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7
2015-01-02 03:29:37
7/19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모든 병폐들을 모조리 부모세대의 탓으로만 돌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위에 본문글에서 비겁자란 단어를 써서 말했지만, 그들이 무엇 때문에 비겁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 '비겁함'은 그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위에 말했듯 그 시절을 관통하며 정글같은 냉혹한 경쟁과 착취의 구조 속에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져갔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살아 남으셨습니다. 때로는 열심히 내달리고 때로는 비겁한 침묵 속에 숨기도 하며 치열하고 처절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살아남았기에 바로 지금 우리 세대가 태어나고 자랄 수 있었죠.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비겁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우리 자식세대들 때문이었죠. 그분들이라고 해서 왜 정의를 모르고, 그분들이라 해서 왜 자존심이 없었을까요. 다만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그 모든걸 접어둔 것 뿐이죠. 자기 가족과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비정하게 또 때로는 비겁하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부모'란 존재 앞에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의미없는 일일 겁니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말한 부모세대의 '비겁함'이란 그 세대를 비난하거나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그 비겁함은 그 세대 뿐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세대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입니다.
부모세대는 분명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온전히 그들의 책임만으로 떠넘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은 비록 실패했으나 그 행동의 동기는 가족과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 대한 각오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그 처절한 노력이 분명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모세대에 대한 제 생각은 비난과 책망이 아니라 고마움과 경외, 그리고 안타까움의 마음입니다.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실패한 것이니까요. 아니 오히려 가족을 위한 숭고한 의도와 정말 말 그대로 온 생명을 다 던지는 엄청난 노고가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요. 그렇기에 오히려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와 반목하며 그들의 의도와 그들의 수고를 폄하하고 오해하는 것이야 말로 경계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저 또한 어릴적엔 치기어린 생각에 그런 원망을 한게 사실이지만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알게 되더군요)
그러나, 그럼에도 부모세대는 실패했습니다.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식세대에게 절대로 당신들이 살아낸 그 지독한 시절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처절하게 노력을 했으나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끔 나라와 사회 근간을 바로 잡는 일 보다 당장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끔 달려왔으니까요. 물론 풀뿌리 캐먹으며 굶어죽을 걱정을 해야 했던 시절, 독재의 시퍼런 서슬 아래 나와 내 가족의 안녕만도 챙기기 버겁던 시절 '나 아닌 우리'의 큰 이상을 챙기지 못했다 하여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어찌되었건 그 실패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만들어 냈습니다. 책임을 추궁하거나 비난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세대에게 왜 위로가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부모세대가 겪는 비극과 아이러니는, 단순히 힘든 시절 처절하게 살아왔다는 부분에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게나 힘든 세월을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아왔음에도 자식세대에게 괴로운 세상을 넘겨주게 된 것, 그렇게나 목숨을 걸고 노력해 왔음에도 본인들도 자식들도 모두 힘든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 이 실패한 현실과 그 좌절감이야 말로 우리 부모세대가 겪는 비극의 정체입니다. 이 비극적 현실, 이 아이러니를 빼놓고는 우리 부모세대에게 왜 어째서 위로가 필요한 것인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가 부모세대의 이러한 '실패'를 담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것은, 그 실패를 가지고 부모세대를 탓해야 했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들이 어째서 실패를 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노력하고 어떤 목표로 살아왔는지 그 안타까움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부모세대에 대한 진짜 위로이며, 그것이야 말로 세대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니까요.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는 부모세대에 대한 진정한 위로를 담기 보다, 그저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부분만 골라내어 말초적 감성자극에만 그쳤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이것만으로 영화에 대해 불편함까지 느낄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위에서 몇몇분이 이 영화에 대해 억지로 정치색을 입혀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는 반대로, 이미 세대 갈등은 이 영화 이전부터 심각하게 존재해 왔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이런 태도가 그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말입니다.
ps)위에 몇몇분이 '그런 식이면 역사 다큐멘터리 아니냐'고 하셨는데 아뇨 제 생각은 다릅니다. 부모세대의 실패를 다뤘다면 일종의 영웅서사시 형태로도 나올 수 있었을겁니다. 누구나 납득 가능할 선택들, 옳다고 믿은 선택들을 하며 그 길을 향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내달렸음에도 종국에는 비극적 실패에 다다르는 영웅의 서사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