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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19:51:11
2
코비는 깜짝 놀라서 창문으로 달려가 창문을 탕탕 때리며 소리쳤다.
“거기 너! 도와줘! 제발 다른 사람을 불러줘!”
소녀는 코비가 장난을 치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비가 창문을 치는것에 맞춰서 손뼉을 쳤다.
“지금 장난해? 도와주지 않을거면 놀리지 말고 썩 꺼져!”
코비는 버럭 화를 냈지만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코비의 필사적인 몸부림에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읽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안돼! 가지 마! 제발..”
마지막 희망이 외면하고 가버리자 코비는 기대고 있던 창문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찰박. 무릎이 고인 물에 부딪히며 외로운 소리를 냈다. 졸졸 흘러들어오는 물소리가 곧 죽을 것이라는 절망을 알렸다. 벌써 종아리까지 차오른 물은 매우 차가웠지만 더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뭐가 됐든 어차피 죽을 거니까. 쓰러져있는 드라이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외톨이로 죽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동안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코비는 마지막으로 조작판을 달그락 작동시켜보다가 포기하고 의자에 앉아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죽음의 여신대신 파란 소녀가 다시 다가왔다.
“안녕. 또 왔네. 너는 유령이니? 이곳은 5만기압이 넘는 곳인데 맨몸으로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소녀는 아랑곳않고 잠수정 외벽을 만지작거리며 즐거운 듯 코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쑤욱 창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코비는 깜짝 놀랐지만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소녀가 벽을 마음대로 통과하는걸 보고 역시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유령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걸까? 소녀는 잠수정 내부에 차오른 물을 찰박거리더니 코비에게 작은 정육면체 모양의 돌을 건넸다. 코비는 얼떨결에 돌을 받았다. 회색의 매끈한 돌이었다. 유령인줄 알았는데 뭔갈 주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소녀는 입에 넣는 시늉을 했다.
‘이걸 먹으라고?’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속는 셈 치고 입에 넣어 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사방이 환하게 밝아지며 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나타났다. 두려운 마음에 팔로 얼굴을 가렸지만 온몸에 내리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왠지 마음이 녹았다. 천천히 팔을 내리고 바라봤다. 눈부셔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책에서만 보던 태양이었다. 사람이 땅 위에서 살던 시절에 매일 봤다고 전해지던 태양이었다. 믿기지 않는 현상에 코비는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왔다고 생각했다.
“하하 멋지지? 우리는 이곳을 이면세계라고 불러.”
소녀를 바라보니 방긋 웃고 있었다. 천국이 아니었다. 꿈도 아니었다. 주위에 소녀와 어두운 잠수정의 내부가 뚜렷히 보였지만 밝은 태양과 공기도 동시에 보였다. 두개의 세계가 독립적인 차원으로 공존하는데 두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느낌이었다. 코비는 퍼뜩 드라이가 아직 남아있다는걸 깨달았다.
“제발 방금 그걸 하나만 더! 드라이에게 부탁해!”
소녀는 순순히 드라이의 입에 돌을 넣어줬다. 드라이도 이면세계에 들어왔다. 소녀는 드라이를 들쳐 업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그리고 소녀는 드라이를 업은 체 잠수함을 빠져나갔다. 한쪽 세계로만 보면 그렇게 보였지만 이면세계를 함께 보니 이해되었다. 막힌 담을 위로 뛰어넘는 것처럼 간단히 넘어가고 있었다. 코비도 그렇게 간단히 잠수함을 빠져나왔다. 소녀는 어디론가 헤엄쳐갔다. 코비는 난생 처음 해저를 맨몸으로 헤엄치는 감각에 놀랐다. 마치 공기 위를 날아다니는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 주위에 흝어져있는 다른 잠수정들을 보았다.
“잠깐, 다른 사람들은?”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코비는 믿을 수 없어서 직접 확인해봤지만 끔찍한 광경만 보였다. 다른 잠수정들은 제대로 박살났고 모두 죽었다. 코비가 탄 잠수정만 그나마 적게 피해를 입었었다. 코비는 좌절해서 그대로 멈췄다. 소녀가 다가와 팔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갔다.
그렇게 한참 따라가다보니 이번에도 책에서만 보던 나무들이 나타났다. 과일 나무들이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고 소녀와 같은 파란 피부의 사람들이 사과와 바나나같이 생긴걸 자유롭게 따먹고 있었다. 모두 한가한 표정이었고 코비와 드라이를 보긴 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과일나무들을 지나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 나무 줄기 중간중간에는 사람이 지나갈만한 구멍이 나 있었고 파란 사람들이 생활하는게 보였다. 마을이었다. 소녀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도나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