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font size="3"> </font><span style="font-size:9pt;color:#333333;font-family:gulim, Dotum, Helvetica, AppleGothic, sans-serif;">1화 링크 - </span><a target="_blank" href="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27487&s_no=27487&page=4" style="font-size:9pt;color:#0000FF;text-decoration:none;font-family:gulim, Dotum, Helvetica, AppleGothic, sans-serif;">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27487&s_no=27487&page=4</a></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바로 앞에 소녀가 앉아있었다. 얼굴이 붉고 숨이 약간 불규칙할 뿐 소녀는 크게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심각한 상태였던 것 같은데. 상황을 이해하려는 사내에게 소녀의 한쪽 다리가 눈에 띄었다. 위태롭던 의족 막대기가 두 동강 나 있었다. 파닥대던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사내는 그대로 눈에 얼굴을 묻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아파서 쓰러진 거 아니었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어지럽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막 쓰러질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요. 먼저 들어가 봐도 되냐고 말하려 했는데 이게 부러졌네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부러진 의족을 집어 들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렇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던 표정을 한순간에 지웠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눈 덮인 묘가 소녀 옆에 외로이 서 있었다. 소녀는 한동안 비석을 바라보더니 그리워하는 것 마냥 천천히 쓰다듬었다. 사내가 물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는 사람입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뇨, 여기 있는지도 몰랐는걸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럼 왜?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코를 훌쩍이고는 점자를 읽듯, 눈을 감은 소녀는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쓸어내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냥, 쓸쓸해 보이잖아요. 지금 이 아래 누군가가 누워있겠죠?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고개만 끄덕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죽으면 영원히 이렇게 누워있어야겠죠. 답답할 거예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어깨를 으쓱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눕는 건 빈 몸뿐이니까 크게 답답할 일은 없을 겁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빈 몸이라, 그럼 ‘저’는요? 죽으면 어떻게 되죠? 천국으로 갈까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마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그건 모를 겁니다. 혹은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애써 부정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씬, 무신론자?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신을 믿기는 합니다. 간혹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선 잘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운을 구걸하곤 합니다. 다만 그 이상으로 진지하게 믿어본 적은 없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럼 사후세계에도 회의적이겠네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런 것 같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멀리 떨어진 나무로 고개를 돌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음, 죽으면 다 끝일까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렇게 생각합니다. 의식은 전적으로 뇌 활동의 부산물이니까,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돌아갈 겁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간신히 한마디 꺼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무섭네요. 모든 게 끝이라니.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죽음을 대할 때면 저마다의 공포를 느끼곤 합니다. 타나토포비아라고 죽음을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증상도 있는데.......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곧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이 아무도 없음을 깨달았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죽는 건 무서워요. 그렇죠?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그렇다고 답하려다 다시 입을 닫았다. 소녀는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소녀는 묘비 앞에 엎드려있었다. 사내는 소녀에게 다가가 연약한 등에 투박한 손을 얹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은 사내 탓이 아니었다. 엄마. 소녀는 눈을 한 움큼 쥐어 들었다. 눈 녹은 물이 주먹을 타고 흘러내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우리 엄마, 그 깜깜한 방에서 손발이 멋대로 움직일 때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무것도 안 하는, 아니 오히려 피하기만 했던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요. 숨도 못 쉬고 죽어가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소녀 옆에 같이 누웠다. 하늘이 높았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은 눈을 만지곤 부끄러운 듯 고개 숙였다. 그 후 접착제를 꺼내 의족을 붙였다. 눈은 분명 우는데 입은 애써 웃고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저 쓰러진 줄 알고 저기서 여기까지 기어 온 거예요? 와, 감동인데.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허우적대며 눈 위를 헤엄쳐 온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은, 소녀도 슬픈 웃음을 지을 뿐, 사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의족이 잘 붙었는지 땅을 툭툭 차며 확인했다. 문제없다고 생각한 소녀는 사내에게 곧장 다가왔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의자까지 다시 못 기어가겠죠?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소녀는 사내를 천천히 들어 안았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생각보다 무겁진 않네요. 알약만 먹어서 그런가.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몇 번 허우적대보았지만 그 바람에 소녀가 중심을 잃는 모습을 보곤 이내 저항을 포기했다. 소녀는 사내를 의자까지 데려갔다. 감기 걸린 소녀보다 사내 얼굴이 더 붉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남은 작업을 홀로 마친 사내는 소녀에게 돌아갔다. 소녀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가로등에 소녀의 눈이 반짝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저기 나무들 보여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잘 보이지 않는다. 사내는 눈을 찡그렸다. 과연 재떨이 속 담뱃재 같은 건물 사이에 자연이 숨어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마치 도시화의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조난자처럼 보였다. 나무 사이로 조촐한 분수대를 찾은 사내는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공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공원 옆으로 십자가가 솟아있었다. 공원과 성당.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아, 설마 저기가?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네, 위문단 가기 전에 잠깐 노숙했다던 공원이에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손가락을 들어 공원 옆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학교가 있었다. 야자 끝난 학생들이 잔뜩 몰려나오고 있었다. 소녀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마을 곳곳을 가리켰다. 영화관, 분식집, 노래방, 목욕탕, 극장 등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추억들을 조심스레 꺼내 사내에게 보여주었다. 그다음으로 가리킨 곳은 친구들 집이었다. 열군데도 넘는 집들을 모두 알려준 소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마을을 향해 외쳤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너희, 나 기억나기는 하니? 난 너희 전부 기억하는데. 즐거웠어. 앞으로 다신 만날 일 없을 거야. 잘 지내!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울음 섞인 말을 마친 소녀는 멋쩍은 듯, 사내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이렇게 고향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좋네요. 왜 엄마가 그토록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히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마지막엔 이곳에 왔으면 좋겠어요.</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곳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대규모 주택 단지였다. 사내가 물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단지인데, 저곳엔 어떤 기억이 있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제가 살던 판자촌이 저기쯤이었을 거예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아, 하고 짧게 외쳤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말대로 정말 철거됐나 보네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아파트 단지가 있던 곳이 예전엔 어땠는지도 사진 보듯 묘사했다. 어떤 가게가 있었고, 누가 그곳에 살았는지, 적어도 주변 오십 미터 정도는 빠짐없이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망국의 신하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래도, 이젠 아무 의미 없네요.</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저녁은 사내가 준비했다. 이번에도 소녀는 다 먹지 않았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냄새는 기가 막히는데, 입 안에만 넣으면 이상하게 쓴맛만 나요. 맛없어.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소녀의 밥까지 남김없이 비웠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식사를 마친 사내와 소녀는 각자 침낭으로 들어갔다. 사내가 잠들려는데 갑자기 발열기가 꺼졌다. 고장 났는지 확인하려하자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제가 끈 거예요. 잠깐만 이렇게 있어 봐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어둠 속에서 눈만 깜빡였다. 금세 얼굴이 시려 왔다.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죽으면 영원히 이런 깜깜한 곳에 있는 거겠죠.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마 깜깜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겁니다. 애초에 의식 자체가 없으니까. 평소 잠자는 그 몇 시간 동안, 꿈이라도 꾸지 않는 이상, 어둠 속에 갇혀있다고 느끼는 건 아니잖습니까? 비슷할 겁니다. 다만 영원히 잔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는 혹시 영원을 헤아려본 적 있어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딱히 없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럼 하나 얘기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들어봐요.</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갔어요. 밤에 모두 곤히 자는 도중에 저 혼자 깨게 된 거예요.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지금 여기보다도 좁은 방에 스무 명 가까이 자니까 맘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죠.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 누굴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뒤지게 얻어맞았을 테니까.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근데 이상한 점이 분명 방 안은 애들로 꽉 찼는데,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어서 마치 혼자 누워있는 기분이었어요. 괜스레 무서워졌죠. 근데 갑자기 방 한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분명히 멀리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그것치곤 너무 희미하게 들려서 오랫동안 집중한 후에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그건 평소 엄마가 발작하는 소리였어요. 게거품 물은 채 온 관절이 꺾이는. 그 소리가 하나둘 늘더니 어느새 방 안에 있던 애들 전부가 뒤집어지고 있었어요. 너무 놀라니까 비명도 안 나오더라고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이불만 꼭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었죠.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제가 더 심하게 발작하는 중이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걸까. 끊임없이 저 자신에게 물어봤는데 딱히 대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그러다 문득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전혀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럼 혹시 꿈인가, 라고 중얼거렸는데, ‘꿈’이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이미 눈을 뜨고 있었는데도 한 번 더 눈이 번쩍 떠지는 거예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정말 꿈이었던 거죠. 온몸이 땀범벅이었어요. 다시 귀를 기울여보니 방 안은 고요했어요. 똑바로 쉬지도 못하는 숨소리만 들으면서 와, 꿈이었구나, 하고 안도했는데 귀 바로 옆에, 숨결도 느껴질 거리에서 누가 지금은 현실인 것 같아? 라고 속삭이더군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윤곽으로 대강 판단하건대, 방 안에 있던 스무 명 전부 저만 쳐다보는 중이었어요. 사십 개 흰자위가 얼핏 보였죠.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단순한 악몽이었다면 그렇게 깜짝 놀라는 순간에 깼을 텐데 그 순간엔 마음대로 꿈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어요. 처음 꾸었던 꿈에서의 기억 때문에 이것도 꿈일 거야, 하고 외쳤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그 와중에 목소리 하나가, 저년 좀 봐. 이게 꿈인 줄 아나 봐! 하고 외치니까 방 전체가 숨넘어가듯 끅끅대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어요. 이게 현실이야, 네가 죽지 않는 이상 이건 영원히 안 끝나, 그냥 죽는 게 어때? 병신 같은 년아 등등.......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근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걔네들이 하는 말이 다 거기서 거기인 거예요. 알고 보니 평소 제가 스스로한테 해댔던 말들이었어요. 그걸 깨닫고 나서야 한 번 더 깰 수 있었죠. 이번에도 사방이 조용했어요.</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두 번째로 깨서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은 꿈일까 현실일까. 꿈이라면 앞으로 몇 번을 더 눈떠야 현실일까. 혹시 영원히 이렇게 수레바퀴 돌 듯 어둠 속에 갇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퀴퀴한 방에 누워 흐릿한 천장만 찡그리고 보면서 영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죠.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나중에 이불을 덮었는데, 시각도 차단되니까 아, 죽으면 쭉 이렇게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끝없는 무(無). 상상을 했죠.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나는 죽었고, 이제 영원히 어둠 속에 있어야 한다.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 백 년 천 년 십만 년 백만 년 일억 년 일 조년........ 끝이 안 보이는 거예요. 갑자기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언젠가 인류가 멸종하고, 점점 거대해지는 태양이 지구를 삼킨 후에 백색왜성이 되고, 나아가 우리 은하 아니, 마지막 블랙홀마저 사라져서 더는 우주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때가 와도 영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잖아요? 그때까지도 저는 없어요.</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만약 다시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생기고 그 우주가 다시 죽고, 이러기를 수백 번 반복해도 저는 계속 어둠 속에 있는 거예요. 영원히, 영원히....... 제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히겠죠. 그냥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가 몸서리쳤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가늠조차 못 하겠는 그 영원한 세월이 소름 끼치게 두렵더라고요. 결국 그날 밤은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면서 잠들었어요. 이번엔 다행히 현실이어서 눈떠보니 아침이었죠.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근데 그때부터 밤만 되면 자꾸 그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 후로 한동안 제대로 잠든 적이 없었어요. 공원에서 노숙하면서 지금 이 순간 살아남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돼서야 서서히 잊어갔어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떠올리는 게 주로 밤이었는데, 놈들 피해 다니느라고 끝까지 안 자고 버텼거든요. 죽음 따윈 생각할 틈도 없이 지쳐 쓰러지는 게 일상이었죠.</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게 그렇게 무섭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가 한숨 쉬는 게 들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여러 사람한테 말해봤는데, 제 말에 공감 못 하는 사람도 많긴 하더라고요. 아저씨도 크게 다르진 않나 보네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발열기를 켜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희미한 달빛이 소녀 쪽만 비추고 있었다. 영원이 무섭다고....... 잠시 소녀가 되어보기로 한 사내는 눈을 감았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시간을 헤아리는 대신 공간을 거닐기로 했다. 소녀, 집, 마을, 국가, 지구, 은하 등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오직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영상으로만 봤던 무수한 은하와 블랙홀을 지나서도 계속 걸었다. 빛과 온기가 사라지고 나서도 사내가 갈 길은 그대로였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내는 지쳐갔다. 사내는 잠시 쉬기로 했다. 아픈 종아리를 주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손을 뻗었는데 잡히는 게 없었다. 아니, 애초에 손이라는 부위부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발을 내려다봤다.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더듬었다. 만져지지 않았다. 비명을 질렀다. 들리지 않았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오감이 차단되고 시공간도 인식할 수 없는 곳에서 사내가 가진 건 오직 뚜렷한 자의식뿐이었다. 그 의식은 어둠을 도화지 삼아 사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던 온갖 공포를 그려냈다. 오래전 기억들이 영사기에 필름 돌 듯 흘러갔다.</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해일처럼 앞을 가로막은 벽, 그 앞에서 싸우는 사람들. 박살 난 기계들. 이어지는 총소리, 피가 튀기고 살점이 찢긴다. 물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광경이다. 사내는 그저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만 있는 중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3"> 그 사이에서 사내는 춥다는 감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숨 막히는 느낌이 났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확 밝아진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빛에 사내는 막 태어난 아기라도 된 마냥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려 했다. 틈을 비집고 들어온 불빛이 사정없이 눈을 찔러댔다. 소녀가 발열기를 킨 것이었다. 침낭 밖으로 얼굴만 쏙 내놓은 소녀가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괜찮아요? 왜 갑자기 숨을 헐떡여요, 무섭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전원 단추 위에 얹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사내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차마 영원을 헤아리다가 너무 무서워졌다는 말은 할 수 없어 짧은 사과만 건넸다. 소녀는 할 말이 있단 표정이었지만 끝내 입을 열진 않았다.</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다시 발열기가 꺼졌다. 소녀가 잠들고 나서도 사내는 눈을 감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녀가 그러했듯, 사내도 천천히 과거를 되짚어봤다. 좋은 추억은 없었다. 계속 떠올려봤자 손해 보는 기분만 들어 사내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하지만 한 번 매달린 기억은 쉽게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옆에선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내는 오늘 밤 잠들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font></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