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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20: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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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 남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쉽게 알리지 못하는 사회 풍토에 대한 풍자죠.
이 문제는 '역차별'이라기보다 기존에 존재하던 전통적 남녀차별의 한 종류라고 봅니다.
남녀 성차별은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른 성역할을 강제로 부여하는 것이죠. 여성에게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남성에게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역할을 강요합니다. 물론 이 구도에서 더 큰 피해를 보는쪽은 여성쪽이 맞습니다. 이러한 전통적 성차별주의 하에서는 '모든 여성'에게 불리한 역할을 강요하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남성 역시도 강제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짐승무리에서의 '알파수컷' 역할을 하는, 전통적 성차별주의에서 강요하는 남성상에 부합하는 소수 남성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남성들은 그러한 강요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별을 당하게 되죠.
어린 여자아이에게 '너는 여자아이니까 얌전해야지, 조신해야지'하는 것 만큼이나 남자아이에게 '남자가 울면 못써, 남자답게 용감해야지'하는 말은 매우 위험한 차별적 발언입니다. 남자들 역시 이런식으로 '남성다움'을 강요받고 자라나게 되지만, 사실 이런 전통적 성차별주의에서 남자에게 강요하는 '남자다움'을 충족하는 마초는 정말 몇 없습니다. 나머지는 좋건 싫건 억지로 그에 맞춰 자신이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야 하는거죠. 언제나 남녀 문제간에 논란이 되어온 데이트 비용 부담 문제도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많은 남성들이 데이트 비용에 있어 남자가 더 내야 하는 전통적 남녀차별주의에 고통받습니다. 솔직히 요즘같이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시대에 20대 청년들의 연애가 그리 풍족할 수가 없죠. 그러나 남성들은 자신이 돈이 없으면 안된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부담해야 한다, 라는 사회적 시각속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리곤 엉뚱하게도 그 원인을 여성탓으로 돌리곤 하죠. 그러나 이런 문제 역시 여성이 문제이거나 남성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을 그릇되게 부담지어 온 남녀차별의 악영향인 겁니다. 여성은 '여성다움'을, 남성은 '남성다움'을 가져야 한다며 모든 것을 리드하고 주도해야 한다고 남성에게 주입해온 것이 남녀 청년들 모두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런 것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이 간극이 괴로운거죠.
성폭행 피해 남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남에게 알리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도 이러한 '전통적 남녀차별주의' 때문입니다. 성폭행 피해사실만으로도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데, 여기에 더해 자신의 '(전통적 기준하에서의) 남성다움'이 훼손당했다는 공포, 그것이 남들에게 알려질 것에 대한 공포까지 떠안아야 하니까요.
전통적 남녀차별주의 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불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남성들 역시 그러한 차별주의에 의해 강박과 강요를 당하고 있습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자다워야'한다는 강박과, 그러지 못하면 어쩌나, 다른 남성에게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 속에 살고 있는 것이죠.
이런 남녀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이성들의 탓이 아니라 잘못된 구조와 시스템 탓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남혐 여혐 갈라서서 서로를 욕해봤자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가, 남성과 여성들 모두가 좋건 싫건 머릿속에 그런 차별적 구조를 끊임없이 강요받고 세뇌 당하며 살아온 피해자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잠시만 이성적 판단을 놓으면 나도 모르게 그런 정해진 성역할을 따라가려 드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단 것이죠. 물론 이것도 본인의 잘못은 아닙니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계속 교육받아온 결과니까요. 남녀차별과 싸우면서 가장 괴롭고 힘들고 끝이 없어보이는 싸움이 바로 나 자신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세뇌되어진 차별주의를 찾아내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너무나 강력하게 세뇌당한 것이라 아마 죽을때까지 싸워도 이겨내지 못할 답이 없는 싸움이지만 이렇게 조금이라도 고치려 노력하며 우리 자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 평등주의를 가르친다면 몇세대 지나고 나서는 어떠한 진보를 이뤄낼 수 있겠죠.
내가 누리기 위해 싸우는게 아니라 몇세대 이후의 우리 자손들을 위해 싸워나간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싸워나가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