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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Misunderstand Me
어두운 방안.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여자가 몽둥이로 무언가를 천천히 때리고 있다.
여자: 원래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소리를 지를 수가 없으니 몸을 움직이기로 한 것이었고 우는 것은 눈이 부으니까 싫었다. 어쨌든 내일도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마침 몽둥이가 있었고 생각해 보니 나는 살면서 누굴 한 번도 때려본 적이 없었다.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여태껏 누굴 때려 보지 않았던 걸까. 정정하자. 나는 누굴 때려 보지 않은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개미를 밟는 일조차 하지 못한다. 애완동물은 죽을까 봐 기르지 못한다. 지직거리는 십 년이 넘게 쓴 텔레비전을 발로 차지도 못하고 남이 준 편지, 쪽지조차 버리지 못한다. 내 주위는 쓰레기투성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낭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닌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 왔는지를 보여주는 지독한 증거들이다. 지금 내가 신나게 때리고 있는 이것도 그 쓰레기 중 하나다.
문득 괜히 이것을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게 있지 않았으려나. 얼마나 더 때려야 하는 걸까? 여길 때려야 하나? 아니면 거기? 어느 쪽이 더 오래 걸릴까? 어느 쪽이 더 아파?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이것은 대답을 못 할 것 같다.
여자가 몽둥이를 잠시 내려두고 머리를 묶는다. 그리고 다시 몽둥이를 집어 들고 때리기 시작한다. 점점 세게. 여자의 얼굴도 그에 따라 점점 일그러진다.
여자: 슬슬 팔이 아프다. 이것은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다. 아니,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째서 내 기억 속에 이미 죽어있던 것을 여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분하다. 화가 난다. 왜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은 스스로 사라져 주지 않는 걸까? 왜 나만 힘이 드는 거야? 옆에 두는 것도 힘이 들고 때리는 것도 힘이 들고 참는 것도 힘이 들고 터뜨리는 것도 힘이 들어.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하지 말 걸, 후회된다. 진즉에 할 걸, 후회된다. 어떻게 죽고 싶었는지 물어나 볼걸. 죽고는 싶었는지 물어볼걸. 그랬다면 지금의 내 기분이 조금 더 괜찮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왜 기분이 더 나빠지는 걸까? 드디어 무언가를 실컷 때려봤는데. 드디어 쓰레기 하나를 처리했는데. 뭘 잘못 한 걸까? 뭘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냥 나라서 그런 건 아닐까? 내가 나라서. 이것이 이것이라서. 내가. 이것이. 내가.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방안에 불빛이 새어든다. 여자는 때리던 걸 멈추고 열린 문을 향해 돌아보며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출처 | http://blog.naver.com/rimbaudiz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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