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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0 01: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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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12.12 군부 쿠데타 이후 계엄령에 눌려있던 한국은, 이듬해인 80년 5월 중순 민주화 열망이 불붙기 시작해 서울지역 학생들과 시민들이 10만여명이나 모인 대규모 집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대로 군부독재의 정체를 까발리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행진하자는 모두의 기대를 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죠. 이른바 '서울역 회군'사건입니다. 당시 시위를 지휘했던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유시민을 비롯한 주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껏 모인 민중을 해산시켜버린 사건이죠.(심재철 개객끼) 그리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가 벌어지고 그 다음날,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참담한 비극이자 위대한 민주화 운동이 광주에서 일어났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한번 꺾이고, 그 대가를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피값으로 치뤄야 했던 비극이었습니다.
다시 몇년의 시간이 흐르고, 당시 전두환의 장기 집권 야욕을 막기 위한 민주화 시위는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었죠. 이것을 막기 위해 전두환 정권은 비열한 탄압행위를 계속했고, 87년 초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고문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경찰에서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죽어버렸다"는 변명을 한 것으로 유명한 사건이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거리 시위가 전국적으로 활발히 일어나게 되고, 학계 종교계 문화계 각계각층이 모두 뛰어나왔습니다. 그해 6월 10일 김영삼, 김대중, 박형규, 김성수, 김승훈, 금영균, 계훈제, 이돈명, 송월주, 고은, 인명진, 오충일 등이 주도한 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고문살인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6월 항쟁'의 막이 오르게 되죠. 20여일간 500만명의 민중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촉구했고, 결국 독재정권의 굴복을 받아내 당시 전두환의 후계자였던 민정당 노태우 대표의 6.29선언이라는 직선제개헌 시국수습특별선언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건이었죠.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와 같은 안타까운 젊은 목숨을 희생하고서야 얻어 낼 수 있었던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대통령 직선제'였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직선제를 이뤄내는데 성공을 했지만 당시 야권 민주화 세력은 둘로 갈라서며 분열해 노태우에게 대권을 넘겨주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이 분열의 두 축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었죠. 이로 인해 6월항쟁의 커다란 성과는 빛을 바래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민중들은 큰 실망과 상심, 분노에 빠지고 맙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된 커다란 두번째 좌절이었죠.
하지만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민주화와 군사독재 청산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뜨거웠고, 이것은 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패배해 과반수 의석 확보 실패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때 여소야대의 정국에 불안을 느낀 노태우는 비밀리에 보수 대연합을 계획하고 90년 내각제 개헌 밀약을 조건으로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을 합당하는 이른바 '3당합당', '3당야합'을 이뤄내게 되죠. 비록 분열로 인해 정권을 내주기는 했으나 야권의 두 거두였던 김대중의 평화민주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중에,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을 꿈꾸며 독재의 잔당인 민정당과 합당을 해버린 겁니다.(거기에 '영원한 2인자'로 유명한 보수파 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까지 합쳐 3개당의 합당이었죠) 졸지에 독재세력은 2개의 대형 야당을 흡수해 초거대 여당으로 변신하게 되고, 이렇게 민주자유당이 탄생하게 됩니다.(이 민자당이 신한국당을 거쳐 지금의 한나라당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죠) 졸지에 제 1야당이던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즉 평민당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민주화 세력은 대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때의 혼란과 변절과 실망과 좌절로 민주화 세력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대한민국 정치계는 신념도 신뢰도 없는 진흙탕이 되어버린게죠. 게다가 당시 영호남을 가릴 것 없이 모든 국민이 민주화를 갈망하던 분위기에서, 영남의 지지를 입고 있던 김영삼의 배신으로 인해 영남의 민심은 김영삼을 따라 민자당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지역주의의 시작이죠. 이 '3당합당'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3번째 큰 좌절입니다. 최초의 직선제를 이뤄낸 13대 대선에서의 패배는 민주화세력이 둘로 갈라져 분열한 것이었다면, 3당합당은 민주화세력을 뿔뿔이 찢어 흩어버리고는 그 중 많은 수를 독재 세력안에 던져줘버렸습니다. 민주세력은 피아식별조차 하기 힘든 혼란에 빠진 반면 독재 세력은 변절한 민주세력을 품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결국 독재청산마저 제대로 할 수 없게 된게죠. 게다가 이 과정에서 이 지긋지긋한 지역간 분열주의, 지역주의가 본격 태동하게 되구요. 3당합당이 얼마나 흉칙한 사건이었는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김영삼의 대권 욕심으로 비롯된 일이었죠..
이때 통일민주당에서 이기택, 김정길, 장성화, 김상현, 박찬종, 홍사덕, 이철, 노무현 등 8인이 3당 합당을 거부하며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갈라져나와 민주당(일명 꼬마민주당)을 결성하게 됩니다. 익숙한 이름이 몇 있죠?ㅎㅎ 박찬종은 독자노선, 홍사덕은 이래저래 휘청거리다...어디로 가서 어떻게 망가졌는지 익히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인권변호사였던 그가 김영삼에 의해 정계에 입문해 김영삼 휘하의 사람이었으나 이때 김영삼과 갈라서게 됩니다.
이후는 잘 아시다시피, 14대 대선에서 민자당의 김영삼은 민주당의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된 후 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변신합니다. 김대중은 은퇴하고(훗날 복귀해 15대 대선에서 이회창을 누르고 감격적인 첫 민주정권을 이룩해내지만요) 김종필은 출당해 자민당으로 자기 갈 길을 가죠...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세력 분열로 패배한 13대 대선,
'3당합당'으로 민주화 세력이 갈갈이 찢어지고 지역주의가 들어서게 되며 적도 아군도 신념도 신뢰도 없는 야합과 변절의 바닥이 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너무나 오랜 기간 대가를 치러야 했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치유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범야권 세력이 야권 대통합에 그토록 목을 메는 이유는 바로 그 원초적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방법으로써 통합과 연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