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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8 22: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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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전혀 다른 성격의 여러 책들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겁니다. 신화도 있고 설화도 있고 교훈 모음집도 있으며 시와 노래를 모은 것도 있고 편지 모음도 있죠. 그리고 그 안에는 역사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책들을 하나로 묶은 기준은 종교적 기준에 의해 선택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안의 모든 책들이 다 종교 경전이라 보시면 안돼요.
종교적 예언서, 종교적 교리서, 신화, 시집, 교훈집, 설화, 편지 등등은 역사적 사료로서 기능합니다. 구약시대 중동지방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 사료이고 신약시대 로마의 식민지배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료이죠. 그러나 성경 안의 여러 책들 중에는 진짜 역사서로 쓰여진 책들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사료가 아니라 역사서요.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 등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진짜 역사서입니다. 물론 이 안에도 종교적인 내용, 신화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있죠. 그러나 이쯤 오래된 역사서에 그정도 신화적 내용이 포함된 것은 흔한 일입니다. 글쓴분이 본문에 말한 것 처럼 우리네 고대 역사에도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 먹다가 곰이 사람이 되어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과 결혼했다는 내용도 있고, 알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듯이 말이죠. 단순히 신화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게 역사서가 아닌게 되는건 아니란 겁니다.
열왕기를 예로 들면, 이건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에 관한 역사서입니다. 초대 사울왕 이후 다윗왕이 새로운 왕가를 열고 솔로몬왕이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끈 후에 암군들이 나타나 나라가 둘로 쪼개지죠. 열왕기는 다윗왕 말기~솔로몬왕 시기부터 이후의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왕 사후 쪼개진 이스라엘 민족의 두 나라, 이스라엘과 유다는 주변 여러 나라들과 동맹을 맺기도 하고 전쟁을 벌이기도 하며 오래도록 지속됩니다.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만의 역사서라고 폄하할 것도 못되는 게, 이렇게 이스라엘이 주변 여러나라들과 우호/적대 관계를 맺은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에 그 시기 중동 역사에 관한 중요한 사서로 기능하는 것이죠. 이 시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동맹을 맺으며 이집트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왕도 있었고, 아람 왕과 몇대에 걸친 전쟁으로 서로 큰 피해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경에 따르면 전쟁에 패배했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을 안 들어 그렇다'고 적혀 있고, 승리했을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기게 해줬다'고 적혀 있지만 그 말그대로의 종교적 해석을 걷어내고 보면 당시 중동지방 각 나라와 민족, 족속들 간의 흥망성쇠를 짐작할 수 있죠.
성경 안에는 진짜 신화나 종교 교리를 적어둔 경전들도 있지만 성경은 온갖 다른 성격의 책들을 하나로 묶은 겁니다. 그 안에는 진짜 역사서도 있어요. 역사서가 아닌 다른 종류의 책들 역시 사료로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구요. 특정 종교의 경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허황된 내용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성경은 '종교 경전을 역사서라고 우기는 케아스'가 아닙니다. '역사서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책들을 교리서와 함께 묶어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