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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7 18: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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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은 끝내 잡히지 않은 당시 사건의 살인자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죠. 그러나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극중 적시하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를 조금 담고 있습니다
-------------<절취선>--------------
그 이유는 당시 사건의 원인을 단순한 사이코 살인마 하나에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광기에 휩싸인 허술한 당시 사회구조 전체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의 핵심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범인의 또다른 범행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 명확한 그 밤에 국민의 피살을 막으려 요청한 경찰병력 지원은 거절당하고 맙니다. 병력들이 국민의 시위를 막기 위해 동원되었기 때문이죠. 이때의 주인공들과 관객이 느끼는 무력감, 처참한 심정이 바로 영화의 주제를 관통합니다.
또 이 영화 말미에 유력한 용의자가 잡히지만 감독은 스스로 그가 진범인지 아닌지 밝힌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범인이길 바랐고 영화속에서나마 그 죄값을 치루길 원했으나 사실 시나리오 상에서도 그가 범인이냐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냐 밝혀진 것이 없죠(심지어 박해일이 분한 용의자는 당시 시대상에서 반정부 시위를 하다 탄압을 피해 농촌으로 숨어 도망온 '손이 고운' 대학생 운동가들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이 유력한 용의자가 천인공노할 범인이냐 아니면 또다른 억울한 희생자냐 하는 것은 허술하고 엉성한 시스템 때문에 밝혀지지 못합니다. 폭력적이고 자기 권력 유지에만 관심을 두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감정적 권력, 이것이 바로 사건의 진짜 범인이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무력하게 희생되어야만 했죠.
송강호를 대표로 한 일선 형사들 역시 이런 시스템에 동화된 또하나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시스템 위에서 무력하게 휘둘릴 뿐인 희생자, 즉 당시 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그 우스꽝스러운 주먹구구식 행동에 대한 블랙코메디 형식을 빌린 비웃음과 함께 애잔한 눈빛이 섞여 있지요.
시대를 비판하고, 그 시대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끌려다니며 동조했던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냉철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이해와 사랑과 포용을 아우르는 것이 이 위대한 코믹-스릴러의 주제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