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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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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학생이었다.
항상 숙제는 미뤘다가 전날 밤에 겨우 끝냈고 시험공부도 항상 벼락치기였다.
민서는 이런 자신의 습관이 마음에 들었다. 과제를 미리 끝내는건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정말 마지막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급하게 해치우는 긴장감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벼락치기 생활이 실패한 적은 없었다. 숙제는 언제나 완벽하게 해치웠고 성적은 1등은 아니었지만 톱을 달렸다. 민서는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촉박해도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민서의 벼락치기 간격은 점점 더 짧아졌다. 숙제를 전날 저녁 먹고 하는것에서 자기 직전에 해치우게 되었고 나중에는 당일 쉬는시간 안에 끝내게 되었다. 시험공부도 직전 10분만 있으면 완벽히 해낼 수 있었다. 공부 뿐만이 아니었다. 스포츠나 게임도 위급해지면 해결할 수 있었다. 원하는 목표를 짧은 시간 안에 달성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초감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민서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알게 되었다.
민서는 극한의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짜릿함이 좋았다. 1분 1초 목을 졸라오는 압박감을 견뎌내며 최악을 최고로 이끌어내는 쾌감이 좋았다. 자신의 승패를 건 도박이 좋았다. 이 위기에 매혹되었다. 중독되었다. 그렇지 않은 모든 행동들은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외국으로 떠났다.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분쟁지대로. 전쟁터로. 테러위험지역으로.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언어도 몰랐다. 가진 돈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위험한 함정을 찾아 무작정 돌아다녔다. 그러다 잡혔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납치되었다. 천에 입이 막히고 보자기에 씌워져 끌려갔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소리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심장이 뜨거운 피를 급하게 펌프질했다. 뇌가 왱왱 회전하며 아드레날린을 실컷 분비하자 민서는 행복해졌다.
그렇게 납치된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아마도 차 트렁크에 던져졌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소리, 멈추는 소리, 뭐라고 외국어로 떠드는 소리가 지나자 겨우 밖을 볼 수 있었다. 낡은 판자촌이었다. 칼과 총으로 무장한 성인 남성이 다섯 있었고 남자들은 민서를 끌어내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손에 나무로 된 수갑을 채우고 어떤 방에 던졌다. 그리고 문을 잠궜다.
방 안에는 세 명의 여자가 더 있었다. 상황을 보니 토실하게 찌워서 잡아먹는 마녀같은건 아닐태고 인신매매일까. 구조되기는 커녕 이대로 어디론가 팔려가서 노리개로 쓰이다가 신원 미상의 시체가 되겠지. 자신의 인생을 건 게임이 시작되었다.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제한시간은 들켜서 불구가 되기 전까지. 온몸이 오싹해졌다. 빠르게 주위의 상황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