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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07: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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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가지, 제가 단정적으로 말한 실패라는 표현에 대해 설명하자면 부모세대가 그토록 희생과 고난의 삶을 견디며 살아온 가장 큰 목표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리고 영화에서도 말하듯이 "내 자식 세대는 나처럼 이런 고생시키지 않겠다"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 부모 세대는 오직 이 목표만을 위해 한눈 팔지도 않고 게으름 피우지도 않고 모든걸 바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의 현재는, 그리고 그들의 자식 세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가요? 단순히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류의 주관적 행복지수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부모 세대의 노력이 그 성과를 이뤄가는 듯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만연한 비리와 부정으로 인해 종종 사건사고가 터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가장이 열심히 돈 벌어 오면 한 가정이 쌀밥 먹고 생활을 굴리고 저축도 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보금자리도 마련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죠. 그러나 이들이 이토록 가정을 위해, 내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한 도구로서의 나라와 기업을 위해 헌신적으로 몸던져 일을 해오는 동안에도 그 이익을 적게 나누고 자신이 점점 더 많이 취해가던 대기업 재벌들이 방만한 경영과 경제범죄를 저지르며 썩을대로 썩어가고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이 이를 방조하고 등 떠밀어 준 대가로 90년대 말 대한민국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습니다. 이 지점을 계기로 그동안 가계 경제가 적당히 따라 성장해 오는 것에 묻혀 있던 대한민국의 온갖 폐단들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낮은 임금, 기업과 고용주에게 극단적으로 유리하게 짜여진 열악한 노동환경, 투기자본으로 인한 부동산 거품, 정치/경제 세력과 손을 잡고 학문을 빙자해 장사질이나 하던 더러운 교육기관들 등등.. 기업과 정치권의 비리와 무능으로 터진 국가적 경제 위기에서 언론은 이 모든 책임을 국민들 개개인에게 전가시킵니다. 사치품과 해외여행을 너무 자주 다녔네 뭐네 하는 망발을 지껄이죠. 결국 이 뒷수습도 국민들, 부모세대들의 희생으로 메워집니다. 집집마다 금을 모으고 어쩌고 하는 미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평생 직장이라 믿고 내 가족 부양을 위해 죽자사자 헌신했던 기업에서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잉여자원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죠. 이는 자식세대에게도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지금의 청년층이 약아 빠졌다, 돈만 밝힌다, 큰 기업만 밝힌다고 비난들을 하지만 이들은 자기 아버지들이 평생토록 헌신한 기업에서 어느날 갑자기 내쫓겨난 그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자란 세대이고, 그 영향을 직접 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들은 대량으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그 빈자리는 '유연성 있는 고용' 운운하며 기업의 필요에 따라 쓰다 버리는 계약직이란 개념이 대신 자리잡게 되죠. 아비를 쫓아낸 자리에 자식들을 데려와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일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기업들은 편하게 쓰고 편하게 버릴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이 더러운 짓거리에 사교육 기관들이 부역합니다.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교육열과 비상식적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을 통해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학력수준을 자랑하고 있지만, 동시에 고학력 실업률 역시 엄청나게 높습니다. 대학을 통해 줄을 세우고 대기업들은 편하게 커트라인 끊어 청년들을 데려갑니다. 도축장을 연상시키는 이 우스꽝스러운 시스템이 정치 경제 권력자들과 유착해 견고하게 유지되어오며 청년들은 사회로 진입하기도 전에 엄청난 빚부터 떠안고 시작하게 됩니다.
IMF이후 저축을 아무리 해봤자 이자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엄청난 저축률을 자랑했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저축해봤자 소용없더라는 패배감에 절어 살고 있죠. 이는 주택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투기성 자본이 횡횡하며 부동산 거품은 점점 커지는데 주택 임대업자들에게 전세는 매리트가 없어집니다. 전세금 받아 은행에 넣어봤자 그게 돈 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으니까요. 전세라는 특이한 제도 덕분에 한국 사람들은 낮은 임금 수준에도 불구하고 살 집 마련에 숨통을 트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서히 전세가 사라져가는 흐름이죠. 다른 나라들처럼 월세가 일반적인 주택임대 제도로 정착되어버리면 대한민국의 낮은 임금 수준은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보편적 경제사정의 대다수 청년들에게 결혼이란 곧 맞벌이 각오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결정이 되었고. 맞벌이를 하더라도 자녀 양육비용, 교육비용, 주택자금, 생활자금 등등 정말로 처절한 삶의 현장이 펼쳐지게 됩니다. 위에 말했지만, 내 가족들에 대해 각자가 스스로 챙기도록 강요받고 사회가 보장해줘야 할 영역이 전혀 발전해 나가지 못했기에 자녀의 양육 부담은 철저하게 부모에게만 전가되고, 이 와중에 연로하신 가정의 어르신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됩니다.(이 어른들에 대한 사회적 보장조차도 너무나도 부족하죠) 노인층은 이렇게 가정에서 소외되고, 혹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은퇴하지 못하고 다시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며 청소년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특히나 혹독한 후진 노동환경 안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죠. 폐지를 줍는데 그거마저도 정부와 대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나라입니다. 아파트 경비를 서는데 온갖 모욕적 대우를 받다 그 억울함에 목숨을 끊어도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노인들 조차도 맞벌이 나간 자식세대 뒷바라지에 허리가 휩니다.
이러니 청년들은 결혼을 안하고, 이러니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가속되고, 노동인구가 줄어드니 노년층에 대한 복지도 더 줄어듭니다. 국민연금도 언제 어떻게 빵꾸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본인들이 훗날 받을지 못받을지 확신도 안서는 연금을 내며 노년층을 먹여살립니다. 은퇴 이후 사회의 원로로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들을 이끌어줘야 할 노년층은 여태껏 가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으나 지독한 노동에서 놓이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힘겨운 싸움중입니다. 청년들은 미래도 현재도 없는 막막한 삶을 살면서 과거 '미래에 대한 꿈'을 그나마 가지고 살았던 부모와 선배 세대에 대한 시기와 증오, 원망을 키워갑니다.
자,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부모세대의 삶의 목표였던 "내 자식은 이렇게 지독한 삶 겪지 않게 하겠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는 이루어 졌습니까?
물론 그때보다야 낫긴 합니다. 풀뿌리 하나도 먹을게 없어서 고생했던 그 시절, 그나마 지금 형식적으로라도 지켜지는 노동법 조차 있으나마나했던 독재치하 그 시절과 지금의 시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가지고 과연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부모세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걸 가지고 부모세대의 탓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부모세대 개개인은 자기 가족을 살리겠다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했듯 숭고한 동기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들였다고 해도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사회 전체로는 실패를 낳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세대의 삶의 목표였던 '나보다 더 나은 자식세대의 삶' 역시 아직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걸 실패라고 말하는 겁니다.
누구 탓을 하고 누구 책임을 물고 그때 그게 옳았네 그르네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결과'에 대한 현실직시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렇다면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 목적.. 자식들이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수 있게 하는 그 목적을 위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야 할 시점이란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부모세대의 삶은 오직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견디고 이겨내온 삶이었다...는 것이야 말로 부모세대에 대한 진정한 위로이자 올바른 찬사이고 젊은세대로부터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단 말입니다. 단순히 '왕년에 부모세대는 이랬었다' 하는 단발적이고 말초적인 위안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