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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3 04: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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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가지세요. 그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생각에는 재료가 필요하죠. 책을 많이 읽으시고 이런 저런 정보도 많이 접하세요. '독서를 많이 하라'는 말이 단순히 늙은이 같은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 생각의 재료가 됩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저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신념의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과 인간 지성에 대한 의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죠. 또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에게 인간중심의 사고는 결코 선한게 아닌 사상일겁니다. 제가 왜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선택해 제 신념으로 삼게 되었는지는 여기에 기술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막 신념과 사상의 틀을 스스로 잡아보고자 노력하는 글쓴이에게 제가 제 주장을 강요하고픈 마음은 없으니까요.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정치,철학,사상과 신념들 속에서 글쓴분이 어떤 것을 선택할지 잘 고르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할겁니다. 그 수많은 사상들이 각각 어떤 것인지 많이, 또 자세하게 그 내용과 정체까지 알아봐야겠죠. 차려진 메뉴가 많아야 그 중 마음에 드는걸 고를 수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독서를 권하는 겁니다. 인터넷은 물론 방대한 자료를 빠르고 손쉽고 즉각적으로 찾아주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책은 그러한 지식의 한계선, 큰 틀 자체를 넓혀주는 거죠. 인터넷은 그렇게 넓혀둔 큰 울타리 안에서 필요한 정보의 상세한 것들을 채워넣을 수 있는 도구입니다.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 사건들이나 인물들이 몇년도에 어떤 일을 일으켰는지 그런것 까지 다 외우고 다닐 방법은 없죠. 이런 것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이 왜,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의의가 있는지 개괄적인 것들은 알고 있어야 그런걸 검색해볼 기회라도 생기는 겁니다. 인터넷이란 곳은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검색할 방법이 없어요. 빈 검색창에 엔터만 친들 내 지식의 틀 자체를 키워주지는 못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두면 결국 그 검색창 안에 입력할 단어들, 키워드들을 얻게 됩니다.
자기 신념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또한가지는 그러한 선택의 기술, 방법입니다. 시장에 나가서 수많은 수박들이 쌓여 있는걸 본다고 한들 맛있고 질좋은 수박을 골라내는 방법을 모른다면 자칫 썩은 수박을 비싼 돈주고 사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념, 사상들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봤다고 한다면 이제 그 중에서 어느게 좋은 것이고 어느게 나쁜 것인지, 어느게 내게 맞는 것인지를 골라봐야죠. 이걸 고르는 기준은 논리와 철학, 윤리와 도덕 같은 것들입니다. 바로 인문학이죠. 어떠한 사상이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가,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은 그럼 뭔가, 내가 생각하는 도덕이란 또 뭔가, 이런 수많은 의문을 파고들어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나면, 그것을 가지고 나에게 맞는 신념을 선택하게 되는거죠. 논리력을 갖추게 된다면 이런 신념들을 잘 고르는 것 뿐만 아니라 잘 다듬고 발전시켜 나갈수도 있게 됩니다. 인문학을 키우는 방법은 결국 또, 책 밖에 없죠..
읽을만한 책을 고르기란 힘들긴 하지만 일단 읽기 쉽고 재미난 것들 위주로 조금씩 읽어나가 보세요. 그러다 흥미가 생기면 더 복잡하고 딱딱하고 난해한 책들에도 흥미가 생깁니다. 흥미가 생긴 이상 사람이 못할 일은 없죠.
위에 다른 분들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라 하셨는데, 맞는 말입니다.
노력은 하세요. 하지만 거기 너무 얽매이지는 마세요. 어차피 사람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특히나 정치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 열정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중하게 고르되, 일단 고르고 나면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보세요. 정치에 있어 객관성의 유지란 어떤 걸까요? 두가지 사안을 눈 앞에 두고 이게 옳냐 저게 옳냐 고민만 하고 있는게 객관성의 유지가 아닙니다. 고민은 하되 일단 선택한 결론에 열정을 다하세요. 다만 한가지, 그때부터는 서로다른 두가지 사안 사이에서 싸우지 마시고, 스스로의 논리력과 스스로 선택한 사안이 과연 옳은가, 결점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 할 수는 있는 문제인가, 자기 자신과 싸우세요.
내 주장을 열성적으로 내세우되, 밤에 자기전에 혼자가 되면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내 주장이 과연 논리적으로 문제는 없었는가, 어긋나진 않았는가, 스스로와 스스로의 주장을 돌아보며 다시 생각해보세요. 이게 바로 정치에 있어서의 객관성 유지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시니 이런 저런 사상들에 탐독해 이것에도 빠져보고 저것에도 빠져보고 이게 옳다고 굳건히 믿어도 보고 저게 또 옳다고 굳건히 믿어도 보고 이 사람이 옳다고 따르기도 하고 저 사람이 옳다고 따라 보기도 하고 그러다 또 스스로의 벽에 막혀 좌절하거나 혹은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게 맞는 길이에요. 그렇게 해나갈수 밖에 없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어보고, 첫사랑하듯 열정적으로 뛰어들어도 보고, 실패도 하고 낙담도 하고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하고.. 그렇게 해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나의 신념이라는게 갖춰져 갑니다.
물론 그렇게 내 신념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끝나는 건 아니죠. 저도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고 아직 한창 그런 시행착오의 기나긴 길 중간쯤에서 허덕이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멍하니 생각합니다. 내가 옳은가, 내 주장이 과연 논리적인가, 내가 믿는 신념에 잘못된 점이나 헛점은 없는가..
20대 초반에는 (누구나 그렇듯)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푹 빠진 팬보이가 됐었고, 홍세화의 책에 빠져 살기도 했고, 진중권의 책, 유시민의 책..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의 책에 감탄도 하고 푹 빠지기도 하고 조금 실망도 하고 다시 거리를 뒀다가 또 탐독하기도 하고 그렇게 그렇게 나아왔네요. 중반엔 영화, 문화 관련된 책들, 정보들에 빠져 살았고 30대로 넘어오면서 책 읽는데 게을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머릿속 넓이를 넓히는 것엔 책밖에 답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눈앞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상들 철학들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보고 선택을 하고, 선택을 했으면 열정적으로 믿고 뛰어들고, 그러면서도 그 사상과 그 사상을 대표하며 지금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들과 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의심하고, 그렇게 살면 됩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제대로 이렇게 살면 자연스레 그리 된다고 믿지만, 절대 좌절하지 마세요. 이 사람이 절대로 옳아!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자! 했던 인물이 변절을 하기도 하고 혹은 알고보니 나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단걸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혹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 밝혀지기도 하고.. 또는 믿었던 책이, 신봉했던 사상이 실패하고 부정당하고 무너지는 경험도 종종 하게 될거에요. 그치만 그건 그냥 그 사람, 그 책, 그 사상이 무너지는 것이지 글쓴이가 무너진게 아닙니다. 글쓴이가 열정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주장했던 그 소중한 '실패의 시간'들, 실패의 경험들이 무너지는게 아니에요. 잠시 회의감에 빠질수도 있겠지만 그걸 경험삼아 다시 한발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엄청나게 성장을 할 수가 있어요.
열정적으로 믿고 따르고 주장하되 그것이 언제건 틀릴수도 있다는 신중한 의심과 고민을 함께 가지는 것, 이건 결국 실패의 경험과 실패를 인정하는 경험에서 얻어지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