 결국 모든 삶의 목표를 잃고 주저앉게 되었다. 그리고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하기에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모두들 이 숲을 피하는 반면에 직접 찾아오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용감한 바보였고, 다른 하나는 가비처럼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가비는 일주일 전 막 결혼한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 가비는 나비들이 자신의 견딜수 없는 슬픔을 대신 받아주길 바랐다.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생겨나는 암청색의 끈적한 안개는 점점 짙어져서 숨쉬는걸 텁텁하게 만들었다. 안개는 나비가 먹고 싼 오래된 감정의 찌꺼기였다. 안개는 가비의 코와 입으로 들어와 몸 안에 쌓여 숨어있던 기억들과 감정들을 억지로 끌어내고 고조시켰다. 이미 꺼진 감정에는 잔불이 되어 다시 타오르게 만들었고 이미 타오르는 감정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만들었다. 안개는 그렇게 계속 감정을 태우고 검은 재가 되어 가슴 한켠에 끈적하게 자리잡아 굳어갔다.굳은 재는 조금씩 두꺼워지며 감정의 상자를 둘러싸는 거대한 항아리가 되었고 치솟는 감정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단단히 틀어막았다. 가비는 견딜수 없어 당장 모든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단단하게 굳은 안개는 누름돌처럼 감정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억눌렀다. 빠져나가지 못하는 괴로움에 감정들은 고통스럽게 울컥거렸고 가비의 생각과 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안개가 완전히 뒤덮여 주위가 구분되지 않는 곳까지 들어서자 별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나비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슬픔은 머금은 나비는 창백한 푸른 빛을 발했고, 좌절과 절망을 머금은 나비는 암울한 검은 빛을 발했다. 그 외에도 여러 빛을 발하는 나비들이 오랜만에 나타난 따뜻한 감정의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가비는 앞으로 다가가 나비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양 팔을 벌렸다.
수십 마리의 나비가 팔랑거리며 가비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양 팔에, 가슴에, 등에, 다리에. 친절하게도 얼굴은 가만히 놔뒀다. 나비가 몸을 찌르는 느낌은 없었지만 몸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비의 날개들이 검게 달아올랐다. 나비는 먼저 가비의 감정을 막고 있던 딱딱한 응어리를 녹여 먹었다. 감정을 압박하던 항아리가 파삭 부서지자 그동안 억눌려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가비는 격해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동안 괴롭게 참고 있었던 모든 울분을 토해냈다. 가비가 쓰러지자 나비들은 놀라서 잠깐 날아올랐지만 곧 다시 자리를 잡아 감정을 빨아먹었다. 가비는 하염없이 목청껏 울었다. 나비는 가비의 절규에 맞춰 푸른색으로 밝게 빛내며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받아주었다.
한참을 쏟아내던 가비의 슬픔은 결국 눈물과 함께 완전히 말랐다. 그렇게 감정을 완전히 토해낸 가비의 마음은 이제 텅 비었다. 더 이상 먹을 감정이 없어지자 나비들은 가비의 몸에 자신들의 침을 주입했다. 헤로인과 비슷한 나비의 침은 사람을 억지로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나비의 침은 가비의 마음에 들어와 완전히 말라붙어 갈라진 땅에 따뜻한 비가 되어 내렸다. 가비의 마음은 금방 물이 차올라 강줄기가 되어 흘렀고 젖은 땅에서는 쏙쏙 푸른 싹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금새 나무로 자라나 순식간에 울창한 숲이 되었다. 같이 비를 맞던 가비는 포근한 숲이 생기는걸 지켜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비가 날아가는대로 구름이 걷히고 빛나는 햇살이 내리쬐었다. 비에 흠뻑 젖은 숲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자 태양에서 수천마리의 빛나는 나비 떼가 날아오더니 서로 뭉쳐서 남편의 모습이 되었다. 남편을 본 가비는 곧바로 날아가 꼭 껴안고 울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이제 다 괜찮다고 말하며 가비를 토닥여줬다. 나비들은 가비를 둥글게 감싸안았다. 그렇게 가비가 영원히 행복한 꿈을 꾸길 바라며 분홍색으로 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