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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1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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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란 무엇인가... 참 어려운 문제죠.
중요한건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 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지지할 것이냐 하는 거라고 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배신해서는 안되지만 국민은 언제건 정치인에게서 등 돌릴 수 있습니다. 아니, 사실 국민은 언제나 자기가 지지하던 정치인에게서 등 돌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적 친분, 의리 같은 것과는 다른 겁니다. 철저한 계약관계여야 해요. 우리가 개인사업을 할때 복잡한 법적 처리를 해야 할 문제가 생기거나 세금 관련 계산을 해야 할때, 그 부분을 대신 해줄 변호사나 세무사를 찾게 됩니다. 그리곤 계약을 통해 그들에게 그 파트를 맡기게 되죠. 정치인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주인도 국정의 주체도 여전히 우리 국민이지만 우리는 일단 우리 스스로 밥 벌어 먹고 살기 바쁘기도 하고 정치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밥먹고 정치만 하는 정치 전문가에게 계약을 통해 대리 시키는 것이죠.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대리인 계약이기에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이에게 일을 맡기게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썩 실적이 좋지 못한데도 4~5년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후회하며 기다리는 일도 생깁니다. 또 때로는 번지르르한 자기 PR을 믿고 일 맡겨줬더니 완전 대실망쑈를 보여주는 뻥쟁이에게 뒷통수 맞는 일도 생기죠.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서로간의 계약관계이기에 마음에 안 들때 지지철회 하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인 겁니다.
내 돈 내고 계약한 변호사, 세무사가 일 똑바로 못하면 갈아치워버리는게 당연하잖아요?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이 사람을 지지했다가 좀 지나서 저 사람으로 지지를 바꾸는 것을 의리가 없네 줏대가 없네 욕할 이유가 없습니다. 계약관계에서 계약을 불이행 하면 당장 바꿔야죠. 어디서 의리 같은걸 찾나요. 물론 처음에 좀 더 잘 알아보고 계약하지 그랬어, 하는 충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이런 종류의 실수는 누구나 다 겪는 문제입니다. 정치인 누구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거짓말쟁이 뻥쟁이 사기꾼도 잔뜩 숨어 있으니까요. 또, 내가 특정한 이유로 지지를 보낸다 할지라도 그 정치인과 내 생각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기에 다른 부분에서의 의견차이가 생기면 지지철회를 할 수도 있는 거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럼 비판적 지지는 무엇이냐 하면은,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전략적이고 일시적인 동맹, 연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도 한표, 나도 한표 동일한 유권자 입장이지만 그 사람은 직업을 정치인으로 택해서 프로 정치인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고 나는 다른 직업을 가진, 프로 사업가(?)라거나 프로 디자이너, 프로 영업가 등등 나만의 다른 전문 영역과 직종을 가진 사람이기에 어떤 특정 정치적 현안에 대해 나와 같은 입장을 지닌 정치인에게 내 표를 잠시 맡겨 힘을 실어주는 것이죠. 그 현안에 대해서는 내 목소리는 이 양반 것과 동일하니 이 양반 말에 한표, 이렇게 말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럼 언제건 지지 철회하고 다른 문제에 관해 나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또다른 정치인을 물색하면 되는거에요.(물론 현실적으론 이것도 매번 매 현안에 대해 이러기는 무리가 있으니 어느정도 여러 사안들을 패키지로 묶어서 대충 나와 최대한 비슷한 성향을 보여준 정치인을 고르고 그와의 사소한 의견 차이 정도는 퉁치고 넘어가는 식으로 지지 정치인을 고르긴 하지만요)
국민들은 약삭빠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매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서 이 부분에 대해선 요 정치인, 저 부분에 대해선 저 정치인 이렇게 갈아타는게 절대 나쁜 짓이 아니에요. 끊임없이 여러 정치인들과 합종연횡하며 자기 목소리를 관철 시킬 전략을 짜야 합니다.
정치에 큰 관심없는 분들은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소리소리 지르고 싸우다가 사석에선 하하호호 웃는 걸 보고 비난을 하죠. 근데 그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이라 해서 자기 혼자 힘으로 자기 목소리를 관철시키진 못해요. 누군가의 협력과 지지와 표가 있어야 그 법안을 통과 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사안에 따라 서로서로 이리 손잡고 저리 손잡고 때로는 협상하고 타협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이게 현실 정치란 것이죠. 이걸 가지고 더럽다 추하다 할 문제가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유권자도 그래야 합니다. 정치인들과 이리 손잡고 저리 손잡고 이리저리 편을 모으고 언제건 다른 문제에 대해선 또 그 손 놓고 다른이와 손잡고 이렇게 좌충우돌 치고 나가야 합니다.
'저 사람은 다른 문제에 대해서 나랑 항상 전혀 생각이 일치 하지 않던 인간인데 사드배치 반대에 대해선 생각이 같네?'그럼 그 사람도 일시적으로 지지해서 힘을 모으는 겁니다. 사드배치 찬반건이 끝나면? 그럼 다시 돌아서서 손 놓고 서로 으르렁거리는거죠. 이게 바로 정치입니다. 각자 전혀 다른 생각들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손잡고 연합하고 등돌리고 왔다갔다 아웅다웅 하는 것, 이게 정치인 것이죠. 이건 더럽고 추한게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현실정치 참여, 비판적 지지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선은 각각의 정치 사안들에 대한 나만의 생각과 주장이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는 거죠. 일단은 내 생각과 주장이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여러 정치인들의 주장과 비교 대조를 통해 동맹, 지지 여부를 가릴 수 있으니까요.
정치란 이런겁니다. 사람 하나 잘 뽑아놓고 알아서 다 잘해달라고 하는게 절대 아닙니다. 사업하는걸 생각해보세요. 이런식으로 사업하다간 사기꾼한테 뒷통수 맞고 다 빼앗깁니다. 나 스스로 각각의 정치 현안들에 대해 나만의 주장을 먼저 세우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와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이 같은 프로 정치인들을 물색해 일시적이고 전략적인 동맹을 맺는 겁니다. 그러기에 정치 참여는 정치인 누구를 뽑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뽑을 사람 없다는 쉬운 말은 정치를 하나도 모르며 주권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무책임한 소리입니다. 정치판에 제대로 된 인간이 없어보이고 다 사기꾼 같아 보이더라도, 정치의 주체는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유권자인 우리 자신입니다. 그 개차반 같은 정치인들 속에서라도 그들 중 내 주장 관철을 위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골라내 써먹어야 합니다. 이게 정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