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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11: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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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우울증은 질환입니다. 본인이 우울함에 대한 감정을 안다고 해서 그 기준으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거죠.
호르몬의 이상으로 인해 긍정적인 마인드나 의욕을 내려고 해도 낼 수 없는 병이에요. 일반적 기준에서 '아 이렇게 하면 의욕이 생겨나야지 왜 안난다는거지?'해봐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뇌에서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내게 하는 회로가 고장나 있는 병이에요. 약물치료와 전문적 상담이 병행된 의학적 접근이 이뤄져야지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걸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물론 치료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전문적 치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울증 환자 중에서는 '힘내'라는 말 조차도 오히려 더 상처 받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본인 스스로는 '이미 충분히 힘내고 있는데 뭘 더 어쩌란거지?'이런 상태라 결국 '역시 난 안돼'하며 더 좌절해버립니다.
'너만 힘들줄 아냐? 너 보다 더 힘든 사람 많다' 이런 말은 정말 최악이에요. '그래 그럼 난 겨우 이런거 하나에도 못 버티는 나약한 사람인거네'이러고 더 좌절합니다.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시죠? 근데 이런 병인거에요. 맹장에 문제 생겨본 적 없는 사람이 맹장 터져서 아픈 사람한테 '아파? 맹장 터지면 그렇게 아픈가? 왜 비명까지 지르지?' 이래봐야 이해할 수 없는것 처럼요. 그 병이 원래 그런거에요. 그 사람이 나약하거나 의지가 없어서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종류의 감정은 뇌 속에서 이뤄지는 건데, 뇌 안에서 밝은 감정을 내는 부분이 고장나 작동을 제대로 안하고, 어둡고 우울한 생각을 하는 부분만 계속 과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단순히 의지로 되는 일일까요?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것은 위험하고 힘든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면, 자기 잣대로 쉽게 재단하지 마세요. 연약해서 그런거다, 의지가 약해서 그런거다 하고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이 살다가 병에 걸리는게 어디 본인 의지가 약해서 그런거겠습니까? 엄청난 고통을 주는 병에 걸려 신음하고 아파하는게 어디 의지가 약해 그런걸까요. 아픈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아픈거에요.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치료를 해야하는 병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꼭 권하시고(본인이 기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신과라고 하면 아무래도 인식이 좀 좋지 않은게 사실이니까요) 약물치료를 받는다고 결코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히려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상담과 약물 치료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또한 우울증 환자를 도와주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인내심을 요하는 일입니다. 하루는 괜찮아 질 수도 있어요. 논리적으로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지 않다, 넌 약하지 않다, 아픈것 뿐이고 나을수 있다, 낫게 내가 도와주겠다, (위에 말했듯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힘내라, 잘할 수 있다는 말에 힘을 내는 사람도, 오히려 더 좌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전문적 상담이 필요한 것이고, 더 조심스레 접근해야 하는거죠) 설명하고 격려해서 기분이 좀 괜찮아지다가도 다음날이면 똑같은 일로 또 좌절합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답답하고 지칠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를 타박하거나 포기하면 안됩니다. 똑같은 말을 또 해주고 매일매일을 반복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해야죠. 우울증 환자를 돕는다는 것은 흥미위주로 쉽게 접근할 일이 아닌거에요.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고 도와주겠다는 각오가 마음속에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를 돕는일은 그 사람을 우울증에서 끌어내기 보다 오히려 본인이 우울증에 같이 끌려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매일 좌절과 절망속에 빠져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도와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스믈스믈 자기 마음을 갉아먹는거죠. 하루는 내 격려에 상대방이 좀 괜찮아 지는것 같다가도, 다음날이면 또 똑같은 늪에 빠져듭니다. 희망이 보이다가 다시 절망이 오고, 이게 반복되며 지치고 절망감에 먹혀가는거죠. 스스로 우울증 안에 끌려들어가지 않겠다고 매순간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상대를 지켜보고 말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절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우울증 환자를 대할때, 그사람이 내 가족, 부모 형제, 친구, 연인이라면, 그래서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면 이런 점을 명심하고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전문의의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게 하는게 최우선이며, 이런 치료과정으로 인해 본인이 수치심이나 좌절감,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해 절망하지 않도록 이끌어줘야하죠.
그게 아니라면, 그럴 각오가 없다면 우울증 환자에게 자신이 뭔가 쉽게 도와줄 수 있을거란 오만은 절대 금물입니다. 자기 기준에서의 격려를 쉽게 말하지 마세요. 또 그런 격려를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쉽게 상대를 나약하다 의지가 없다 몰아세우지 마세요. 우울증은 병입니다. 연인이랑 헤어져봤다고, 우울한 기분 좀 느껴봤다고, 좌절감 좀 겪어봤다고 쉽게 이해 가능한 그런 감정이 아닙니다.
어떤 병이건 스스로 낫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은 몸안에서 이러한 의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이 고장나는 병입니다. 그러기에 무서운 병인거에요. 암 걸린 사람한테 너 왜 암세포가 자꾸 커지냐고 타박할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우울증 걸린 사람한테 너 왜 의지를 내지 못하냐, 우울해하냐고 타박할 수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