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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 0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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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비공하신 분,
제가 바로 디워 재미없으며 엉터리 영화라고 깠던 사람 중 한명이고,
스크린쿼터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반대 많이 먹었던 한명이고,
노무현 전대통령 임기중에도 임기후에도 여러모로 많이 비판했던 사람 중 한명입니다.
(여기에 대해 한마디 첨언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이 틀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저와는 정치적 노선이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FTA때도 열렬히 반대했고, 이라크 파병때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안된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같은 '민주'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지만 한참 좌측 끝에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노무현이 '진보'의 이름을 다 대표하는 게 못마땅해 그에 대한 비판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치적 노선이 다르지만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표를 던져 정치적 동맹을 맺은 입장으로써 내 지분을 행사하는 정당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노무현과 그 정권에 대한 비판 역시 그들이 틀렸다기보다는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을 전제에 깔아둔 비판이었죠.
이와는 별개로 인간적으로는 그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민주라는 큰 틀과 원칙은 훌륭하게 지켜낸 사람이니까요. 그러기에 마지막에 그가 비리 의혹에 휩싸였을때 저 또한 충격과 실망에 냉소와 비난을 보내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 신념을 지키려 했죠..
지금에 와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틀린 길을 걸은 것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의 정권에서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억울하게 정치적 희생을 당한 고인에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잘하고 좀 못하고 이런 문제들은 이미 고인이 된 이에게 굳이 따져 물을 정도로 큰 잘못은 아닐테니까요.
다만 한가지, 인간 노무현 개인에 대한 호감과 평가와는 별개로 노무현 정권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정권이 5년간 이뤄낸 건전한 실패와 성공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라고 생각해요. 향후 대한민국이 더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돌아보고 참고하고 반성하며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그 스스로 임기 중에도, 임기 후에도 그 역할을 자청한 인물이죠. 이명박이 노무현을 정적으로 삼아 치졸하고 비열하게 정치적 살해를 한 것에 더더욱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노무현의 그 억울한 죽음은 저에게도, 그의 지지자들에게도, 그를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엄청난 충격과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명박의 그 비열하고 치졸한 행각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양이 많은 정치 메뉴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유품이 되어버렸기에 그걸 바라보는 우리 심정은 객관적이고 냉철한 이성보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에 먼저 휩싸이게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더이상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좋고 푸근한 옆집 아저씨가 억울하고도 충격적인 죽음을 맞았는데, 그 아저씨네 감나무가 우리집 창문을 깨먹었네 아니네 이런게 더이상 논의할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잖을까요? 죽어서도 영원히 비난받아야 할 독재자들과는 전혀 다른 경우죠. 사족이 길어졌습니다만, 제가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더이상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들로 오유에서 반대 잔뜩 받아 봤습니다.
언젠가의 선거에선 노회찬이었나 심상정이었나..민주당이랑 후보 단일화 안해준다고 욕 엄청나게 먹을때 그 양반들 쉴드치다가 반대 실컷 먹었어요. 반대로 모두가 찬성하던 진보 대통합때는 노심조 이 양반들 구 민노당 찌꺼기들이랑 다시 손잡는거 보고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구요.
그런 저, 사라진거 아닙니다.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오유의 대세 여론과 많이 어긋나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굽히고 '그런가? 저게 맞나?'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래도 내가 틀렸다고 생각 안해' 고집 부리기도 했지만, 나랑 오유 대세 여론이 다르다고 해서 오유가 틀렸네 내가 틀렸네 그리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반대(지금은 비공) 많이 받으면 마음에 상처는 받겠지만 그냥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하고 끝인거죠.
저도 언제나 제가 옳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옳을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잘못 생각할 수도 있죠. 오유 유저 개개인들도 다 그럴겁니다. 그런 의견들이 모이고 모여 형성하는 대세 여론이란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 생각한다는 대세여론이라고 해서 매번 옳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매번 틀리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대세 여론이란 것도 시시각각 변화해요. 때로는 아침의 오유와 점심의 오유와 밤, 새벽의 오유가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대세 여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오유가 늘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좀 잘못된 곳으로 치우치거나 너무 감정적으로 과격해지거나 하는 일도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유가 무슨 아주 맛이 갔다거나 잘못됐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늘 그랬듯 이리저리 출렁출렁 요동치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콜로세움을 열어 치고받고 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다시 제자리를 찾을거라 생각합니다. 오유는 늘 변하고, 때로는 가끔씩 어디가 올바른 길인지 찾지 못해 안개속을 헤매이는 경우가 생기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올바른 길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마음'만은 강렬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 요동치는 과정이 너무 과격해서 그 도중에 상처받는 이도 생기고 떠나가는 이도 생기는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서 오유에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다들 배려와 언어순화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커뮤니티에서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어쨌거나 상처를 입건 사고가 터지건 그 폭풍의 과정을 거쳐 오유가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모두의 의지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