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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4 08: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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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을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은 내 안에, 당신 안에, 우리 모두의 안에 숨어 있다.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사회 시스템에 의해 몸속 뇌속 깊숙히 자리잡힌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저래야 돼'하는 것들.
이러한 것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형제와 자매들과 친구들 사이에 서로 악의없이 전달되며 우리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의 문제점을 알고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는 이들, 이것을 무의식중에 타인에게 전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자신의 대에서 끊으려 노력하는 이들을 우리는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미 너무도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 페미니스트라 할지라도 잠시만 신경을 안 쓰면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똑같이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사람일지라도 개개인에 따라 그 이뤄낸 성과가 차이를 보인다. 똑같은 수업을 듣더라도 누구는 진도를 빨리 나가고 누구는 느리게 나가듯이. 페미니즘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조차 이러한데 성평등에 대해 별 생각없이 관성으로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그게 옳다 그르다 하는 고민조차 없이 그냥 배운대로, 몸에 체득된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별 악의없이 당연스럽게 성적으로 평등하지 못한 생각들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전달하고, 자식들에게 물려주면서.
페미니즘의 추구, 성평등의 실현을 위한 노력과 과정은 누가 누구보다 더 페미니즘적이고 누가 누구보다 덜 페미니즘 적인지를 겨루는 그런 결투대회가 아니다. 내 속의 불평등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다른이의 도움을 받고, 다른이 속의 불평등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주며 눈에 보이지 않은 우리 속의 차별과 불평등이란 악과 싸우기 위해 서로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이다.
이게 힘들고 어렵고 무섭고 지루해 보인다고 해서, 그저 눈앞의 남성들을 타자화 하고 적으로 만들어 공격한다고 해서 성평등이 이뤄지는게 아니란 소리다. 이런 '나태한'인간들은 범사회적인 성차별 극복이나 성평등의 실현, 조금 더 평등한 사회로의 한걸음 전진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나의 페미니즘 레벨은 이렇게 높은데 너는 어떠냐! 패자를 미개하다고 비난할 권리를 걸고 나랑 페미니즘 레벨력 겨루기를 해보자, 하는 결투와 자위질만 즐길 뿐이다.
자기 자식의 남성기를 잘라버리겠다는 둥, 자기 아버지를 돈이나 벌어오는 XXX라는 둥, 남자화장실 몰래카메라나 찍고 남자 어린이 성희롱이나 하면서 주변의 일반 남성들을 적대시 하고 혐오 폭력을 휘두르는 짓거리는 본인들의 변태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말초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줄 수는 있을지언정 성평등을 향한 길은 전혀, 절대로 아니다.
성평등과 페미니즘은 연대의 길이며 서로 힘을 합쳐 우리 안의 악마와 싸워나가는 길이다. 느리지만 모두 손잡고 반걸음씩, 한걸음씩 앞으로 함께 나아가는 길이다. 타자화 하고 선긋고 편가르며 서로 누가 더 앞에 있나 경쟁하고 뒤에 있는 이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그런 길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