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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린상상력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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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89485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39
    조회수 : 3481
    IP : 203.84.***.113
    댓글 : 10개
    등록시간 : 2016/07/22 15:01:43
    http://todayhumor.com/?panic_89485 모바일
    [단편] 실손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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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손보험

     

     

    이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입니다. 발견이 조금만 늦었어도 저체온증으로 사망 하셨을 겁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왼손 새끼손가락 하나로 끝났으니까. 하지만 장씨로서는 고함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이, 망할 놈들아! 내 손가락 도로 내놔라 이놈들아!”

     

    걸어서 40분 거리를 너무 얕본 것이 화근이었다. 어젯밤 장씨는 거의 죽을 만큼 술을 마셨고, 가볍게 눈이 내리는 밤의 기온은 영하 8도였다. 고작 10여분 걷다가 길바닥에 고꾸라진 장씨가, 고작 새끼손가락 한마디를 잘라내는 동상 정도로 그쳤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 같은 행운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장씨는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장씨에게 병원놈들은 손가락도 못고치는 돌팔이에, 치료비만 받아먹으려는 사기꾼일 뿐이다. 그날 저녁 장씨는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뻔한 술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또 술을 퍼마시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이 이번에는 재대로 들어갔다.

     

    장씨가 들어선 방안의 공기는 훈훈했지만 퀴퀴하기도 했다. 방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코를 고는 노모의 구부러진 등에서는 흙냄새와 똥냄새가 진동했다.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팔순노모에게 어젯밤일은 연락조차 가지 않았다. 양말도 벗지 않고, 구겨진 이부자리에 몸을 넣는 장씨의 몸에도 온갖 냄새가 서려 있다. 술냄새와 섞인 싸구려 안주냄새, 하루 종일 컨베어벨트에 뿌려대던 정체불명의 화학약품냄새, 주책없는 홀아비냄새 그리고 불행과 가난의 냄새.

    어둡고 지저분한 천장을 바라보며 장씨는 자신의 불행을 곱씹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언제나 그렇지만 8년 전 뒤져버린 형님이 먼저 떠오른다. 항상 우등생 이었던 형, 서울 명문대에 입학한 형, 대학등록금과 사업자금으로 알토란같은 논밭과 아버지 생명보험금을 날려 버린 형. 학벌 말고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어머니와 동생을 벌래 취급하던 형. 직장으로 다니던 은행의 돈을 횡령하고 달아나다가, 결국 목을 매버린 형. 그리고 그 빌어먹을 형의 연대보증인이 되어준 병신같은 자기 자신.

    TV에서는 채무자들에게 더없이 친절할 듯이 선전하고 있지만, 부채회수에는 가차 없는 놈들에게, 형이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장씨는 지난 8년 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 365일 쉬는 날 없이 야근과 잔업을 반복하며, 빚독촉에 시달리던 장씨가 알콜중독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동안 퍼마신 술값을 변재에 포함 시켰다면 빚독촉에서 벗어나는 것이 1년은 빨랐을 것이라는 점은 웃을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 석달 정도면 남은 빚을 모두 청산 할 수 있다.

    장씨의 나이는 벌써 48. 그 인생에 남은 것은 화학약품을 들이마시며 생겨난 천식과 알콜중독, 쓸데없는 세금만 축내고 평당 1,000원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 황무지 500, 잔고 0의 통장과 우울증뿐이다.

     

    다음날 아침, 장씨는 온갖 쌍욕을 뇌까리며 공장으로 출근했다.

     

    아니, 장씨! 이 사람이 왜 이제야 출근해. 빨리, 빨리 들어와.”

     

    출근을 하며 울분을 참지 못한 장씨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길바닥에서 들이마시고 공장으로 들어왔다. 음주 상태에서 공장일을 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간혹 지켜지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장씨로서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제기랄 이까짓 일 그만둔다라는 기분으로 공장에 들어선 장씨를 기다리는 것은 뜻박의 소식이었다.

     

    노조위원장?”

     

    장씨가 속한 공장은 하청공장이기는 하지만 대기업의 1차 하청업체로 그 규모가 크다. 이곳의 전임 노조위원장의 횡령이 발각나 목이 달아나고 긴급투표를 통해 새 노조위원장을 뽑는 과정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횡령에 가담한 노조의 간부들이 모두 후보에서 사퇴했고, 술김에 입후보한 장씨에게 그간 공술깨나 얻어 마신 주당들이 장난삼아 던진 표가 무려 과반을 넘긴 것이다.

     

    중학교도 못나온 나 같은 일자무식이 무슨 노조위원장?”

    성님. 걱정 마쇼. 다 우리가 도와 준다니까요.”

    위원장이 별건가. 저 넥타이 놈들에게 우리 깡다구만 재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 되지.”

     

    그날 장씨는 평소라면 만나기도 힘든 과장, 부장놈들의 존댓말과 사탕발림에 거의 정신줄을 놓았다. 뒷주머니에는 누군가 찔러 넣어준 두둑한 돈봉투와 함께 젊은 여자를 옆에 끼고 이름도 생소한 술을 퍼마시던 장씨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어제와 똑같은 병실에서였다.

     

    이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입니다. 발견이 조금만 늦었어도 저체온증으로 사망 하셨을 겁니다.”

     

    빌어먹을! 이번에는 왼쪽 눈이다. 술집에서 마구 돈을 뿌리던 장씨는 퍽치기의 목표가 되었고, 16살 아이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던 중 크리티컬 히트가 들어가 안구가 파열했다. 분노와 함께 술이 간절해진 장씨는 만류하는 병원을 또다시 뒤로 하고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다친 대갈통에 술이 들어가니 머리가 더 아팠다. 그날 따라 어머니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유달리 지독했다. 자리에 누운 장씨는 어머니의 냄새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아프다. 심장이 뇌속으로 옮겨져서 박동을 하고 있는 듯이 머리가 아팠다. 참지 못한 장씨는 창고에서 거대한 해머를 들고와 어머니의 머리를 겨냥했다.

     

    냄새 나니까 꺼져 버리라고.’

     

    장씨는 해머의 무거운 쇳덩어리를 바닥으로 내리 쳤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을까? 아니면 장씨의 마지막 양심이었을까? 해머는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나 바닥을 내리 쳤다. 또 내리 쳤다. 다시 내리쳤다. 뱃속에서 뿜어 나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을 계속 해머로 쳤지만 잠든 어머니는 여전히 코를 골았다.

    다음날 장씨는 찢어진 장판을 걷어내고 깨진 구들장을 손봐야 했다. 무지막지한 망치질에 보일러 온수 파이프의 어딘가가 터진듯했다. 오늘 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고쳐야 한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머리와 한심스러운 기분과 함께, 장씨는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을 들어냈다. 그리고 발견했다. 구들장의 콘크리트 밑에는 지폐다발이 넓고 빽빽하게 숨겨져 있었다. 얼핏 봐도 몇 억은 족히 될 듯한 엄청난 돈.

     

    형이 횡령했던 은행돈!’

     

    그날 장씨는 노모를 내팽개치고 상경했다. 장씨의 호화로운 생활은 한동안 나쁘지 않았다. 마음껏 술과 여자를 즐겼고, 경마와 카지노를 탐닉했다. 비현실적이었다. 꿈만 같았다. 2년짜리 꿈이었다. 4억에 달하는 돈을 2년 만에 탕진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장씨는 또 다른 행운을 바라며 복권과 카지노에 열중했지만 그 노력은 노숙자로의 길을 제촉했을 뿐이다. 우연히 생긴 돈을 흥청망청 탕진하던 장씨에게 직업을 구해 노동을 한다는 의지는 진즉 증발한 후였다. 쉼터와 전철역을 전전하던 장씨는 결국 공중화장실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하고 말았다. 그 결과 장씨는 장기매매브로커에게 신장 하나를 도둑맞고 길바닥에 버려졌다. 놈들이 약속한 500만원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이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입니다. 발견이 조금만 늦었어도 저체온증으로 사망 하셨을 겁니다.”

     

    의사들은 겨울에 길바닥에서 발견된 환자에게 충고하는 말도 교과서로 배우나 보다. 시골의사든 도시의사든 장씨에게 똑같은 말을 꺼냈고, 장씨 역시 시골 병원에서 그러했듯이 도시병원에서도 고함을 지르며 난리쳤다. 난리 법석을 떠는 장씨를 진정시킨 것은 모 기업의 법무대리인 이었다.

     

    선생님 소유의 임야에, 저희 회사에서 카지노와 레저시설을 건설하고자 합니다.”

     

    신장이 사라진 다음날 장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손가락이나 안구가 없어진 다음날 생긴 돈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압도적인 거액이었다. 그리고 장씨는 깨달았다.

     

    내 몸 어디 한군데가 잘못되면 나에게 큰 행운이 쏟아지는 구나! 팔이나 다리 한쪽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서기 4860, 드디어 지구는 대통일을 이루었다. 모든 국경이 사라지고 모든 국적이 말소되고, 인류는 모두 지구인으로 통일되었다.

    1대 지구대통령의 취임. 모든 사람들은 말만 대통령일 뿐이지 대통령취임이 아니라 제 1대 지구황제의 즉위식이라고 생각했다. 지구의 모든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론, 과학기술과 종교인의 믿음 까지 한 손에 쥔 인간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취임식이다 뭐다 피곤에 지친 장씨는 쉬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대통령 각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습니다. 지구 곳곳 대도시들이 괴멸지경에 빠지고 있습니다.”

     

    취임식날 이 무슨 귀찮은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장씨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용의자에 앉아 버튼을 눌렀다. 가벼운 기계구동음과 함께 장씨의 금속 두개골이 열리고 노출된 두뇌는 배양액이 담긴 캡슐 속으로 옮겨졌다. 뇌가 적출되자마자 인공바디는 바로 정비실로 보내졌다. 보존캡슐의 특수배양액은 뇌만 남은 장씨에게 새로운 열량을 공급할 것이다. 그동안 장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하는 것 뿐이다.

    장씨는 생각했다. 그리고 침략해온 외계인들을 무찔러 버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간뇌(間腦)를 잘라내 보자. 그럼 해결 되겠지.’

    출처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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