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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다시 또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그것은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다가온다.
다만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근래 나에겐 이 녀석이 떨어지지 않는다.
검게 물들어 나마저도 검게 물들 것만 같은 이 녀석은
내 발을 붙들고 질질 늘어진다.
원래 그런 법이다.
하지만 이내 검게 물들어 버리면 끝없는 밑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지금 나는 떨어지고 있다.
사실 이렇게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그녀석의 할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간간히 떨어지곤 한다.
다만 이 곳의 끝에 도달하면 나는 알고 있기에 일단은 떨쳐 내려고 한다.
왜 떨쳐내려고 하는걸까.
아니다.
이유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냥 떨쳐내는 것이다.
그 녀석에게 붙들려 있으면서 떨쳐내려는 이유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원래 그런 녀석이다.
허무라는 것은 그런 법이다.
요근래 나에게 있었던 가장 큰 실책은 떨쳐내는 이유를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생각할수록 끝은 빠르게 다가온다.
생각하면 할 수록 눈에는 높은 빌딩과, 수면제와, 둥근 고리가 잘 보일 뿐이다.
어쨌든 그냥 그런 이야기다.
요새 손가락이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도.
허무한 삶에 무언가를 만들어낼 능력따윈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내 메모장엔 미완과 백지만이 나열되있고
스케치북엔 샤프 자국만 더럽게 흩뿌려있고
무엇보다 내 머리 속이 어지러울 뿐이다.
다만 요새는 다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시간은 많은 것들의 약이고, 역시나 허무 또한 시간이 가장 좋은 약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손가락이 움직인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묻는다면
그냥 이야기 하고 싶을 뿐이다.
당신에게도 무언가 덕지덕지 붙어있을 것이다.
허무라던가 나태라던가.
여러가지 붙어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자.
결국 모든 것은 풍화되어 간다.
결국 시간이다.
그러니까 기다리자.
오늘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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