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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20: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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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나 폭력적인 미디어가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를 가려서 수용하는 법을 교육시키지 않는 사회가 문제죠.
인내, 절제, 분별 이런건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덕목들입니다만 우리 사회에선 어디 그러나요? 학부모들은 개차반 노동현실 속에 빠듯한 박봉 받으며 밤낮없이 일해야 하고, 미친 부동산 거품과 사교육 열풍 덕에 집값/교육비 지출이 어마어마한데 복지도 엉망이라 거기에 자기 노후 준비까지 생각해야 하는 판국이죠. 도무지 애들 돌보고 교육하고 그럴 시간도 여유도 돈도 없어요.
가정교육이라는게 애들 불러다 앉혀놓고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직접 가르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퇴근 후 남는 시간에 아이와 같이 대화하고 취미를 공유하고 티브이를 보건 영화를 보건 게임을 하건 함께 시간을 가지며 TV, 영화, 게임 그 자체에 집중하는게 아니라 그것들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하는 건데, 그게 가정교육의 출발선인데 우리 사회에서 평균 소득 수준의 학부모들이 어디 그럴 여유들이 있나요? 일주일에 한번씩 주말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것조차 버거워 할 정도인데요.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어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며 평일에는 얼굴 한번 보기 힘든 돈 벌어오는 기계일 뿐이고, 그렇게 일하고 나면 주말에는 피로에 절어 뻗어있기 바쁘거든요. 엄마는 또 어디에 있나요? 맞벌이로 아빠처럼 늘상 직장에 나가 있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고, 전업주부라고 한들 미친 사교육 치킨런 레이스에 어쩔수 없이 등떠밀려 동참하면서 비싼 돈 들여 이 학원 저 학원 뺑뺑이 돌리는 것밖에 모르죠.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야 결코 작지 않지만,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어느게 옳은건지 판단력이 없어요. 그건 그 부모들이 멍청해서 그런게 아니라, 공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에요. 미친 입시교육 덕분에 좋은 학벌 안 가지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세상이고, 그러기에 아이가 살아남으려면 이런거라도 시켜야 한다는 공포감에 싸여있기 때문이죠.
결국 요즘 아이들은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어요. 심지어 형제도 없어요. 요즘 세상에 아이 둘 낳는 가정이면 대단한거고, 하나 낳는 가정도 수두룩해요. 왜냐구요? 보육에 대한 복지가 개판인데다 미친 사교육비 생각하면 웬만한 수입으론 애 둘만 키워도 등골이 남아나질 않아요.
학교 교육이요? 그게 어디 애들 인성을 위한 교육입니까? 대기업놈들 편하게 인재 뽑아 쓰겠다고 일렬로 쭉 줄세워놓고 커트라인 자르기 쉽게 획일화된 입시교육 시키는거지. 우리나라 교육제도란게 이런겁니다. 원래 사람들은 각기 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요. 아이들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고, 그 중에서 특별히 잘할 수 있는 재능도, 특별히 좋아할만한 일도 숨어 있어요.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아이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가능성을 찾아주려 노력하고, 그걸 꽃피울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겁니다. 근데 우리 교육현실은 안 그래요. 딱 한개의 똑같은 잣대를 가지고 모든 아이들을 억지로 따라오게 만들어요. 그래놓고선 한 줄로 쭉 세워놓고 잘 따라오는 애 못 따라오는 애 구분해서 커트라인을 긋는 거에요. "앞에서부터 선착순 X명!" 이렇게요.
기업들이 인재를 뽑아 쓰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재능을 꽃 피운 와중에 자기 기업에 어떤 인재, 어떤 재능이 필요한지를 먼저 파악하고, 어떤 사람이 그 재능 분야에서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다 고용하는게 맞아요. 이래야 기업도 산업도 발전을 하는 거죠. 근데 우리네 기업들은 그럴 의지가 없어요. 귀찮거든요. 그냥 무조건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요. 회사안에서 종일 일하며 절대로 외국사람과 직접 대화할 일도 없는 사무직들에게도 영어회화를 요구해요. 지금 뽑을 직원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사람인지조차 스스로 파악을 못해요. 그냥 편하게, 입시교육이 쭉 한줄로 세워놓은 라인에서 나태하고 게으르게 커트라인을 끊을 뿐이에요. "우리회사는 몇등급짜리 회사니까 몇등에서 몇등 사이 인재들 주르륵 긁어감" 이게 전부에요.
대학들요? 그냥 이 괴상한 구조 중간에 기생하는 쓰레기같은 존재들이에요. 지금 우리네 사회에서 대학은 아무 학생이나 받아서 좋은 교육을 통해 좋은 인재로 졸업시켜내는 곳이 아니라, 이미 높은 성적 가진 애들 자기네 이름값 가지고 끌어들여서 적당히 4년 등록금 받아먹다 적당한 기업에 인수인계시키는 그런 곳이죠. 명품은 꼭 품질이 좋아서라기 보단 이름값, 그걸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 뭐 이런걸 가지고 비싸게 파는거에요. 다른 상품들 중에도 충분히 그만큼 품질 좋은 것들이 많지만, 명품은 품질보단 아무나 못가지는걸 가지고 있다는 그런 '이미지'를 판매하는거죠. 대학도 똑같아요.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에 따라 대학서열이 나눠지는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이름값을 가지고 서열이 나눠져요. 그 서열에 따라 이미 공부 잘하는 애들 줄세워서 위에서부터 나눠 데려가는거구요.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문을 갈고 닦고 수준높은 연구를 진행하는 곳으로써의 역할은 엄청 미미하고, 기업들의 애들 줄세워서 나태하게 뽑아가려는 게으른 생각에 기생하는 쓰레기 집단이 된지 오래에요. 거기에 사학재단놈들 돈세탁하는 세탁기 역할에도 충실하구요.
이런 판국에 도대체 누가, 누가 아이들한테 절제와 인내와 분별력과 도덕과 기본인성 교육을 해주겠습니까? 시스템이 이 모양인데. 아직까지 그래도 이 병신같은 시스템 속에 비록 어마어마한 10대 20대 자살율을 안고 있지만서도 나라꼴이 완전히 망하지는 않고 위태위태 버티고 있는 것은 이 개차반의 시스템 속에서도 어쨌든간에 애들 인성 좀 살려보겠다고 바둥바둥 애쓰는 교사 개개인들의 노력과(물론 많은 수의 교사들이 비리와 권태에 빠져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열정적인 교사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긋난 방향으로 뒤틀린 가정교육을 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 부모들에 못지않은 열성적인 부모들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친 기업놈들의 나태함 덕분에 아이들을 아주 그냥 학살하고 있는 엉터리 시스템 속에 부모들과 교사들의 마지막 발버둥으로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게 이 나라 교육현실인데, 자살율이 높다고 폭력성이 높다고 그걸 게임이나 만화나 영화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유치하지 않습니까..
만화, 게임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아이들은 잔혹한 것을 잔뜩 보며 자라왔습니다. 독재자의 군홧발에 민주주의를 외치던 부모 삼촌들이 잔혹하게 짓밟히는 꼴을 보며 자라났고, 대기업의 부정부패와 정부정책의 무능함으로 나라가 부도나 아버지들이 차가운 한강물에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도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집값에,사학비에,육아비에,노후대책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 때문에 부모가 자신들을 돌봐줄 겨를도 없는 텅빈 가정집에 고아처럼 자라나며 학교에 가서는 모두와 더불어 살며 공동체의 건전한 일원으로 어떻게 잘 자라날까가 아니라 어찌하면 내 옆 짝꿍을 짓밟고 그 위로 올라설까를 배우는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래도 정녕 아이들의 좌절이, 분노가, 폭력이, 범죄가, 자살이 게임 탓입니까? 만화 탓입니까? 영화 탓입니까? 음악 탓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