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8
2015-12-07 18:50:03
124
육아와 교육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인데 후진 사회는 그걸 개인에게 모두 떠넘기죠.
'아니 왜 각자의 애새끼 키우는걸 사회한테 떠넘겨?!'하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는데, 사회/경제 구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포기하는게 출산과 육아입니다. 사람은 물고기나 곤충이 아닙니다. 자손 번식을 그냥 알만 잔뜩 까놓으면 새끼들이 알아서 알깨고 나와 생존본능만으로 살아남는 그런 동물들이라면 자기 생존에 위기가 느껴질때 그냥 알을 잔뜩 낳아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은 죽더라도 자손들이라도 살아남게끔요. 그러나 사람은 그보다 훨씬 고등동물에 속합니다. 갓 태어난 인간 아기는 선천적 본능에 따라 알아서 살아가는 그런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사람 정도 되는 고등 동물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보다 후천적으로 부모세대에게 교육받아 습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이란 동물은 저렴한 능력의 자손을 다수 낳아 퍼뜨려 방치해서 그 중 일부가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그런 동물이 아니에요. 소수의 자손을 남기고 그 자손들의 육아/교육에 부모가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 고등동물로 키워내는 전략을 취한 그런 동물이죠. 이런 동물의 특징은 생존의 위기가 닥쳤을때 오히려 자손을 낳지 않습니다. 출산/육아/교육에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출산 자체를 포기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낳는다고 해도 자식은 자식대로 스스로 살아남는게 불가능한데 부모의 생존에 훨씬 더 큰 불리함과 부담만 안게 되기 때문이죠. 본인의 생존도 불확실하다는 판단인데 자식 낳으면 본인도 더 취약해지고 자식의 생존은 더 말할 것도 없죠. 혼자도 죽을 위기인데 둘이서 더 잘 죽게 생긴 꼴이 되는겁니다.
결국 본인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사람은 출산을 먼저 포기합니다. 그럼 이 개인에게 어떤 악영향이 있을까요? 자기 자손을 남기지 못한다는 점이 있겠네요. 노후 보장도 어렵고요. 근데 어차피 자식 낳는걸 포기할 정도로 본인 생존 걱정을 해야 할 판국이면 자식을 낳건 안 낳건 노후 보장 불확실한건 똑같습니다. 그러니 이건 제하고 봅시다. 자손 번식의 기초적인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만 남네요. 네, 개인이 출산을 포기하면 이거 외엔 딱히 단점이랄게 없습니다. 물론 이게 크긴 하지만, 일단 본인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기타 성욕/식욕 등등의 개인적 욕구도 충족받지 못하는데 겨우 저런 본능 하나 포기한다고 뭐 딱히 더 큰 타격은 없겠죠.
그러나 출산률이 떨어지면 그 개개인이 속한 사회는 직격탄을 맞습니다. 그 사회의 미래가 없어져요. 개인은 그냥 결혼도 출산도 안하고 방구석에 있다 혼자 죽어도 뭐 개인의 불행으로 끝이겠지만, 그런 개개인이 늘어나면 사회는 더이상 유지될 수가 없어요. 그럼 제일 똥줄 타는건 그 사회 시스템에서 누릴거 다 누리고 사는 기득권층이죠. 자기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줘야 할 노예 인구가 줄어들어 부의 원천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테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저출산 시대가 오면 죽자사자 출산률 높이려고 애를 씁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게 딱 그렇죠.
그러나 출산률을 높이려면 사회가 먼저 나서서 육아 부담을 온전히 책임져줘야 합니다. 본문 글에 잘 나와 있듯이, 노동환경 개선 없이는 이게 불가능해요. 불안정한 노동환경이 제일 첫번째입니다. 육아에는 장기적으로 막대한 금액이 들어갑니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입 보장이 있지 않으면, 처음에야 뭐 애들 분유값은 잘 대줬는데 10년 20년 뒤 학비를 감당 못해 육아/교육 실패 하는 꼴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걸 지금 젊은 세대가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죠. 미친 등록금 부담 때문에 부모세대가 노후 대비해 모아둔 금액이 탈탈 털리게 됩니다. 이건 결국 부모세대의 노후 대비를 자식세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에 부모/자식 모두가 미래의 자산을 당겨 지금 미리 쓴 '빚'을 짊어진 격입니다. 좀 더 단기적 빚을 지는 경우도 많죠. 학자금 대출입니다. 대출을 받건, 부모의 노후자금을 끌어쓰건, 방학때마다 푼돈 알바로 죽자사자 모아 내건 이들은 '육아/교육이 개개인에게 모두 전가되어 있는 사회에서 그나마도 그걸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끔 경제력을 제공해주지도 않는 잘못된 시스템'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들이 당장 20여년 뒤에 자기 자식이랑 나란히 손 잡고 공멸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출산/육아를 차라리 포기해버리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안정적 직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그러나 평생직장이네, 뼈를 묻을 각오로 충성할 직장이네 하는 뻘소리는 IMF와 함께 저멀리 은하계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무슨 고용 유연성 어쩌고 개소리가 판치며 회사에 충성해봤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살아야 하죠. 평생직장이라던 곳에서 하루 아침에 폐물 취급받으며 한강 다리 난간 끝으로 내 몰린 아버지 세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게 지금 젊은 세대입니다. 또한 그놈의 비정규직 계약직 파견근무에 하루살이 인생 살고 있는게 이들의 현실이구요. 이들이 아이를 낳으면, 당장의 분유값도 문제지만 20년 뒤 아이들 학비로 막대한 금액의 돈이 지출되어야 할때 이들에게 안정된 수익이 있으리란 보장이 있나요? 지금도 안정적이지 못한데요.
또한 임금 문제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빨아먹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분배해주지는 않죠. 높으신 자리의 몇몇 양반들끼리 돈잔치하고 넘어갑니다. 심지어 경기가 안좋네 어쩌네 하면서 기업의 미래를 위한 기술 연구 개발에 쓸 돈 까지 자신들이 착복하며 웅크리고 있어요. 안정적이지 못하려면 수익이라도 커야하는데 하이 리스크에 로우 리턴인 희안한 노동구조이니 노동자들이 장래의 아이들 교육비는 커냥 당장 눈앞의 분유값에도 허덕이는 꼴입니다. 이런데 누가 애를 쉽게 낳아요??
부당노동행위, 야근 특근 주말 근무 이런것에 대한 단속도 거의 없다시피한게 문제입니다. 돈도 적은데 집에도 못가게 막아요. 자기 생활이 전혀 없어요. 아직도 무슨 산업화 시절 가정도 개인 삶도 다 뿌리치고 회사에 모든것을 바쳐 충성하라는 쌍팔년도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충성은 니미, 그땐 그러면 평생직장을 보장해주기라도 했죠. 지금은 쓰다가 필요없어지면 언제건 내칠거면서 내 삶 다 바쳐 충성하래요. 양심이 없어요 양심이 개새끼들이. 육아에는 돈도 들지만 시간과 노력도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돈도 안주면서 시간도 안줘요. 인간 아기들은 무슨 금붕어 새끼나 곤충 새끼가 아니에요. 그냥 혼자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먹고 헤엄 뽈뽈치고 잘 살아 있는 그런 동물이 아니라고요. 10분만 눈을 떼도 생존에 커다란 타격을 입는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근데 부모로 하여금 이들을 돌봐줄 시간도 안 주고, 교육할 시간도 안 주고, 그럼 그걸 대체해 줄 공동육아 시스템 제공도 안해주고, 알아서 대체 수단을 찾으라고 하면서 거기 들어가는 막대한 돈도 책임 안져요. 그러면서 애 낳으래요. 안 낳으면 사회의 미래(정확히는 사회 기득권층의 미래)가 어두워진다고. 하다하다 사람들이 콧방귀 끼고 안 들어주니까 이제 애 안낳으면 패널티까지 주겠다네요. 미친거죠 이건.
노동환경 개선해서 불법 노동행위 강요하는 것에 철퇴를 휘두르고, 비정규직/계약직 꼼수 못쓰게 막으면서 그런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이면 훨씬 큰 돈이라도 받게끔 법적으로 못 박고, 육아와 교육에 대해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고 사회가 그 책임을 다 해주고, 부동산이나 사교육 같이 개개인의 삶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잘못된 시스템을 천천히 바꿔나가야 출산률을 높일 수 있는겁니다.
개뿔이 노동환경은 점점 더 나쁘게 만들려고 정규직마저 해고 쉽게 하는 악법을 통과시키겠다 벼르고 있고, 최저임금 눈꼽만큼 올리는거에도 생지랄을 떨며 방해하고, 대통령이 자기 공약으로 내걸었던 육아부담 사회로의 전가를 입 싹 닦고 모른척하고 배째라고 나오니까 하다못해 지자체장이 나라도 알아서 하겠다고 나섰더니 복지부란 새끼들이 나서서 막으면서 '니들이 그거 하면 우리가 뭐가되냐' 이 지랄을 하고 있고, 부동산 투기는 더 조장하고 사교육 문제엔 관심도 없이 정부가 나서서 애들 세뇌교육 시키겠단 개소리나 하고 있고, 이러면서 뭐요? 젊은이들보고 애를 낳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