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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8 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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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이 떨어지네 인구가 줄어드네 난리들을 피우는데, 그럼 나라가 먼저 나서서 애 낳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줘야 정상인거죠.
솔직히 출산/육아 휴직 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눈치 주고 애 낳을거면 알아서 회사 관두라고 압박하는 회사들이 한 둘이 아닌데 애를 쉽게 낳을 수 있을리가요. 글쓴분 말처럼 여성도 자기가 여태 노력해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데 출산/육아가 지금처럼 그 모든 커리어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높은 장벽으로 존재하는 이상 그리 쉽게 강요할 문제가 아니죠. 그런 소리 쉽게 하는 사람들더러 모래사장에 모래성 하나 열심히 쌓으라고 해놓고 완성한 뒤에 자근자근 밟아주면 엄청 화내고 허무해할겁니다. 기껏 수십분 노력한 게 무위로 돌아가도 그럴텐데 수년간, 아니 학업에 힘쓴 것 까지 하면 수십년간 노력해 만들어온 자기 커리어를 그리 쉽게 포기하라는 말이 어쩜 그렇게 손쉽게 나오는 걸까요.
출산과 육아가 지금처럼 '여성의 사회적 커리어의 종착점'으로 존재하는 이상 애 낳으란 소리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죠. 우리나라에선 애 낳고 나면 그때부터 어마어마한 돈이 깨져 들어갑니다. 복지는 후진적인데 사교육 광풍 덕에 애 키우는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요. 반면 임금 수준이 낮고 고용 유연성이네 뭐네 약아빠진 말장난으로 노동환경도 불안정해 육아와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대는 일이 정말 말그대로 허리가 휠 정도죠. 웬만한 벌이로는 애 둘만 넘어가도 맞벌이 없이는 키울 엄두를 못 냅니다. 그럼 아빠도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애는 누가 키우느냐, 남성의 육아휴직은 커녕 여성도 육아휴직 내는게 눈치 보이는 나라에서 결국 양가 부모님의 몫으로 떠넘겨지죠. 은퇴한 노년에도 자기 삶 같은거 없어요. 손주 보느라 육아중노동에 시달리며 관절질환에 시달려야 하는 나랍니다.
그렇다고 어디 부모들 퇴근을 정시에 시켜주나요? 밤늦게까지 푼돈 쥐어주거나 혹은 아예 무상 노동착취로 붙들어뒀다 집에 돌려보냅니다. 애는 누가 키우나요?
더이상 출산이 여성의 사회적 커리어를 끝장내는 일이 아니게끔 남녀간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을 동등하게 부여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 남녀간 평등이 이뤄져야 하고, 부부가 번갈아 출산/육아 휴직을 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끔, 그 부담을 나눠질 수 있게끔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한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나라가 복지제도로 나눠져야 하며, 임금 수준을 높이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아이의 부모가 여가와 자기 계발과 육아 모두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출산과 육아가 말 그대로의 '축복'이 되는거지, 지금처럼 부모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조부모에게까지 부담을 주며 특히나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을 떠넘기는 상황에서는 축복이라기보다 부담일 뿐이죠.
그리고 이걸 다 떠나서라도 아이낳기 싫다...는 건 개인의 취향으로 존중받을 일입니다. 아니 무슨 젊은 남녀가 애낳기 위한 기계도 아니고, 당연시하며 강요할 일이 아니죠. 심지어 애 낳고 살기 좋은 나라도 아니고 완전 빡센 나라꼴을 만들어놓고 '자연의 순리'라는둥 '애국출산'이라는둥 남의 개인사에 참 쓸데없이 참견들 많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