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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03: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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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란 단어의 의미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 위에 다른분도 말씀해주셨지만, 근대화가 절대 선이라거나 축복같은 것이란 생각을 걷어내고 봅시다.
근대화라는 것 자체가 서구 문명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 시대구분이 바뀌는 지점에서 그러한 일련의 변화들을 묶어 구분하기 위해 부르는 용어가 아니던가요? 무작정 그 변화가 좋은것, 축복받는 것이란 생각을 하지말고, 변화에는 응당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작용이 있는게 당연할 겁니다. 그런것을 모두 배제한채 근대화가 무작정 대단히 좋은 것, 선한 것, 모두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것이라 전제를 깔아두고 시작하니까 일제에 의한 근대화를 '일제 덕분에'라고 엉뚱하게 포장하거나, 혹은 이에 반발해 전면 부정하고 보거나 하는 식이 되는 거죠.
철도 놓고 공장 세우고 한다고 그게 근대화냐 하시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에 근대화가 되었다는 시각은 철도 놓여지고 공장 세워진 것 그 자체를 근대화라고 지칭하는 겁니다. 거기에 어떤 옳다 그르다 가치판단을 담는게 아니라, 산업화가 되고 도시화가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 그 자체에 대한 용어일 뿐이에요. 워낙에 근대화라는 말이 단순히 산업이나 과학기술 등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문화나 사회 인식,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의 변화 등등 광범위한 의미로 쓰여지다보니 한 나라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느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은 당연히 이견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근대화라는 것 자체도 사회문화경제 모든 방면에서 어느 한순간에 딱 동시 스타트하는 그런 것도 아닐테구요. 근대화라는 단어의 범주를 산업기반이 구축되고 도시화와 새로운 문물에 대한 교육이 일어나는 것, 기존의 전통적 가치가 물러나고 바뀌어가는 것 뭐 이런 쪽으로 구체화 했을때 그러한 변화가 일어난 시점이 일제 강점기 시절이다, 이렇게 보는게 식민지 근대론이란 거죠.
여기에다 근대화는 옳은 것이다, 선한 것이다, 이런 가치판단을 넣어버리면 뜬금없이 '일제가 우리한테 근대화 해줬으니 고마워 해야 한다'이런 뻘소리가 나오거나, 혹은 '일제가 우리땅에 한 것은 일단 무조건 절대로 근대화는 아니다' 이런 반발과 부정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식민지 근대론은 그냥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일어난 (우리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일어났다고는 해도) 일련의 변화 그 자체를 근대화라 칭하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식민지 시혜론 같은 뻘소리랑은 전혀 다른거죠.
이걸 굳이 이렇게 구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을 근대화라 부를 것인가, 그것이 후대에.. 즉 현재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 영향 중 특히나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하는가 이런식으로 현재를 비춰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어났다, 라는 시각에서 출발할 수 있는 생산적 논의들을 살펴보자구요.
산업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부의 집중, 빈부격차 같은 문제점은 그러한 산업화가 일제에 의해 이뤄졌기에 완화되기는 커녕 더 심화되었습니다. 일제가 부의 재분배라거나 한국민의 평등 같은걸 원할리 없기 때문이죠. 일제에 부역하는 매국노 배신자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문제가 결국 광복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잖습니까.
교육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본문에도 썼다시피 현대적 과학이나 수학 뭐 이런것을 가르치면 뭐합니까.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개인'을 만들기는 커녕 일제에 순응하고 전체주의에 매몰되게 만드는 교육을 했죠. 그런 식의 잘못된 교육제도와 교육방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근대화로 인해 전통 가치를 배척하고 밀어내는 부작용 역시 일제에 의해 근대화가 되었기에 더 심화된 것이죠. 일제에겐 우리네 문화와 전통을 철저히 매몰시켜 버려야 우리를 자기네 문화에 흡수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으니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전통을 지키고 보호해주긴 커녕 오히려 더 밀어내버렸습니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전통의 계승에 대해 무심하고 무조건 새것만을 강박적으로 쫓는 습성이 생겼죠.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가 근대화 되었다는 말은, 근대화가 무조건 옳고 좋은 것이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본다면 근대화란 이름의 변화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이 좋은 영향보다 나쁜 영향이 더 많았을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하면, 그렇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이 오늘날 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 우리네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돈 앞에 천박하기 그지없는 세태가 일제 강점기 시절 산업화를 겪었던 후유증이 아니냐(나라 팔아먹더라도 자기 부만 챙기면 그만인 사회였으니까요), 오늘날 우리네 교육이 획일화된 교육을 통해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을 길러내는게 아니라 그저 체제에 순응하고 말 잘듣는 전체주의적 인물상을 양산해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이유가 근대화 과정에서의 신식 교육이 일제 강점기에 일제를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이 아니냐, 오늘날 우리네 사회인식이 전통을 잇는것에 무심한채 새로운 것, 편리한 것, 서구 문화권에서 넘어온 것에만 열광하는 이유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의도에 의해 급속히 진행된 근대화로 전통 문화가 모조리 단절되어 버린 영향이 아니냐, 이런 식의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대화라는 변화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그러한 근대화가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긋난게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테니까요.
일제 강점기 시절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관점, 즉 식민지 근대론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려면
1.근대화 자체가 무조건 옳은 것이다
2.근데 그 근대화가 일제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네?
ㄴ3-A.그러니까 일제한테 고맙지.
ㄴ3-B.거짓말 마라 일제에 의해 이뤄진건 근대화가 아니다!
이런식의 흐름이 아니라,
1.근대화란 산업화 도시화 등등 근대라는 시대구분을 위한 일련의 변화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2.그런점에서 본다면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일어난 변화들은 근대화라 부를만 하다.
3.그러나 일제에 의해 주권이 빼앗기고 착취를 당하는 구조하에서 일어난 근대화가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이런 흐름이 맞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야기된 문제가 오늘날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근대화라는게 그 자체로 마냥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부산물로 부가 축적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결과적으로 군사력이 강력해지며 남의 나라 침략해 피 빨아먹는 광기의 시대가 도래한 덕분에 남에게 죽지 않으려면 다들 어쩔 수 없이 근대화 코스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 나기는 했지만 그게 무조건 선하고 옳은 길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태동으로 전통적 신분계급이 없어지고 경제적 풍요가 이뤄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해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생겨났다고는 하나 그러한 부가 소수에게 독점되고 경제 계급이 나타나 다시 나뉘어지며 사회가 한번 뒤흔들어졌을뿐 뭐 대단한 유토피아가 도래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근대라는 시대구분, 근대화라는 것은 이러한 변화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지 그게 옳은 것이다 아니다 하는 가치판단은 별개의 문제란 거죠. 막말로 우리보다 먼저 근대화를 거친 나라들의 꼴만 봐도 그렇습니다. 극도의 산업발전을 이룬 서구 열강들은 엄청난 빈부격차로 경제적 계급이 나뉘어진 새로운 계급사회를 한참 더 살아갔으며 넘치는 욕심과 강력해진 군사력을 주체하지 못해 자기네끼리 이권다툼을 벌이다 되려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광기에 빠지는 꼬락서니를 보여줬습니다. 일본은 어떤가요? 서구문물의 수용으로 강력한 군사기술을 가지고 조선을 강제 식민지화 하기는 했으나 자기네 왕을 신으로 모시는 토착종교의 광신도가 되어 자살특공이네 항복 대신 할복이네 이런 정신나간 짓거리나 해댔죠. 서양의 정치체제를 흉내 내기는 했으나 막장 군부가 강력한 힘을 휘두르며 사회/문화/정치적으로 정말 지독하게 막장의 끝장을 보여줬죠.
요는 근대화란 건 무작정 좋은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구 역사의 흐름을 기준으로 역사상 일어난 일련의 어떠한 변화들을 묶어 지칭하는 말일 뿐이고, 그러한 변화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다..하면 그것을 근대화 되었다고 말 붙이는 것 뿐이죠. 그러한 변화가 어떠한 과정으로 일어났고,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 특히나 부정적인 부작용은 어떤 것이 생겼느냐 이것을 파고드는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막연히 근대화는 좋은 것이니까 그걸 누가 해줬네, 내가 직접 했네 이런걸로 싸우지 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