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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5 14: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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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퇴근하고 나면 소비자가 됩니다. 우습게도 이 단순한 진리를 대한민국 기업들은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 외면하고 있어요.
기업들이 죽자사자 물건 만들고 팔아봤자 소비자들이 돈 없고 시간 없으면 사 줄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노동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하고, 정해진 만큼만 일을 시킨 후 퇴근해서 각자의 여가를 누릴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그 노동자들이 소비자로 변신해주질 못합니다. 그럼 결국 내수 시장이 굴러갈 수가 없죠. 소비자들이 돈을 쓰고 싶어도 돈 쓸 시간도, 쓸 돈도 없으니까요. 하루 8시간 노동자로 일하고, 8시간 꿈나라 주민으로 잠자고, 남은 8시간은 소비자로 자기 인생 즐기며 살게끔 해줘야 합니다. 불법적으로 꼼수를 써서 12시간씩 붙잡아 놓고 일 부려먹으면 돈 쓸 시간도 없을 뿐더러 지쳐서 그만큼 더 많은 휴식시간을 필요로 하죠. 자거나 지쳐서 의욕없이 멍하니 뻗어 있거나 하는 식으로요. 심지어 이렇게 부려먹으면서 돈은 8시간어치만 계산해서 줘요.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짠 임금 기준으로요. 그럼 소비자가 시장에서 소비를 할 방법이 없죠. 그러니까 내수시장이 개판이 되는겁니다.
정상적인 시장구조라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처럼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들이 노동자나 협력업체들에게 그만큼 정당하게 많이 나눠줘야 합니다. 협력업체 역시 그렇게 정당한 대가를 풍족히 받게 되면 그 돈을 다시 자기네 노동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이구요. 이렇게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고, 노동시간 역시 합리적이고도 적법한 시간을 지켜 일할 수 있게 되면 남은 시간은 자기 계발과 여가를 위해 소비하게 됩니다. 이들이 시장에 나와 쓰는 돈이 자영업자들에게 흘러가거나 기업들에게 되돌아가죠. 자영업자가 사는 원자재값은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는 몫이구요. 이렇게 순환이 되어야 하는게 정상적인 자본주의 시장인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장은 어떤가요? 일단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오너 일가가 잔뜩 쳐먹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은 몫중 대다수를 다시 임원진들이 쳐먹죠. 그리곤 남은 돈을 노동자들에게 심각히 짜디 짠 비율로 나눠줍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을 낮도 밤도 없이 회사에 묶어두고 부려먹죠. 협력업체, 하청업체에게도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습니다. 살벌한 가격경쟁을 유도해 말도 안되는 일정으로 말도 안되는 대가를 지불합니다. 하청업체들은 그거라도 먹고 살아야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수주하죠. 그러고나면 그 업체의 노동자들은 다시 지옥을 맛봅니다. 박봉에 비해 말도 안되는 수준의 고강도 노동을 강요받죠. 늙은 꼰대들이 '요즘 젊은 애들 눈만 높아서 대기업만 찾는다'라는데, 그나마 지옥같은 노동강도에 비해 대기업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겁니다. 모든걸 대기업 배불리는데만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 덕분에 중소기업 대부분이 대기업 하청으로 살아가는데, 거기 가면 일은 일대로 하면서 받는건 훨씬 적어요. 그럼 미래를 꿈꾸기는 커녕 현재도 퍽퍽해서 살기 힘든게 현실입니다. 배가 부른게 아니라 살고 싶으니까 그러는거에요. 여튼 이렇게 대기업이 돈줄을 쥐고 풀지를 않으니까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도, 중소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도 돈은 돈대로 부족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없는 상황이 되죠. 그럼 이 사람들이 퇴근 후 소비자로 변신할 틈이 없어요. 노동자들이 퇴근후에 돈을 쓰며 풍족한 여가를 누려줘야 자영업자들도 먹고 살 수가 있는데 그러질 못하니 자영업 지옥이 펼쳐지죠. 자영업자들 전체에게 흘러들어오는 돈은 한정된 판인데 자영업자 수는 계속 늘어납니다. 왜냐구요? 대기업과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지 멋대로 해쳐먹다가 일으킨 IMF이후 고용을 유연하게 해야 하네 어쩌네 뻘소리 하면서 그 모든 책임과 해결을 노동자 몫으로 떠넘겼거든요. 평생직장 따위 사라진 옛말이 된지 오래입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환경(그나마도 해고 더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어용노조와 더러운 사기꾼놈들이 얼마전 강행처리 해버렸죠)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대충 쓰다 내버리는 노동환경 덕분에 실업의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자영업으로 전환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심지어 대기업이 골목길 상권까지 탐내면서 밀고 들어와 자영업자는 그야말로 3고에 시달리고 있죠.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는 커녕 시장에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 상황+불안정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자영업 전환하는 노동자 수가 늘어 경쟁은 더 치열해짐+심지어 대기업놈들이 이 작은 밥그릇까지 빼앗겠다고 양심도 없이 쳐밀고 들어옴. 한정된 파이, 아니 점점 더 작아져가는 파이를 두고 경쟁자는 점점 늘어가는데 웬 노양심 강철면상 거인새끼가 그마저도 빼앗겠다고 들어오는 판국이에요.
지금 대한민국 경제가 개판인 이유, 그리고 점점 더 개판 소판 말판 쥐판 닭판으로 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수가 적어서 내수 시장이 수지타산이 안맞네 뭐네 하는 소리도 있지만, 인구 수나 시장 크기를 따질 판국이 아니에요. 지금 있는 시장조차도 말려죽여가고 있으니까요. 이걸 바로잡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게 딱 3가지 입니다. 대기업 규제+노동자 위주로 노동환경 개혁+경제 사범에 대한 관용없는 철퇴 이 셋이요.
대기업이 죽자사자 경쟁력 높이려 노력하지 않고 나태하게 굴면(예를 들면 H모기업의 10조짜리 땅투기질 같은..) 그만큼의 패널티를 먹여야 합니다. 또한 대기업이 골목상권 함부로 위협하지 못하게 규제해야 하며, 하청업체 쥐어짜는 짓 못하게 막아야죠. 중소기업들이 경쟁력 갖추면 언제건 대기업을 위협할 수 있게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남의 특허 깔아뭉개기 식으로 잡아먹는 짓거리도 못하게 해야죠. 그런짓 했다가는 어마어마한 벌금과 보상을 하도록 바꿔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하고,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끔 보장해줘야 하며, 정해진 노동시간을 철저히 지키게끔 해야합니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돈과 시간을 가지고 시장 안에서 소비자 역할을 제대로 해 줄 수가 있어요.
경제사범들에 대해서는 절대 관용을 베풀면 안됩니다. 횡령하고 탈세한 대기업 총수들, 뇌물 주고 받은 정치인들, 공무원들 그 죄질에 맞게 매우 가혹한 처벌을 하고 절대로 사면해서는 안됩니다. 나라 경제 전체를 흔든 극악무도한 범죄자에요. 이들을 풀어주며 경제를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성범죄자를 사면해주면서 앞으로 사회의 올바른 성문화 정착을 위해 힘써달라고 하는거랑 똑같은 소리입니다. 부정과 비리와 횡령과 탈세를 밥먹듯 저지르는 재벌 총수들 덕에, 위에 말한 자연스러운 순환을 해야 할 돈이 그러지 못하고 극소수 범죄자들 금고 속으로 쌓이게 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경고 해왔음에도) 이러한 방향과 정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 남발과 규제 철폐, 본인 입으로 절대 하지 않겠다던 경제인(말은 바로해야지 이건 경제사범이죠, 경제인이 아니라 경제금수 경제축생이 어울릴 인간들입니다) 특별사면, 그리고 이제는 노동환경 개악까지 아주 막장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내수경기는 점점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걸 살릴 정책방향과는 정확히 정반대로 폭주하고 있어요.
무슨일이 있어도 (이미 지금도 개판인) 노동환경이 지금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는것을 야권이 목숨걸고 막아야 할 판국인데, 몇몇 정신나간 새민련 쓰레기놈들이 노동법 개악 막겠다고 나서면 내년 총선 진다는둥 헛소리를 해서 혈압오르던 참인데 그나마 제정신 박힌 정치인이 새민련 안에 하나라도 있어 다행이네요. 노동환경 개선은 파이를 나누는게 아닙니다. 파이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더 크게 키우기 위한 기본 전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