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2
2013-12-03 15:12:37
21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단순히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서 지지하는게 아닙니다.
나와 해당 정치인 사이에 일시적이고 전략적인 정치적 동맹을 맺는 거죠. 마치 범야권 후보단일화 처럼요.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소견과 완벽하게 똑같은 생각을 가진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건 정치를 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 중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내가 바라는 정치적 주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여러 정치적 성향들 중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이뤄나가기 위해서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자신이 가진 정치적 소견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나랑 비슷한 사람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 정당(민주당으로 대표되는)이 왜 선거때 힘을 합칠까요? 이들에게 있어서 진보와 보수라는 경제정책 차이보다 독재 친일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가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라 그런거에요.
개개인의 특정 정치인 지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그 사람이 모든걸 다 이뤄줄거다, 저 사람의 모든게 다 옳다, 이래서 지지하는게 절대로 아니에요. 이런식의 지지는 지양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확고하게 하는 일입니다. 내 생각엔 이게 옳고, 저게 그르다고 생각한다, 이게 확실히 서있어야 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게 무엇이냐를 또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하구요. 그 이후라야 가판에 나온 정치인들을 한번씩 훑어보는게 순서입니다. 그 인물들의 정치적 성향은 무엇이고, 또 뭘 주장하고 있고, 그들 개개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걸 살펴본 후에, "내가 바라는 정치적 주장을 이뤄나가기 위한 장기적 플랜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는 이 사람이랑 연합해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이루도록 하는게 순서일거 같다" 이렇게 해서 지지 후보를 정하는 겁니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그 정치인이 내가 바라던 방향을 잘 이뤄주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지속적으로 요청해야 하는 것이구요.
지금이야 진보쪽, 좌파쪽 표가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 높은 (건전)보수쪽에 자기 표를 던져주고 있지만, 이들이 완전히 보수로 돌아선 것이 아니에요. 이들은 우선 '독재세력 타도'와 '민주주의 수호',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대한민국 정치계에 가장 시급한 사안들을 우선 해결하기 위해 보수쪽 네임드 정치인들과 일시적 연합을 하는 것 뿐입니다. 보수쪽 지지자들 역시 마찬가지 자세여야 합니다. 안철수나 박원순, 문재인을 지지하더라도, 이들이 '개인적으로 좋아서', 혹은 이들이 모든 일을 다 알아서 해주실 구세주라서 지지하는 행동은 지양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바라는 정치적 이상향을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안철수/문재인/박원순 각각이 그리는 각자의 정치적 이상향과 비교하세요. 그리고 나 자신이 바라는 정치적 이상향을 이뤄내기 위해 누구와 연합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어떻게 연합해야 하는지를 계산하세요.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아이돌 가수에 환호하는 그런 태도와는 명백히 달라야만 합니다. 약아빠지고 교활하게, 내 목적을 위해 저들과 연합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들은 내 표의 도움을 받고, 나도 그들을 이용하는 그런 관계입니다. 끊임없이 견제하고 요구하고 대화하고 수틀리면 언제건 갈아탈수 있는 그런 관계요.
또 한가지.. 정치인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민주공화정에서 정치참여는 모든 국민에게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입니다. 정치참여를 하지 않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정치에 대해 공부하지도 알려고 들지도 않는 사람은 민주공화정의 시민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참정권을 나눠주지는 않았죠. 헌데 지금은 단순히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기만 해도 참정권을 다 보장하는 시대입니다. 이런데도 정치에 관심 안가지고 공부 안하는 사람들은 노예나 다름없어요. 그것도 참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 참여를 안하거나, 정치에 대해 공부를 안하거나 관심 안 가지는 아주 악질적인, 나라에 해가 되는 그런 노예죠. 정치에 대한 관심, 공부, 고민, 철학, 참여는 전 국민의 의무사항입니다.
다만 정치라는 것이 워낙 복잡하고 방대한 문제이다보니 전 국민이 생업을 포기하고 모두 다 정치에만 몰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국민의 수가 너무 많아 직접참여를 관리하기가 힘든게 현실이기에 '밥먹고 정치만 하는 프로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우리가 장사도 해야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수많은 생업에 종사하며 바쁘게 살아야 하는데 복잡한 세금 문제, 법률 문제를 일일이 내 손으로 다 공부해 해결할 수는 없죠. 그래서 세무사를 쓰고 변호사를 돈주고 고용해 쓰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밥먹고 세금 계산만 하는 사람이고, 밥먹고 법률문제 해결만 하는 사람이니까요. 프로 세금관리사, 프로 법률관리사인거죠.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쁜 나 대신 필수적으로 해야 하지만 복잡한 일들을 해당 일만 전문으로 처리하는 해당분야 전문직업인에게 계약해 일임한다... 정치인을 뽑는 것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정치 문제를 내가 밥도 안먹고 돈도 안벌고 매달릴수는 없는 노릇이니, 프로 정치인을 계약하고 고용해 맡겨두는 겁니다. 계약해서 쓰던 변호사나 세무사가 영 마음에 안든다면 계약 끊고 다른 사람으로 고용하듯, 정치인에 대한 지지 역시 그런 '계약 관계'인 겁니다. 물론 정치라는 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이 지역 수많은 주민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모두 얽혀 있는 것이기에 공동의 최선을 찾기 위해 선출식으로 뽑고, 해임도 함부로 못하게 되어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변호사 고용하는거랑 똑같은 거에요. 다만 한번 뽑으면 쉽게 자를수 없고,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 일해줄수는 없는 입장의 사람이니 그만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죠.
정치인을 지지할때, 아이돌 쫓듯 그냥 그 사람 개인을 보고 지지하지 마세요. 먼저 자기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세우세요. 그리고 그 소신에 따른 이상향을 마음속에 건설하세요. 그 이상향을 이루기 위한 장기적 플랜을 짜고,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인가를 따지고, 그에 따른 (언제건 잦은 수정과 보완이 이뤄질) 중/단기적 계획을 짜는 겁니다. 그 이후에서야 시장에 나와 있는 정치인들 리스트를 살펴보세요. 그들 개개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소신과 성향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을 이용했을때 내 정치적 이상향을 이루기 위한 장기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세요.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이 내 정치적 주장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 판단되면 일시적 동맹을 맺어 표를 행사하는 겁니다.
그렇게 지지하기로 결심한 정치인과 나 사이에서 서로의 정치적 주장 중에 우선순위에서 벗어난 일로 트러블이 생기는 일은 매우 잦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땐 다투고, 내 주장을 최대한 관철시키려 노력해보고, 정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때 내가 포기해야 하는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과연 포기해도 될만한 사안인가, 포기해도 괜찮을 문제라면 그럼 이것에 대한 포기가 내 계획에 끼칠 영향은 무엇인가,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싸워나가야 하는거죠.
이게 바로 '비판적 지지'라는 겁니다. 무작정 '저 사람이 모든걸 다 잘 알아서 해줄거야'하고 아이돌 바라보듯 지지하는 행동은 이명박근혜 콘크리트 33%와 다를게 하나도 없는 행동이에요. 이렇게 먼저 자기 소신을 세우고, 그걸 바탕으로 지지할 정치인을 골라 그 사람과 일시적 타협을 하세요.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은 수없이 터져나올겁니다. 그때마다 싸우고 우기고 주장하고 타협하고 양보하고 포기하고를 반복하며 '그 사람이 바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라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장기적 플랜을 따라가세요. 사소한 차이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러나, 만약 중대한 차이가 발견된다면 언제건 지지를 철회하고 다른 정치인을 골라 견제하시면 됩니다.
저 역시도 문재인/박원순/안철수를 일단 지금은 지지하지만 좌파인 저와 보수쪽인 저 셋 간에 개별 정치 사안에 있어서는 매번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수호, 독재 타도, 부정부패 척결 등의 중차대한 문제들에 있어서 동맹을 맺을 가치가 있기에 지지를 했고, 또 지지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소한 개별 사안에서의 충돌로 인해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라도 더 내 목소리를 관철시키려고 안달은 하겠죠. 다만 만약 이 셋 중 누군가가 민주주의 수호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거나(예를 들어 자기 지지기반을 통채로 들고 독재 세력과 손을 잡는다거나.. 과거 김뽕삼처럼요), 비리와 부정이 있었다고 한다면 가차없이 버리게 되겠죠. 그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자, 저 스스로 이 셋과 정치적 동맹을 맺은 이유니까요.
다만 글쓴분 말처럼 그런 부정부패 비리가 단순히 정치 검찰의 눈속임 쑈일 위험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정책실수에는 관대할 수 있어도 '청렴결백'에 흠집이 나는 것에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들과 정치적 연대를 맺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기 때문이죠. 독재 비호 세력도 그걸 잘 알기에 없는 죄 만들어내서 뒤집어 씌우려는 공작을 수도 없이 펼쳐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미디어와 각종 넘쳐나는 정보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신중함, 인내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죠. 이미 우리는 그런 공작에 말려 들어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자, 향후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해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했을 막대한 데이터베이스였던 사람을 잃었습니다. 잘한 것도 많았고 못한 점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았을 기념비적 인물이자, 자신의 공과를 빼곡히 적어 남긴 걸로도 모자라 이후 위정자들의 정국 운영에 어마어마한 도움을 줄 수 있었을 '2000년대 대한민국 정치사에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정표' 같은 자산 격의 인물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