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1화 링크 - <a target="_blank" href="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27487&s_no=27487&page=4" target="_blank">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27487&s_no=27487&page=4</a></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말을 마친 소녀는 한참이나 기침을 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어느새 사내와 소녀는 검문소 앞에 이르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저는 여기까지예요. 얼굴이 팔려서 이 이상은 못 들어갈 것 같네요. 정확한 위치 알려드릴 테니까 언제쯤 끝날지 말씀해주세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하지만 사내는 그럴 마음이 없는 눈치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같이 갑니다. 혼자서는 팔 아프니까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소녀에게 건넸다. 색안경과 목도리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마을에 친구가 많다던 사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밤중이었지만 검문소는 사내를 별 조사 없이 통과시켰다. 얼굴을 가린 소녀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현장조사’라는 단어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약간의 돈은 사내와 소녀를 마을 어디든 돌아다니게 해주었다. 중심가로 들어가니 많은 이들이 사내를 반겼다. </font></div> <div><font size="3"> 누군가 소녀의 정체를 묻자 사내는 인형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 말이 거짓임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정말 인형이었다면 눈 밑에 고유 식별번호를 가리는 것은 불법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누구도 토 달지 않았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가로등도 켜지지 않은 골목으로 사내를 데리고 갔다. 중심가를 벗어날수록 빛은 멀어지고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어두운 거 무섭지 않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무서워도 어쩔 수 없죠. 이쪽이 유일한 길인데. 그리고 아저씨랑 같이 있으니까 조금 괜찮네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이쯤 왔으면 이제 어디로 가는지 말해줘도 되지 않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래요. 좀 부끄럽긴 한데, 전에 살던 판자촌으로 가는 중이에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살았다던 판자촌이 이 마을이었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네, 태어나서 열네 살 때까지 쭉.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거기가 가상현실로 구현하고 싶은 곳입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맞아요. 너무 허름해서 말 안 했던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막 되게 화려하고 웅장한 걸 의뢰할 텐데.......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잠깐, 잠깐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가 다급히 외쳤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판자촌이라고 했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가 얼떨결에 소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멈추라는 뜻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왜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말이 없었다. 소녀가 계속 재촉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거기, 아마 지금은 없을 겁니다. 아니, 없습니다. 작년에 철거가 시작돼서 저번 달에 끝났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소녀 쪽을 바라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스산한 바람이 벽에 부딪혀 허공을 맴돌기만 했다. 등 뒤에 소녀가 어떤 표정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소녀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의자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방벽 안으로 들어가기도 해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주 가끔씩만 갑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왜 가는지는 묻지 마십시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어쨌든 가긴 간다는 거죠? 그럼 됐어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방향을 바꿨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어디로 가는 겁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가서 알려줄게요. 왜 가는지는 묻지 마세요. 하하.</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다시 중심가로 돌아왔다.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아 마을은 빛을 잃는 와중에 가로등 몇 개만 간신히 주홍빛 생명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 아래로 여전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여기 겨울은 항상 매서워요. 언제쯤 눈이 그치려나?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눈이 그칠 시기보다 의자가 고장 날 때를 더 알고 싶었다. 끼릭끼릭. 금방이라도 우지끈 부서질 것 같은 바퀴는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와 사내는 어느새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크게 가파르진 않았지만 쌓인 눈이 얼어붙어 언제라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녀는 이제 온몸으로 바퀴의자를 밀며 힘겨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내가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도 없어요. 얼마 안 남았을 테니 마저 가요. 그냥, 일 초라도 빨리 가보고 싶어서 그래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가 돌아가자고 한 까닭은 소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연약한 여자애 손에 자기 뒤통수의 안전을 맡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소녀가 또 친절히 머리 위 눈을 털어줄 것이 뻔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가 멈춘 곳은 어느 폐건물 앞에서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여기가 어딥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의 물음에 소녀는 대답 대신 건물 옆을 가리켰다. 달빛이 부딪힌 눈이 주변을 훤히 밝힌 덕에 사내는 꽤 멀리까지 시선을 옮길 수 있었다. 쓸쓸한 광야엔 하늘을 향해 무수히 많은 손을 벌린 그림자 하나가 모진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중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어머님께서 계시다는 나무가.......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여기를 구현해주셨으면 해요.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가 폐건물 안에 자리를 잡는 동안 사내는 홀로 나무 주위를 돌아다녔다. 정보 수집을 위해 각종 장비를 배치할 자리를 탐색하고 나서야 사내도 건물로 돌아왔다. 발열기 옆에 놓인 침낭은 어딘지 아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나무 중심으로 반경 3킬로미터 정도만 구현해드리겠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알았어요. 아, 혹시 이 건물 대신 다른 건물로 바꿀 수 있을까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새로 창조하는 건 불가능하고 제가 미리 만든 견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렇게 할게요. 사실, 여기만 아니면 뭐든 괜찮거든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럼 이곳은 따로 구현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일이 줄었군요.</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알람이 울렸다. 사내와 소녀는 아침 알약을 먹은 뒤 밖으로 나왔다. 사내는 의자에 앉은 채로 간단한 체조를 했다. 소녀가 흉내 내며 놀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공원 살 때, 간혹 새벽마다 아저씨들 몇 명이 와서 웃기는 기합 소리 내면서 체조하는 걸 봤는데, 아저씨도 그런 부류였군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내가 고개를 꺾자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옆에서 어색하게 따라 하던 소녀가 신기해했다. 사내는 내친김에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많이 우두둑거릴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허리, 손가락, 손마디, 무릎과 발가락까지. 소녀는 기인이라도 보는 것처럼 뼈 소리가 날 때마다 감탄했다. 소녀도 얕은 실력으로 시도해봤지만 소리는커녕 아프기만 했다. 이번엔 사내가 조용히 비웃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게 다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헐, 이런 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그때 공원 아저씨들 이후로 처음 봤어요. 아저씨는 정말 아저씨였군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직, 마흔도 안됐.......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못들은 채 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내년부턴 나무에 등 부딪히고 그럴 거예요? 막 으익! 으익! 하는 기합 넣으면서?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가 깔깔대며 사내를 쳤다. 사내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무에 부딪히는 건 이미 어렸을 때부터 다리 못 쓰게 될 때까지 하던 운동이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일을 시작하기 전, 사내는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감상했다. 먹구름 같던 마을이 점점 눈에 덮이고 있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아 세상은 잠든 듯 고요했다. 다만 어슴푸레한 새벽 속에도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는 모양이었다. 하나둘씩 불 켜지는 집이 차츰 많아지고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근근이 위태로운 생명을 이어가던 가로등은 이제 조금이나마 남았던 미련을 떨치고 사람들에게 세상을 넘겼다. 사내가 장비를 설치하는 동안 소녀는 잠깐 마을에 내려가 보겠다고 말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목도리 끼고 가도 알 사람을 알아볼 텐데.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냥 예전에 살던 곳 주변으로 돌아다니기만 할 거니까 괜찮아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으슥한 곳은 낮에도 위험합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명심할게요. 나중에 봐요.</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밤이 돼서야 소녀는 양손 가득 봉투를 쥔 채 나타났다. 마침 사내도 그날 작업량을 막 끝낸 터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게 뭡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밥하고 간식하고 그냥 뭐 기타 등등이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알약은 충분히 있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알아요. 그 맛없는 건 아저씨나 드세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이건 제 거예요. 소녀는 음식을 벽 한구석에 정리했는데, 그 양이 상당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돈은 어디서 난 겁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벽에서 쫓겨날 때 슬쩍한 게 좀 있어요.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봉투를 정리했다. 사내는 소녀가 꺼내놓는 물건들은 옆에 앉아 찬찬히 살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언제까지 구경하고 있을 거예요? 아저씨 볼일 보세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오늘 할 일은 끝났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할 일 끝났다고 계속 있게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생리대 꺼내는 모습까지 봐야겠어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눈썹을 긁적이며 자리를 떴다. 멀어져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소녀는 주사기 하나를 꺼내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를 쓱 닦았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가 알약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소녀가 사내 손을 붙잡았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잠깐만요. 아까는 농담이었어요. 이거.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즉석식품 봉지를 건넸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하고 가끔 먹었던 거예요. 그땐 돈이 없어서 여럿이 하나를 나눠 먹어야 했는데 항상 양이 모자라서 언젠가 혼자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죠. </font></div> <div><font size="3"> 돈 많이 벌면 종일 이것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연예인이 되니까 어느 순간 잊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참 올챙이 적을 생각 못 하는 거 같아요. 아까 마을에 내려가서야 갑자기 생각나서 좀 사 왔어요. 같이 먹어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모닥불을 피웠다. 발열기로는 폼이 안 난다는 이유였다. 사내는 투덜대며 불을 지폈다. 음식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조심스레 꽁무니만 덥히고 있었다. 소녀는 나뭇잎 몇 개를 불에 넣었다. 불길이 잠시 거세지다 다시 잠잠해졌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벽에 비친 손 그림자로 나비를 만들었다. 나비는 개가 됐고 다시 백조로 변했다. 백조는 날갯짓 몇 번 하더니 이내 흩어졌다. 소녀가 자꾸만 콜록대는 탓이었다. 그칠 줄 모르는 기침에 사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괜찮습니까. 약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놀란 소녀는 손사래까지 치며 거절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한숨 자면 나을 거예요. 밥이나 먹도록 해요. 사내는 음식을 꺼내는 순간까지도 기침하는 소녀를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사내도 호호 불며 즉석식품을 집었다. 입구를 열자 더운 김이 올라왔다. 코를 간질이는 따뜻하면서도 고소한 냄새에 사내는 저도 모르게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 동그랑땡 하나를 입에 넣자 달짝지근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적셨다. 간만에 쓰는 이가 어색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맛있죠? 소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사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끔 이런 것도 먹도록 해요.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에요. 사람 오감 중에 미각이 괜히 있겠어요?    하지만 정작 소녀는 몇 숟갈 들다 말았다. 오히려 사내가 소녀 몫까지 모두 먹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밤은 짧았다. 사내도 소녀도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만 좀 더 늦게 잠든 사내는 눈 감기 직전까지 끙끙 앓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다음날은 소녀가 사내를 거들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말려도 끝까지 따라오겠다고 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제가 협박하긴 했지만, 무시해도 상관없을 부탁을 들어주신 건데, 뭐라도 도와야죠.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덕분에 혼자 할 때보다 일이 훨씬 수월했다. 이대로라면 한두 시간 일찍 끝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일이 일찍 끝난다는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심심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독에 익숙한 사내였지만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녀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훨씬 빠르게 갔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겨울 공기가 시렸다. 소녀는 뒤늦게 상황이 심각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 쉴 때마다 콧속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반대로 뜨거운 입김이 엉겨 붙은 목도리는 눅눅했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마을에 들어설 때부터 증상이 있긴 했지만 별거 아니라고만 여겼다. 금세 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가벼운 감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아도 이미 얼어붙은 손바닥으론 열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내는 멀리서 장비 설치 중이었다. 소녀는 최대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 번 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쇳소리만 났다. 사내는 여전히 무심한 등만 보이고 있었다. 소녀는 한 발자국씩,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디뎠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사내는 막 설치를 마친 후였다. 뒤늦게 고개를 돌렸을 때, 소녀는 이미 한참을 걸어온 후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뒤뚱거리는 모습에 사내는 허둥대며 있는 힘껏 바퀴를 굴렸다. 하지만 의자가 앞으로 나아가기도 전에 소녀가 고꾸라졌다. 사내는 더욱 서둘렀다.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그러나 얼마 못 가 갑자기 왼쪽 바퀴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움푹 파인 구덩이를 눈 때문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손힘만으로 빼내기에는 무리였다. 할 수 없이 사내는 의자에서 몸을 내렸다. 부러진 바퀴가 보였다. 사내는 눈 위를 헤엄쳐 갔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br></font></div> <div><font size="3">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꽤 오랫동안 헤엄친 것 같음에도 소녀와의 거리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이제 거리를 재는 건 포기한 채 눈을 질끈 감고 땅만 짚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는데 무언가 사내 손에 닿았다. 눈을 떠보니 또 다른 손이 보였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저씨?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바로 앞에 소녀가 앉아있었다. 얼굴이 붉고 숨이 약간 불규칙할 뿐 소녀는 크게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심각한 상태였던 것 같은데. 상황을 이해하려는 사내에게 소녀의 한쪽 다리가 눈에 띄었다. 위태롭던 의족 막대기가 두 동강 나 있었다. 파닥대던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사내는 그대로 눈에 얼굴을 묻었다.</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아파서 쓰러진 거 아니었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어지럽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막 쓰러질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요. 먼저 들어가 봐도 되냐고 말하려 했는데 이게 부러졌네요.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소녀는 부러진 의족을 집어 들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그렇습니까. </font></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 사내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던 표정을 한순간에 지웠다.</font></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