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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18: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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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화팬은 아닌데 류현진 팬이라 해외 진출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사 이야기가 나오는 건 국대 차출되는 것 뿐만 아니라, 매 시즌 (물론 류현진이 체력과 이닝먹어주는 능력이 국내 최정상급이라고는 하나) 너무 과하게 많은 이닝을 던져야 한다는 점 때문에 나오는거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은 여전히 잘 던져주고 있고, 류현진 정도되는 '클래스'에게는 그리 많은 이닝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솔직히 너무 부실했던 불펜때문에 지난 몇년간 필요 이상으로 길게 던져야만 했던 일이 많았으니까요. 농담조로 류현진이 7~8회까지 막아줘도 불펜진이 남은 1~2이닝을 못막아서 승리를 놓치는 패턴이 생겨나니 어쩔수 없이 그만큼 더 길게 던지는 거란 소리가 나올 정도였죠..
류현진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 좌완이자, 데뷔 이래 지금까지 꾸준하게 정상급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 있어 현존하는 국내 최고 선발투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무너질대로 무너진 한화 팀은 그런 국내 최고 선발에게 10승조차 안겨주질 못했습니다. 마지막 등판에서 10회에 156의 속구를 던지며 괴물같은 투구를 펼쳤음에도 승리를 놓치고 9승에 머물렀죠. 리그 최강의 선발투수에게 준수한 선발의 기준이자 최소선인 10승조차 안겨주지 못했다는 점은 타팀 팬들에게 그만큼 큰 충격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한화가 지금의 암흑기를 벗어날때까지(사실 그게 1~2년 안에 쉽게 이뤄질 일이라곤 보지 않습니다) 향후 몇년간, '2000년대 중반 나타난 역대급 최강 투수'가 그것도 전성기를 달려야 할 시점에 하필 팀의 암흑기가 겹친 불운으로 통산기록에 있어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뜻이니까요. 현재까지 98승을 기록중인 류현진은 매 시즌 평균 승수가 14승에 달하는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가 올해 단 11승 추가하는 것 조차 실패해 통산 100승을 놓쳤고, 심지어 시즌 10승 달성조차 실패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한국 리그에서 뛰다 은퇴한다 가정했을때 훗날 류현진의 통산 기록은 그만큼 큰 패널티를 안은채 남아 있게 될테죠. 먼훗날 우리 자식들이 '류현진 통산 승수로 보면 그리 많지도 않은데 왜 그리 대선수라고 불러요?'라는 질문을 하면 항상 '니가 그때 한화라는 팀의 상황이 어땠는지 몰라서 그래' 일일이 설명을 붙여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지금 한화에게 류현진이 그렇게까지 필수적인 선수인가를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팀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류현진을 보러 경기장을 찾는 한화 팬분들도 많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류현진을 보내기 싫은 마음은 십분 이해합니다. 저도 삼성 팬인데, 오승환이 해외 진출에 도전해보기를 바라는 마음 만큼이나 계속 팀에 남아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크니까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화가 성적을 내는데 있어서 류현진의 존재가 꼭 필요한가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야구는 몇몇의 에이스만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합니다. 단기전이라면 또 모를까, 길고 긴 리그를 운영하며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기본 조건은 '두꺼운 선수층'입니다. 요 몇년간 항시 5위 안에 드는 4강권의 강팀들이 강호인 이유가 바로 선수층이 두텁다는 이유이죠. 삼성/SK/롯데/두산은 물론이고, 2년간 어마어마한 부상릴레이로 성적이 떨어진 기아 역시 4강 탈락권 팀들에 비해서는 대체 선수가 풍부합니다. 한화가 올해 꼴찌로 떨어진 이유는 팀을 이끌 에이스가 부족한게 아니라, 대체선수는 커녕 몇몇 에이스를 제외하곤 나머지 주전급 선수들조차 기량이 너무 많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화가 이제부터 선수층을 두텁게 하고 육성에 힘을 쏟는다고 해도 당장 눈에 띄는 성적을 내기는 힘듭니다. 왜냐면 이런 리빌딩은 한 두 해 안에 확 결실을 맺기는 힘든 일이고, 또 이미 선수층을 두텁게 쌓은 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강호들도 그 동안 놀고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이제서야 제대로 된 투자를 한다고 해봐도 이미 그쪽 분야로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어 결실을 맺고 있는 팀들이 쉽게 자리를 안 내어 줄테니 한동안은 4강 진입 정도를 최상의 목표로 삼고 리빌딩에 주력하는게 맞다고 봅니다.(이렇게 기반을 탄탄히 닦아둬야 향후 강팀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이제 막 커나가기 시작할 유망주들에게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에이스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류현진 한명 있고 없고 한다고 해서 한화가 우승하냐 못하냐...아니 4강 진입 하냐 못하냐가 갈라지는 그런 상황은 절대 아니란 거죠.
글쓴분은 류현진한테 계약금도 두둑히 줬고 연봉도 섭섭하지 않게 줬는데 이정도면 대우해 준거 아니냐 하실지 모르지만, 거꾸로 류현진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하나 있고 없다고 해서 팀이 우승이나 4강 문턱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도 아닌데, 향후 몇년간 팀이 암흑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리빌딩 기간동안 팀에 남아 자기 성적 희생해가며 꾸역꾸역 희생하라는 말과 다름아닙니다. 이건 한화가 류현진에게 대우해주는게 아니라 빚을 지는 거죠.
한화 팬으로써 류현진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은 120퍼센트 이해를 합니다만, 한화 팬이 아닌 나머지 7개구단 팬들에게는 류현진을 그만큼 아끼는 마음에서 해외 진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정도의 대선수, 현재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최강의 투수가 전성기를 자기 팀 탈꼴찌를 위한 몇년동안 기록 희생해가며 보내는거 보다, 더 큰 리그에 가서 어디까지 통할지 과감한 도전을 해보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그런점에서 류현진을 계속 보고 싶어하시는 글쓴분 마음은 이해하나, 한화가 류현진을 대우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현진이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팀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죠)
뭐 어쨌든, 전 한화가 코감독님 영입을 했다는 것 보다 사실은 2군 시설을 '이제야' 제대로 갖췄다는 점을 더더욱 기대합니다. 여태까지 변변한 2군시설도 없이 팀을 굴렸다는 게 지금의 암흑기의 원인이었으니까요. 이제사 한화구단이 좀 똑바로 된 투자를 하는구나, 이제야 한 몇년 뒤부터는 다시 한화가 기지개를 켜고 다시 일어설 기반을 세우겠구나 기대를 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도 힘든 판국에 국내 최고 투수더러 그 팀을 위해 커리어를 희생하라고 하는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