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2015-08-22 14:25:41
20
외교라는건 말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대화를 해서 어떻게든 이익을 뽑아내야 하는' 게 외교입니다.
북한만 뭐 특별히 말 안통하는 미친놈이 아니에요. 중국은 대놓고 한국 무시하고 자기네 이권 챙기려는 놈들입니다. 동북공정이 대표적 예이고, 일본이랑 자원 외교 전쟁 벌이는거 보세요. 이권 물리면 누굴 상대로 하건 안하무인인 놈들입니다. 그럼 그런 중국놈들 기분나쁘다고 아예 싹 무시하고 상대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무력으로 으름장이라도 놓아야 하나요? 아니죠. 요즘 시대에 중국과 어떤 방식으로건 교류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됐으니까요. 그럼 때로는 좀 아니꼽고 불만이 있더라도 그런 감정은 접어놓고, 최대한 그 속에서 실리를 찾아낼 수 있게끔 물밑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이게 외교입니다.
미국은 뭐 다른줄 아세요? 우방이네 동맹이네 허울은 좋지만 미국도 철저하게 자기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땅에서 탄저균 실험하는거 보세요. 우방은 개뿔이. 이거에 대해 강경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받고 대신 다른 이익 뜯어내야 하는게 외교전쟁입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냥 슬그머니 넘어가버렸죠. 미국이 요즘 미쳐 날뛰는 일본 방치하고 오히려 뒤 봐주는거 보세요. 왜 그럴까요? 조지 부시가 망가뜨려놓은 미국은 스스로의 회복에 여념이 없어 일본을 어찌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참에 아예 떠오르는 중국 견제용으로 일본을 선택해 슬쩍 뒤를 밀어주기로 한거죠.
미국은 뭐 일본 극우가 정상인이라 생각해서 대화도 해주고 밀어도 주는 걸까요? 꼴같잖은 놈들이 진주만 습격해서 9/11 이전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기습공격을 입히고는 몇년간 치열하게 전쟁 벌였던 상대가 바로 일본 극우인데? 그거 다 자기네 이익 때문에 그런겁니다. 이익을 위해서는 미친놈들이랑 대화하는 척도 해주고 얼르고 달래는 척이라도 하는겁니다. 이런 비정한 바닥이 외교바닥이에요.
우리가 북한 달래서 얻는게 뭐냐구요? 평화요. 무슨 수를 써서든 지켜야 하는게 평화인겁니다. 때론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쁠때도 있더라도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절대 가치입니다.
그럼 뭐 우리는 북한이 도발하고 까불때 그냥 호구처럼 맞아줘야 하는거냐, 그건 아니죠. 그러나 호구잡히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한국은 북한한테 일단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어요. 동네에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명예도 없이 잃을것 하나 없는 미친 건달 한놈이랑 풍족한 재산에 화목한 가족에 명망이 높은 자산가가 같이 산다고 해보세요. 건달놈이 자꾸 자산가한테 시비건다고 이 둘이 길바닥에서 옷찢어가며 투닥투닥 주먹다툼하는 꼴이 나면 누가 더 손해일까요? 남들 보기에 누굴 더 이상하게 볼까요? 물론 건달놈이 아예 자산가나 그 가족의 목숨을 노리고 칼들고 달려든다면 자산가 역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목숨을 걸고선 자신과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생결단 싸움을 해야 겠지만, 건달이 그냥 주둥이로 욕이나 하고 툭툭 치는 수준의 시비를 거는 거라면 때로는 무시하거나 때로는 그냥 그정도에 걸맞는 대응만 하면 되는 겁니다. 뺨맞은게 억울하다고 칼 뽑아들고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건 미친 짓일 뿐이에요. 가진게 많은 사람은 잃을게 많은 것이고, 서로의 가진것을 모두 올인해 걸어야 하는 도박판에서 더 불리한 입장인게 당연한 일입니다. 전쟁이란 그런거에요. 10원 가진놈이랑, 10억 가진 사람이 서로의 전재산을 몰빵해 올인해 놓고 벌이는 도박판인 겁니다. 10원 가진놈이 덤비면 10원어치만 상대해주면 되는거지, '저놈 올인 했으니 나도 10억 올인!'하는 이 꼬락서니가 바로 전쟁인거에요.
그럼 북한의 도발질에 대해 우리가 해줘야 할 정당한 수준의 대응은 무엇이냐, 그건 일차적으로는 적이 도발해오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반격해주는 겁니다. 연평해전 처럼요. 북한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아요. 김정일, 김정은이 도발을 해오는건 그런 국지적 도발로 모종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전면전을 하려고 하는게 아니에요. 전쟁나면 인민 고혈 빨면서 등따숩고 배부르게 잘 사는 자기네 그 삶이 끝장난다는걸 모를리 없습니다. 얘네는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악독하고 욕심많은 교활한 독재자일 뿐이지 무슨 대남 적화통일의 거창한 이념에 목숨거는 사상범이 아니에요. 자기네 일가, 자기네 정권의 (지금처럼의) 풍족하고 사치스런 삶 유지가 최우선 목표인 놈들이에요. 전쟁해서 한국에게 이길수 있을리가 없다는걸 모르지도 않고, 설령 이긴다 해도 여태까지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며 잘먹고 잘 살아온 5천만 인구를 배 쫄쫄 굶으며 살아온 2천만 인구 가지고 지배할 수 있을거라 착각하지도 않을거에요. 결국 걔네가 원하는건 전면전이 아니라 그냥 국지 도발로 자기네 내부 불만 세력 잠재우거나, 그냥 간보는 거나, 그걸로 뭔가 이익을 챙기는게 있으니 하는거 뿐입니다. 우리 영해에 배 침범시켜 총 쏘고, 우리 영토에 포 쏘고 하는 국지도발에 대해 우리가 발끈해서는 전투기 띄우고 다른 부대 줄줄이 북상시켜 판을 키워버리다간 둘다 원치도 않는 전면전으로의 확전이 일어날 위험이 큽니다. 그러기에 가용 가능한 최소한의 자원을 가지고 그 타이밍 즉시 반격해 격퇴해야 하는 것이고, 이걸 위해 항시 정보력을 갖추고 북을 주시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그런다 해도 언제나 항시 적의 공격을 바로 알아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로 반격 가능한 상황이 나지도 않기는 합니다. 그러기에, 일단은 적이 도발을 함부로 하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것 역시 필요하죠.
햇볕정책을 무의미한 퍼주기라고 착각하는 분들 자꾸 계시는데, 그 성과는 둘째치더라도 목표와 철학는 분명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평화를 위한 호구잡히기, 퍼주기 정책이 아니라 얻고자 하는 실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정책이구요.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에 강경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습니다. 전쟁을 우리가 먼저 일으키는 짓은 미친 짓이고, 전쟁 위험만 높이더라도 위험천만한 짓거리니까요. 우리가 자존심 상한다고 전쟁 운운하고 한반도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면 제일 먼저 외국인 투자자들 돈이 한국땅에서 빠져나갑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전쟁나면 겨우 자기네 목숨 외엔 잃을게 없는 북한이랑 우리 한국은 상황이 달라요. 가진게 많아서 잃을것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무력으로 북한에게 강경대응 하는 것은 쓸 수 없는 카드입니다. 겨우 적이 공격해오는 그 상황, 그 타이밍에 즉시 반격해 물리치는 수세적 대응 외엔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지금처럼 적의 도발을 유도하는 짓거리는 진짜 미친 짓거리에요. 그럼 우리가 북한에게 강경하게 대응할 카드가 뭐가 있을까요? 햇볕정책은 바로, 지금 당장은 대북 강경 카드가 우리 손에 없지만 향후 그것을 우리 손으로 가져오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우려는 정책이었습니다.
외교전에서 상대에게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중 하나, 혹은 둘 다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무서워 하는 것, 상대가 간절히 바라는 것, 이 두가지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와 평화 속 번영입니다. 우리가 무서워 하는 것은 이 평화가 깨어지는 것이죠. 이 두가지는 모두 북한 손에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죠. 우리를 호시탐탐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주적이니까요. 북한이 원하는 것은 경제제재 해제입니다. 북한이 무서워 하는 것은 자기네 정권(정확히는 김뽀글 일가)의 안위가 위협받는 거죠. 대북 경제제재의 주체가 누구던가요? 미국입니다. 북한을 직접 공격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은 또 누구죠? 미국입니다. 우리땅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니만큼 우리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뭐 어떻게 못합니다만은(자살행위니까요) 미국은 다릅니다. 남의 땅에서 벌이는 전쟁이기에 러시아-중국의 눈치만 안봐도 된다면, 그리고 이익이 충분하다는 계산만 선다면 얼마든지 때려버릴수 있는게 미국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것, 무서워 하는 것은 북한 손에 있는데, 북한이 원하고 무서워 하는 것은 둘 다 미국 손에 있어요. 북한이 툭하면 무력 도발로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는, 북한에게 한국은 그냥 중요하지 않은 나라에요. 괴롭혀도 딱히 자기네가 손해 볼 거 없거든요. 그러니 툭하면 자기네 내부 사정때문에 우리를 괴롭히고, 세상 사람들아(특히 미국이랑 일본아) 나 좀 봐주라 관심병 도지면 우리 괴롭히고, 자기네 정권 자식새끼한테 물려줄때 되니까 기념으로 우리 괴롭히고 이 ㅈㄹ을 하는 겁니다. 한국이 무섭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상대니까요.
사실 국제사회에서 대북문제에 대한 명분상의 권리는 우리 손에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멋대로 갈라놓은 분단국가에, 그로 인해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은 피해당사자니까요. 근데 실리는 우리 손에 없단게 문제에요. 햇볕정책은 바로 이 국제사회 속에서의 대북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 손으로 가져오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이걸 위해선 북한이랑 꾸준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해요. 북한이 좋은것만 받아 챙기고 뒤로 우리 뒷통수를 때리건 뭘하건 우리쪽에선 일단 계속 손을 내미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제사회에 말할 명분이 서요. '봐라 북한 문제는 한국이 제 1 당사자다. 니들 다 북한 문제 다룰때 내 눈치 봐야 하는거 알지?' 이거 내세우려면 북한에 꾸준히 지원도 하고 대화요청도 하고 손 내밀어야 해요. 이런거 없이 명분만 내세워봤자 소용없어요. 중국이 '뭐래 병신이? 내가 북한한테 투자중인 돈이랑 밥이 얼만데'하면 데꿀멍해야 할 판이니까요. 그러기에 국제사회에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는 정상인이다, 우리는 북한한테 이렇게 지원도 한다, 우리는 꾸준히 북한한테 대화 요청한다,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권때 미국의 부시 정권이랑 대북 정책에 대해 어긋나는 모습을 간간히 보여줬는데요. 이게 매우 중요한 겁니다. 부시가 강경! 했을때 노무현이 온건! 해버리고. 부시가 온건! 하면 노무현이 강경! 이런식으로 나가면,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는건 미국이지만 그 미국이 대북문제 처리할때 무조건 한국 눈치 봐야 하는거다"라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대북 문제의 주도권을 우리 손으로 가져오려는 거죠. 이렇게 되면 북한이 지금처럼 한국을 호구로 볼 수가 없게 됩니다. 지금처럼 툭하면 괴롭히는 짓거리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국제정세라는게 우리 생각대로만 흘러가지도 않는 거고,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이라거나 북핵문제(사실 이거 햇볕정책이랑 상관없어요. 북핵개발은 북한이 위에 말한 대로 자신의 목줄을 쥔 미국의 손에서 벗어나겠다고 발악질 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미친짓거립니다. 햇볕정책이 한국이 북한에게 호구잡힌 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해 행한 정책이었다면 북핵은 북한이 미국과 다른 강대국들 보라고 저지른 짓인거죠. 별개의 사안인데 두 정책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것 뿐입니다) 등등으로 햇볕정책의 성과 그 자체가 원하던 만큼은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최소한 이명박근혜 정권의 철학도 방향도 없는 갈팡질팡 대북정책, 손에 쥐지도 못한 강경책 카드를 가지고 국민들 상대로 뻥카 블러핑이나 치던 사기질에 비교해가며 폄하당할 정책은 아니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