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주말에 비가 내렸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전날 먹은 헤네시가 위장을 소독하듯 세상 곳곳을 소독하고 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낯선 곳에서의 생활도 어언 13년째에 접어 든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내가 녀석을 처음 만난 건 13년 전 멋모르고 상경했던 그 즈음이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작은 키에 좌우로 길게 찢어진 눈매 뭐가 그리 불만인지 항상 튀어 나와있던 입술.</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을 볼때면 난 항상 기분이 찝찝해져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픈 욕망이 인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을 첫 대면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상경 후 강남터미널에 내려 지하철이란 걸 처음 탔을 때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얼마 들어 있지도 않던 내 지갑을 소매치기 하던 그 놈.</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평소 사람들의 스킨쉽이나 터치를 병적으로 싫어했던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내 히프를 이수영의 노래처럼 스치듯 지나치던 그 놈의 손목.</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동작그만.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첫 판부터 장난질이냐?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라는 말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난 녀석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 악!</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이 내게 했던 첫 마디였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나는 녀석을 지하철 바닥에 내팽게치고 지갑을 회수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사람들의 시선은 남에 일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고 녀석의 시선은 내 사타구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순간 살기를 느껴 본능적으로 무릎을 오므렸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역시나 녀석의 발등이 오므려진 내 두 무릎 사이에 걸렸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요것봐라?</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나는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다음역에 내렸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순순히 나를 따라 내렸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게 시작이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상경 후 처음 사귄 친구였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후로 녀석과 나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생사를 같이 해왔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리고 석달 전.</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아마 그즈음일 것이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이 내 여자친구와 바람이 난 시점이.</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믿을 수가 없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다른 놈도 아닌 그녀석이라니.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샤워하고픈 마음이 들만큼 찝집하게 생긴 녀석과 바람이 나다니.</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도저히 믿을수가 없었고 그 찝찝함에 닭살이 돋았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리고 주말.</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닭살을 삭히기 위해 헤네시 한 병을 다 비우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벙거지 모자와 검은 마스크와 검정 뿔테 안경을 구입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홈쇼핑에서 구입한 장미칼을 수건에 감싸 가슴팍에 감춰두고 녀석의 원룸으로 향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비번은 그대로였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주냄새와 땀에 찌든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콧속을 쑤셔왔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숨이 턱 막혔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신발 자국이 날까봐 신발 바닥은 미리 사포로 문질러 두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코를 골며 세상모르게 골아 떨어져 있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두번의 들숨과 세번의 날숨이 교차하던 순간 나는 몸을 날렸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정확히 배꼽 좌측 5센티 부근에 장미칼이 박혀 들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아니 박혀들었어야 했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캉!</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느낌이 이상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이런적이 많았던지 뱃속에 감추어둔 철판을 꺼내어 무기로 삼았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철판은 미리 갈아두었는지 장미칼 만큼이나 예리하게 갈려져 있었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 시발 뭐야!</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고함을 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나는 뒷걸음치며 녀석과 뒹굴며 육탄전을 벌였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십 여 분이 지났나. 녀석과 나는 원룸 앞 골목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의 왼쪽 허벅지에는 장미칼이 깊숙히 박혀 있었고</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내 아랫배는 예리한 철판에 베여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살짝 창자 같은 무언가가 삐져 나올려고 하는걸 오른손으로 억지로 쑤셔 넣고 있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때 처음 보았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의 웃는 모습을.</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쓴 웃음을 한번 짓더니 왼쪽 허벅지에 박혀 있던 장미칼을 뽑아 들고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내게 달려 들어 반쯤 붙어 있던 내 아랫배를 사선으로 정확히 그어버렸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 컥!</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내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내 뱉은 말이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아직 숨이 붙어 있던 나를 들쳐매고 자신의 원룸으로 들어갔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나의 아킬레스 건을 자른 뒤 욕조에 기대어 피가 빠지길 기다렸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6시간 뒤 피가 다 빠져 어느정도 가벼워진 나를 장미칼로 등분을 내기 시작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과연 광고대로 뼈까지 잘 썰렸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나를 정확히 154조각으로 포를 떳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잠시 밖을 나가더니 20분쯤 지나서 다시 들어왔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왼손에는 대형 검은 봉지가 십여장 들려 있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녀석은 나를 그 검은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척.척.찹.찹.착.</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장미칼의 위력으로 잘게 썰려진 나를 일곱 봉지에 나눠 담은 뒤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빨간 대형 캐리어에 담기 시작했다.</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그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 네. 30대 초반 남성. 살코기 35킬로. 뼈. 8킬로. 금액은?</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 흠.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잠시 후 녀석은 나를 담은 캐리어를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우리가 사투를 벌였던 그 골목, 우리의 피가 흥건했던 그 곳.</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주말에 내린 비는 우리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 내어 </span></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도심의 하루를 시작케 했다. </span></div> <div> </div> <div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0pt">끝.</span></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