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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11: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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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은 정확하고 섬세한 그림의 대가였다.
그의 그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것을 넘어 본질의 가치를 완벽하게 잡아냈고, 누구보다 과감하고 날카로운 선과 깊고 풍부한 색으로 표현해 그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조차도 곧바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한번 본 사람은 떠나지 못했고 어제 본 사람도 다시 찾아왔다.
그의 작품관은 단 한가지, 모두가 볼 수 있는 천국을 만드는 것이었기에 자신만의 전시관에 계속 전시해 둘 뿐 아무리 비싼 가격을 제시해도 팔지 않았다. 입장료도 받지 않아서 유명해져가는 그의 그림을 보러 전시관에 오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사고는 그의 새로운 그림을 발표하는 날 일어났다.
그의 한가지 실수는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신작 발표를 알리긴 했지만 예약이나 입장 제한같은걸 만들지 않았다. 그 날 전시관은 오픈하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신작을 보고 싶어했던 관중들이 몰려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너무 흥분한 채 밀려들어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다. 끝없이 들어오는 사람들로 전시관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화영도 나서서 막아보다가 밀쳐지고 넘어지고 깔리고 밟혔다.
상황은 경찰이 와서 통제하면서 겨우 진정되었지만 화영은 심각하게 다쳤다.
특히 그의 영혼과 같았던 양 손은 완전히 부러지고 으스러졌다. 의사들의 노력을 통해 원래의 형태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더이상 이전과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붓을 잡기만 해도 통증이 밀려오고 미친듯이 떨려와서 반듯한 선 하나조차 제대로 긋지 못했다.
그 누가 화영의 절망을 이해 할 수 있을까? 화영은 누구하고도 만나지 않은 채 방 안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도 자신이 그리려던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죽은 선과 형태만 생겨나 원래의 재능은 그 날 사람들과 함께 짖밟혀 박살났음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화영은 울부짖으며 붓으로 종이를 난자했다. 분노로 난폭한 선을 그렸고 슬픔으로 찢어지는 형태를 만들었으며 절망으로 섬뜩하게 칠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모든 종이에 감정을 토해냈다.
한참이 지나 화영을 걱정하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엉망이 된 집에서 화영을 찾다가 방 안의 그림들을 보며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은 무엇을 그렸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 눈에 봐도 그림에 담겨있는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눈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가슴에 파고드는 형태였다. 방 전체가 그의 감정이 생생하게 녹아 있는 지옥도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이런 매력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는지 비결을 물었다.
그는 말없이 홀로 떠났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지금까지는 즐거움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앞으로는 고통으로 그려야 한다면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