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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1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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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을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유통에 들어가는 부담은 훨씬 더 크죠. 단순히 배송비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물을 판매하려면 어느지역의 어느 소비자군이 얼마만큼의 구매를 해줄 것인가를 '예측'해 제품을 미리 준비시켜야 합니다. 예측보다 수요가 더 많다면 그나마 행복한 일이지만, 품절 상황이 발생한 이후 공급량보다 초과된 잉여 수요량만큼 '팔 수 있던 매출량을 팔지 못하는' 손해가 생긴 셈이죠. 그러기에 보통은 재고가 어느정도 남을 것을 고려하고 예상 수요량보다 살짝 웃도는 양을 공급합니다만 이 경우에는 재고가 발생하게 되죠. 이걸 보관/처리 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기에 제작사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건이 덜 팔릴 수록 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거죠.
이게 제작사가 위치한 동네 바로 앞 마트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겠지만, 만약 지구 반대편 어느 촌동네에까지 판매를 하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막대한 배송비 부담에, 그 촌동네에 내 물건을 배송 후 보관할 창고 비용에, 소매점 전달 이후 재고 발생에 대한 부담까지, 거리가 멀 수록 이런 부담은 더 커지고 재고 발생에 대한 대응도 느려지고 무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 재고가 발생한다 해서 섣불리 세일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이런 실물을 판매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판매 지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지역별 판매 시기 편차도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네가 위치한 동네에서야 바로 판매가 가능하더라도 아까 말한 지구 반대편 촌동네에는 더 늦게 판매될 수 밖에 없거든요. 일주일이건 한달이건.. 만약 전세계 동시 발매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세계 곳곳 구석구석의 소매점들에 모두 공급이 되어 일시에 판매개시가 될 스탠바이 상황까지 세계 여기저기의 창고에 미리 물건을 배송, 준비, 보관 시키는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될 겁니다. (미국에서 만든 게임 패키지가 로씨야에서 동시 발매된다고 생각해보죠. 지구 반대편 그 넓은 땅덩이의 로씨야에서 그나마 대도시에만 공급한다고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겁니다. 그 도시들의 소매점들에 일일이 공급을 해서 발매일날 모든 소매점이 동시에 판매개시를 할수 있게 준비시키는데까지 말이죠. 그리고 그동안 미국내에선 배송과 소매점 공급이 미리 다 완료될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팔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납니다. 물론 무식하게 미리부터 다 공급해놓고 기다리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아마도 지역별 배송시기 편차를 고려해 발송시기도 유연하게 대응하겠지만 쉬핑에 발생하는 여러 변수를 고려했을때 아마도 아주 세세한 일정 조정은 불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시발매가 가능한 규모의 거대 제작사의 힘 잔뜩 준 초기대작이면 모를까, 중소 게임 타이틀의 경우엔 지역별로 따로 발매시기를 잡는게 일반적입니다. 동시발매를 할 재력도 시스템도 없는 회사, 그런거 가동해줄만큼의 대작 수준은 못되는 게임이 대다수니까요. 그럼 세일 일정을 잡기도 더 힘들어 집니다. A지역에선 발매 한달이 다 된 게임이라 세일을 해서 반짝 더 팔아보겠다고 나설 수도 있지만, B지역에선 발매한지 일주일도 안 됐을 수도 있죠. 그럼 A지역에서의 세일이 B지역에서의 향후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실물 판매에 있어서 세일과 할인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죠.
스팀을 통한 디지털 패키지의 판매방식은 위에서 말한 모든 문제가 한방에 해결됩니다. 세계 여러지역들 중 일정 거리를 두고 중계 역할을 해줄 서버들만 듬성듬성 심어둔다면, 중소게임업체, 인디게임업체들까지도 전 세계를 상대로 유통비용, 재고처리비용, 창고비용 부담없이 마음껏 팔 수 있습니다. 판매를 위한 시장은 전세계로 넓히면서 유통비/창고비/재고 관리 처리에 대한 비용은 싹 사라지니 엄청난 변혁인거죠. 게다가 마케팅을 따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팀이 홍보 역할도 동시에 하니까요. 전세계 판매일정을 동시에 잡건, 비슷하게 잡건 제작사측의 부담은 전혀 없습니다. 미리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전혀 안 들어가니까요. 이는 결국 전세계 어느지역에서건 해당 게임의 수명 사이클이 동일하게 굴러가도록 조절 가능함을 의미합니다. 미국 뉴욕에서 발매된지 한달된 게임은 로씨야 촌동네에서도 발매된지 한달 된 게임입니다. 세일 등 추가 판매를 위한 마케팅 일정을 잡기에도 훨씬 유리하죠.
재고가 없는 디지털 판매방식은 또한 한번 만들어두면 계속 판매를 할 수 있다는 결정적 장점을 지닙니다. 이미 수명이 다 지난 게임도 꾸준히 낮은 양의 판매량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만, 실물 판매라면 추가 제작비/유통비 등 배 보다 배꼽이 크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죠. 하지만 디지털 판매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팔립니다. 1년지난 게임을 할인을 왕창 때린다 해도 손해가 아니에요. 할인된 가격만큼(거기서 스팀 수수료 뗀 만큼)의 작은 수입이 그대로 이윤으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그런 세일은 애당초 이 게임에 관심 가진 타겟층 외의 무관심하던 게이머들까지 추가로 (별 부담 없이) 구매를 해보는 효과를 만들죠. 제작사 입장에서 세일을 하는게 손해볼 부담이 전혀 없단 겁니다. 그저 '지금쯤엔 몇% 세일 하는게 최대한 이윤을 높일 수 있을까'만 고민하면 되니까요.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제작사들 역시 큰 부담 없이 전세계를 상대로 판매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인디게임 제작자와 중소규모 게임 회사들이 새로운 도전을 해 볼 바탕을 제공해주며 결국 다시 게이머들에게 다양하고 참신한 게임들을 접할 수 있는 장점으로 돌아옵니다. 이게 제가 스팀을 좋아하는 이유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