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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6 03: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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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다리 부러진 것을 내가 의지만 가지고 부러진 뼈를 붙이고 손상된 근육을 이어 붙이는게 가능한가요? 불가능하죠.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에서 감정을 컨트롤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곳이 고장난 거에요. 이걸 의지만 가지고 고쳐내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순 우울감을 느끼는 거라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빠져나오겠지만 심각한 우울증은 그런 의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에 병이 난거라구요. 우울증 환자들이 본인이 나약해서 그런거라 생각하시나요? 감기 걸리는데는 본인의 의지가 굳으냐 약하냐 이런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심지가 곧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의지만 가지고 감기를 피하거나 물리칠 수는 없는거죠. 마찬가지로 우울증 역시 본인 의지가 강하냐 약하냐와는 하등 상관없는 '질환'입니다.
심한 우울감 역시 너무 심해져 우울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치료나 재활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만 가지고 우울증을 쉽게 보지마세요. 우울감 극복 사례를 가지고 섣부르게 우울증 치료법을 논해서도 안됩니다. 감기 치료법을 가지고 암환자에게 들이미는 것 만큼이나 정말 위험한 행동이에요.
우울증은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와 주변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심각하고 위험한 병입니다. 주변인들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호승심으로 '너는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날 봐라 이렇게 의지가 강하니 우울함도 이겨내잖아' 이런식의 접근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울증 환자더러 죽으라고 하는거나 다름없는 행동입니다. 가뜩이나 정신과 치료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이 팽배한 우리네 사회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의 환자가 병원 문턱까지 가는 것만도 힘든게 현실인데 잘 설득하고 자존감이 상하지 않게 치료를 받을 결심을 하게끔 유도하기는 커녕 '니가 약해서 그렇다, 니가 나약한거다' 독설을 퍼붓는 꼴인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울증은 신체의 일부가 고장난 상태의 질병입니다. 감정을 조절하고 의지를 가지게 하는 호르몬을 조절하는 곳이 고장난 병이에요. 환자 본인이 나약해서 일시적으로 우울해 하는게 아닙니다. 전문의의 치료가 꼭 필요하고, 이 역시 본인이 나약해서 정신과에 의지하는게 아닌겁니다. 만약 의사가 약물치료를 처방하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것도 또한 본인이 나약해서 약물에 의존하는게 아니에요. 우울증 약은 단순히 기분 우울해졌을때 기분 좋아지라고 먹는 그런 약이 아니에요. 매일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약이고, 근본적 치료를 위해 먹는 약이지 일시적으로 약에 의지해 감정을 좀 좋게 만든다거나 그런 용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 중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면, 우울증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를 합시다. 우울증 증상과 전문의 상담과 병원 치료, 약물치료가 결코 환자본인의 나약함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환자 본인 스스로도 알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유도해줘야 합니다. 우울증은 혼자서 쉽게 빠져나올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도 무척 조심스럽게, 제대로 접근하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우울증 환자 케어하는건 무척 위험한 일이에요. 병의 특성상 아무리 힘내라고 도와주고 말해주고 설득해도 그때 뿐, 금방 다시 좌절해버립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포기하거나 지치거나 짜증내지 말고 꾸준히 똑같은 말을 몇번씩 해주더라도 지속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선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좌절감만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죽을만큼 힘내고 있는데 뭘 더 어쩌란거지, 역시 난 안돼'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응원과 격려도 사람마다 다 케이스가 다르고, 한번은 내 응원에 힘을 찾는것 처럼 보여 희망을 얻었다가도 몇시간 뒤면 또 똑같은 좌절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계속 같이 겪다 보면 오히려 내가 우울증 안으로 같이 끌려들어가는 상황까지 생길 수 있어요.
우울증 환자를 돕는다는게 이렇게나 위험하고 조심스럽고 또 환자 개개인에 따라 케이스도 다 달라요. 그냥 쉽게 호기심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니가 약해서 그런거다..란 말은 정말 독이나 다름없구요. 최대한 설득해서 자존감이 크게 상하지 않게 전문적 치료의 문턱까지 유도해주는게 해줄수 있는 최선입니다. 전문의의 치료가 시작되면 그에 맞춰 도와주는 거구요. 지속적이고 꾸준한 치료를 받고 환자 스스로 포기하지 않게끔이요.
제발 우울증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우울증 환자들을 나약하다 생각하지도 마세요. "쟨 왜 우울함 극복이 안돼? 난 되는데ㅋ 약해빠져서는.." 이런 식의 접근을 하려거든 아예 신경 꺼주세요. 우울증 환자들은 결코 나약하거나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강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도 어떤 계기로 그 병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게 우울증이에요.
ps)단순 우울감이 아니라 진짜 중증 우울증인데도 혼자 의지로 빠져나온 사람도 있다구요? 그런 특이 사례를 일반화 하지 마세요 제발. TV보시나요? 대장암 말기, 위암 말기에 콩된장만 먹고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손 못쓴다고 나가라고 한 말기암 환자가 좋은 음악듣고 명상과 마음 수련을 통해 나았다는 소리도 있네요. 그럼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암환자들이 당장 퇴원해 하루 세끼 콩된장만 먹고 종일 조용한 음악에 명상만 할까요? 방사선 치료, 항암제 치료, 수술치료 다 포기하고??? 우울증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마다 증상이 다 다른거고, 어떤 사람이 기적적으로 전문 치료 없이 완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경우를 다른 우울증 환자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건 말이 안되는 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