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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1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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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공주님 성지라고는 해도 수성구는 좀 다릅니다. 물론 여기도 묻지마 새누리 지지 성향이 강한 편이기는 해도 다들 새누리에 대한 불만들이 큰 편이에요. 그간 열심히 찍어줬는데 새누리가 우리한테 해주는건 없고 손 안의 물고기 취급만 했다, 이걸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민주당이 좋아서 찍는게 아니라, 새누리가 미워서 찍는게 아니라 한번쯤 "엿먹어봐라 그래야 우리 소중한걸 알지" 하는 심정으로 야당 한번 찍어볼까 하는 심리들은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대구에서도 달서구나 북구, 칠곡, 점점 북쪽-구미쪽 가까워질수록 박정희-박근혜 신격화+묻지마 지지 성향이 강해지기는 하지만 수성구쪽은 전통적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런 머리를 굴릴줄 알더라구요)
문제는 구심점이 될만한 야당 정치인이 없었다는 건데, 김부겸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예전 유시민이 수성을(우리 동네)에서 30%대였나 높은 득표로 아쉽게 주호영에게 밀려 낙선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낙선은 했으나 꽤 괜찮은 야당 이미지를 심어줬어요. 수성을 지산범물 지역과 대구 동북면을 이어주는 민자 유료도로에 대해 이 지역 주민들은 요금 면제를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잘 먹혀들었고, 낙선 후 동네 길거리 돌아다니며 높은 지지 감사하다고 인사 다닌 것도 지역민들에게 크게 어필했죠.(반면 주호영은 당선 감사 인사는 커녕 자기 득표율 낮았던건 친박연대 깽판 때문이라고 투덜대서 지역민들에게 욕 먹었음) 당시 한나라당이 친박연대 내홍에 휩싸여 표가 갈라진 것이 호재로 작용하긴 했으나 그것과 별개로 유시민 자체 득표가 그만큼이나 나온건 의미심장한 일이었죠.
이후 다음 총선에서 김부겸이 옆동네 수성갑에 출마해 무려 40%대의 득표를 기록합니다. 아쉽게 낙선하기는 했으나 (동네가 다르긴 해도) 수성구에서 야당쪽 득표율이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었죠. 2년뒤 지방선거에서 시장 후보로 나온 김부겸은 다시 40%대의 높은 득표로 아쉽게 낙선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성갑 지역이 아닌 대구 전역에서의 지지율도 40%대를 받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죠.
김부겸은 이미지 관리를 매우 잘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앙당과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데 이건 오히려 김부겸에겐 더 좋은 일이에요. 대구에서 민주당 색채를 많이 드러내봤자 좋을게 없거든요. 또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들지만) 박정희 묘소 참배 등 이 지역에 맞춘 로컬화 전략도 잘 짜고 있고, 두차례의 선거때 선거 운동이나 낙선 후의 행동 등에서 지역민들 호감을 많이 사 둔 상태에요. 오래도록 준비를 잘 해왔다는 거죠.
한마디로 수성구 주민들은 여전히 새누리를 지지하지만 그 지지에 대한 보답을 못 받아 온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불만으로 다른 당 정치인에게 바람을 한번 피워보고자 하는 욕망이 이미 가득한 상태였는데, 딱 매력적인 인물이 하나 나온 겁니다.(여기서 오히려 민주당이 더 나서면 역효과에요. 바람만 우선 한번 피워볼 생각인데 상대가 혼인도장 찍자고 서류 내밀며 배우자랑 당장 이혼하고 나한테 오라고 들면 되려 부담감에 도망가버릴테니까요)
게다가 새누리에서 내세운 김문수 카드도 악재입니다. 나름 네임드이긴 해도 진박 친위대도 아니고 저거 당선시켜준다고 딱히 수성갑 지역이나 대구에 이득될 인물 같아 보이진 않거든요. 자기 나름은 정치 생명 걸고 야당 핫한 정치인 저격해 요즘 점점 떨어지고 있는 스스로의 당 내 가치를 회생해보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이겠으나(새누리 딱지 달고 TK에서 민주당한테 패배-그것도 첫 패배-하면 제아무리 네임드 정치인이라 해도 정치생명 끝날 위기에 몰립니다. 김문수는 지금 캐삭빵을 걸고 있는 거죠) 지역민심은 도지삽니다 아저씨 개인 입장이 어떻건 관심 없거든요.
대구지역, 그 중에서도 수성구 주민들은 새누리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 이혼하고 야당과 재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야당이랑 바람펴서 새누리 관심 좀 끌어보겠다는 심리까지는 분명 가지고 있습니다. 대구 젊은이들이 새누리 지지하긴 해도 열성 지지자가 많은건 아니에요. 그냥 부모님한테 그렇게 배우고 듣고 했으니 1번 찍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들이 요즘 대구에 일할 곳이 없어 다들 구미, 포항, 울산 등지로 나갑니다. 구미까지 출퇴근하느라 힘겨워하는 이들도 많구요. 세월호나 메르스에 대해 박근혜 탓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지만, 그로 인해 지역경제가 완전 박살이 났었기에 자영업자들이 현 정권의 위기대처 능력에 대한 불만도 잔뜩 쌓여있어요. 여기에 김부겸이 그간 착실히 쌓아온 이미지와 의도적 야당색채 빼기, 우리 지역 사람이란 강점 등을 부각하며 새누리 엿먹이고 위기의식 심어줄 좋은 대안으로 떠오른거죠.
물론 낙관하기엔 이릅니다만, 이번 선거 상당히 좋은 기회인 것은 사실입니다. 김부겸의 높은 지지가 오히려 새누리 지지세력의 결집을 유도해 저번처럼 높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낙선이 반복되거나 할 위험도 아직 충분히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김부겸의 저 지지율이 거품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